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印尼특사단 침입’ 뒷북 수사 도마 위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21일 16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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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접수 이틀 뒤 자료 요청…호텔 CCTV 250대 '무사통과'
핵심 목격자 뒤늦게 조사…국정원 직원 심야 방문 드러나

16일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에 침입한 사건 용의자가 국가정보원 직원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경찰의 뒤늦은 수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경찰은 신고가 접수되고 이틀이 지나서야 특사단 숙소인 롯데호텔 측에 폐쇄회로(CC) TV 자료를 요청하는 한편 용의자를 본 핵심 목격자도 뒤늦게 조사하는 등 은폐 시도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사건 발생 다음 날인 17일 오전 3시40분경 국정원 직원 1명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남대문경찰서를 방문, 사건 내용을 묻고 보안을 요청해 국정원과 경찰 간에 모종의 협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경찰은 엘리베이터와 복도 등에 설치된 CCTV에 침입자의 모습이 그대로 찍힌 점을 파악하고도 사건 발생 후 5일이 지나도록 "인상착의 등 신원 확인이 안 됐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사건 발생 이틀 뒤 CCTV 제출 요구

경찰과 롯데호텔 등에 따르면 경찰은 16일 오후 11시15분경 사건 신고를 접수하고 나서 이틀 뒤인 18일 오후 5시 호텔측에 공문을 보내 CCTV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21일 드러났다.

호텔측은 해당 자료를 인계할 때까지 안전실에서 자체적으로 사건 당시 CCTV 화면을 분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국정원 직원은 경찰이 호텔측에 CCTV를 요청하기 전인 17일 오전 3시40분경 남대문서를 방문해 사건 내용을 묻고 보안까지 요청했다.

절도 사건의 경우 수사 단계상 CCTV 확보가 급선무인 점을 고려하면, "제출받을 CCTV 자료가 너무 많아서 늦게 신청했다"는 경찰측 해명에도 불구하고 초기 대응이 석연치 않음을 보여주는 정황들이다.

'롯데호텔 객실 절도'라는 신고를 처음 접수한 남대문서 관할 태평로파출소는 현장 출동 후 이 사건이 인도네시아 특사단과 관련되는 등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 남대문서 강력팀에 사건을 인계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엘리베이터 CCTV에도 용의자 찍혔다

"CCTV를 분석했으나 용의자의 인상착의나 얼굴을 알아보기가 어렵다"는 경찰 해명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경찰은 호텔 측으로부터 입수한 CCTV를 통해 지난 16일 오전 9시21분경 중구 롯데호텔 신관 19층 1961호에 묵던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에 검은색 정장 차림의 남자 2명, 여자 1명이 침입한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이들은 마스크나 복장 등으로 얼굴을 가리지 않은 상태였다. 경찰이 용의자의 이동 경로로 추정하는 엘리베이터 안에는 CCTV가 설치돼 있는 만큼 얼굴이 그대로 찍혔을 가능성이 큰 셈이다.

게다가 국빈급 손님이 자주 찾는 이 호텔에는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 주요 출입구 등 곳곳에 CCTV 250대가 작동하고 있으며 안전실 직원 6~7명이 CCTV와 연결된 모니터 30대를 24시간 관찰해 왔다.

호텔 관계자는 "CCTV에 안 찍히고 19층에 접근할 방법은 없다"며 "CCTV의 성능이 안 좋은 것도 아니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경찰은 "엘리베이터 안의 CCTV가 위에서 아래 방향으로 촬영하고 19층 복도가 다소 어두운 곳이어서 이들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침입자 목격한 종업원 뒤늦게 조사

경찰 수사의 또 다른 의혹은 침입자 일행을 발견한 호텔 직원에 대한 조사가 뒤늦게 이뤄졌다는 점이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도주한 침입자 중 남자 2명이 19층의 비상계단에 숨어 있다가 종업원에 발각돼 2~3분 뒤 훔친 노트북을 특사단에 되돌려 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사건이 발생하고나서 5일이 지난 뒤 이 종업원을 불러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침입자의 인상착의 등을 진술할 수 있는 핵심 목격자를 한동안 내버려뒀다가 언론 보도로 이 사건이 주목 받자 뒤늦게 조사한 셈이다.

◇지문 채취 사흘 뒤에도 경찰 "아직 모른다"

경찰의 지문 감식 결과에 대한 석연치 않은 설명도 의혹을 키우고 있다.

경찰은 17일 특사단측으로부터 노트북을 전달받고 나서 지문을 채취해 8개의 서로 다른 지문을 확인했다. 경찰이 지문 감식 프로그램을 가동할 때 국내인은 통상 신원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은 "외국인 지문을 제거하는 데 상당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한다. 이번 주말 내로 통보가 오지 않겠나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이날 오전 CCTV 화면을 보내 보정 의뢰를 한 것으로 드러나 늑장 수사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이밖에 신고 당시 당직팀인 강력1팀과 과학수사팀이 현장에 출동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됐으나 경찰 관계자는 "112신고 직후에 태평로파출소 직원과 과학수사팀원, 강력1팀이 순서대로 출동했다"고 해명했다.

한편 이번 사건이 언론에 노출된 뒤 경찰과 호텔 관계자들은 직원들에게 함구령을 내리고 정보가 새나가지 않도록 단속 중이다.

디지털뉴스팀·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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