‘치료법’ 못찾는 의사-약사 갈등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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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외판매 불허-선택의원제 불만폭발 의협 “장관사퇴”요구
“의약품 안전성 판단 독점하나”… 약사회 “앞뒤안맞는 주장” 반박

2000년 의약분업 시행 이후 가라앉았던 의사와 약사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7일 보건복지부의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유보 결정에 반발하며 진수희 장관의 퇴진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대한약사회는 즉각 반박 성명을 냈다.

이날 경만호 의협 회장은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반약 약국 외 판매가 안전성에 문제가 없는데도 복지부가 사실상 포기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정부가 약사의 통제 아래 약국에서만 약을 팔게 한 현행 약사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의약품 재분류 논의에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구 대한약사회장은 “의사만이 의약품의 안전성을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책임과 의무는 없고 권리만 내세우는 것과 다름없다”며 “전문약의 안전성을 주장하면서 일반약의 안전성을 포기하는 의료계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 갈등의 뇌관은 의약품 슈퍼판매


의사와 약사 간 갈등은 2000년 7월 도입된 의약분업에서 비롯됐다. 당시 의약분업에 반대하는 의사들이 파업을 강행해 의(醫)·약(藥) 갈등으로 비화했다. 의약분업이 안정화 단계에 들어선 이후에도 의사와 약사는 보건의료정책이 나올 때마다 사사건건 대립해왔다. 직장인과 자영업자의 건강보험 통합 이후 한정된 자원 안에서 의사의 몫은 상대적으로 줄고 약사의 몫이 늘어나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복지부는 최근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고 상급종합병원의 쏠림 현상이 가속화되자 보건의료정책 전반을 다시 짜고 있다. 우선 고혈압 등의 만성질환자가 동네의원을 선택해 진료를 받는 선택의원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의사협회가 내과와 가정의학과 등 일부 진료과목에 환자가 몰리고 환자의 선택권이 제한된다며 반대해 논의가 중단됐다. 반면 약사회는 환영했다. 동네의원 이용이 늘면 약국도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약 갈등의 뇌관을 건드린 것은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 정책이었다. 이 정책에 의사는 찬성하고 약사는 반대했다. 복지부가 3일 슈퍼 판매 대신 의약품 재분류라는 카드를 꺼내들자 의사들의 불만이 한계선을 넘었다는 관측이다. 의사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과 처방이 필요 없는 일반의약품 목록을 재분류하면서 의사 처방약이 줄어들 소지가 커졌기 때문.

또 의료계는 지금까지 리베이트 쌍벌제, 영상장비 수가 인하 정책을 의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 의지대로 진행해왔기 때문에 슈퍼 판매 유보 방침에 대한 반발이 더욱 거셀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명박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으로 정부 정책에 적극 협조해온 경만호 의협 회장도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

의사협회는 더 나아가 의약분업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다. 의사만 낮은 수가를 감내하며 희생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한의사협회가 지난해 전국 의사 89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강제분업이 아닌 선택분업을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54.4%(490명)로 절반을 넘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 의사가 약을 줄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넓혀야 한다’는 의견(19.7%·177명)까지 합치면 74.1%가 현재의 강제의약분업에 불만을 나타냈다.

○ 정부 조정능력 부재로 정책 표류


의사와 약사 간 대립이 첨예해진 데는 정부가 갈등을 조정 중재하지 못해 정책이 표류한 탓이 크다. 또 정권 후반기로 가면서 몸을 더 사리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권용진 서울대 의대 의료정책실 교수는 “복지부가 이익단체와의 뿌리 깊은 유착 관계를 끊지 않는 한 갈등이 가라앉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의약품 재분류와 선택의원제 추진 등은 의약 갈등이 심각해질 경우 추진 자체가 어려워진다. 의약품 재분류를 하게 될 중앙약사심의원회의 의약품분류 소분과위원회의 3분의 1은 의사가 차지한다. 의료계가 논의를 거부할 경우 의약품 재분류는 시작도 못해 보고 중단될 수 있다. 정부의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방안의 핵심 정책인 선택의원제 역시 의사들의 반발로 기본 모델도 나오지 않았다.

복지부는 보건의료 정책의 사회적 대타협을 한다며 보건의료미래위원회를 출범시켰고 7, 8월 잇달아 결과를 발표할 계획인데 이조차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권 교수는 “정치인도 아닌 행정부가 특정 이익 집단에 끌려 다닌다면 합의를 토대로 한 정책 추진이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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