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특허괴물’ 6년만에 무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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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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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앤아이비, 소프트씨큐리티와 키보드 보안기술 소송서 패소

특허컨설팅 업체의 중소기업에 대한 소송 공세에 제동이 걸렸다. 특허법원은 26일 특허컨설팅회사 피앤아이비가 정보기술(IT) 보안업체 소프트씨큐리티와 소프트포럼을 상대로 제기한 ‘권리범위 확인 소송’과 ‘특허등록 무효 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피앤아이비는 2001년 키보드보안 기술 특허를 출원한 IT업체 테커스로부터 2005년 이 기술의 일부 권리를 사들인 뒤 잉카인터넷, 킹스정보통신, 소프트캠프 등 이 기술을 보유한 모든 업체에 잇달아 소송을 걸어왔다. 피앤아이비는 “관련 제품 매출의 30%를 기술 사용료로 내거나 아니면 지금까지 금융권에 판매한 모든 제품을 회수하고 판매를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키보드 보안 기술은 금융감독원 규정에 따라 모든 인터넷뱅킹 서비스에 의무적으로 적용해야 하는 주요 기술이지만 시장 규모가 100억 원에 불과할 정도로 작아 중소기업이 관련 기술을 개발해 왔다. 이에 대해 김길해 피앤아이비 대표는 “판결문을 받아봐야겠지만 패소가 납득이 가지 않아 대법원 상고를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거래회사’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국내의 특허컨설팅기업들이 이처럼 해외의 ‘특허괴물(patent troll)’과 비슷한 역할을 해온 사실은 지금까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이들의 공격 대상이 대기업과는 달리 체계적인 법적 대응이 쉽지 않은 중소기업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점에서 부작용도 우려된다.

최재영 소프트씨큐리티 이사(전략기획담당)는 “우리는 기술로 논리 싸움을 벌이는데 피앤아이비는 기술이 아닌 법리 논쟁으로 우리와 싸웠다”며 “법률 전문가들로 구성된 특허 전문 기업과의 법정 싸움은 인력도 부족한 우리 같은 중소기업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앤아이비와 같은 기업의 역할이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이긍해 한국항공대 교수(정보통신공학)는 “개인은 기술을 개발해도 권리를 행사하기 힘든데 피앤아이비는 이런 힘없고 약한 발명가에게 도움을 주는 훌륭한 회사”라고 말했다. 그는 컴퓨터 문서작성프로그램을 쓸 때 입력하는 단어를 자동으로 분석해 ‘한글/영어’ 전환 버튼을 누르지 않고도 영어와 한글 입력상태를 자동으로 바꿔주는 ‘한영 자동 변환 기술’을 개발한 프로그래머다. 2000년 이 교수는 세계 최대의 소프트웨어 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가 자신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피앤아이비에 특허의 절반을 넘긴 뒤 공동으로 소송을 벌여 승소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고등법원에서는 이 교수 측이 패소하면서 현재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 때문에 피앤아이비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나뉜다. 기업들은 이 회사를 재앙과 같은 특허괴물이라고 평가하지만 기술을 개발한 개인들은 이들을 ‘특허천사’라고 일컫는다. 특허전문기업의 두 얼굴이다.

김길해 대표는 “우리는 발명가의 의견을 대변하는 회사”라며 “자금과 조직력을 갖춘 대기업과 비교해 힘이 약한 개인 발명가나 작은 기업의 경우 우리 같은 회사의 존재 없이는 눈 뜨고 기술을 도둑맞는 게 엄연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대기업’도 ‘힘이 약한 발명가’도 결과적으로 이런 회사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정해진다는 데 있다. 이 교수와 MS의 싸움은 명확하게 개인과 대기업의 대결이었지만 키보드 보안 기술 특허를 2001년 등록했던 테커스가 피앤아이비와 함께 제소한 보안업체들은 모두 중소기업이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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