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1주일 늦은 구제역 人災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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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안동 첫 의심신고 접수뒤 초동대응 소홀” 이례적 시인

“최초 발생 농장의 신고 이후 지방자치단체와 방역기관의 초기 대응이 미흡했습니다.”

발생 두 달여가 지나도록 수그러들지 않는 구제역과 관련해 방역 당국이 이례적으로 ‘반성문’을 내놓았다. 초동 대처에 소홀했다고 자인한 것이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사상 최악으로 기록될 이번 구제역의 확산 원인 및 전파 경로를 분석한 결과를 25일 밝혔다. 수과원은 초동 대처 미흡과 함께 △구제역 발생 확인 전 경기 지역으로 바이러스 전파 △추운 날씨로 인한 방역의 어려움 등을 구제역 확산 원인으로 꼽았다.

○ 첫 발생은 11월 14∼17일

이번 구제역의 최초 발생지인 경북 안동의 의심 신고가 수과원에 접수된 것은 지난해 11월 28일. 양성 판정은 다음 날 내려졌다. 그러나 발생 농장은 같은 달 23일에 지역의 방역 당국에 의심 신고를 했다. 수과원은 “23일 신고 뒤 간이 항원키트 검사 결과 음성이 나와 초동 조치가 늦어졌다”고 인정했다. 불확실한 간이 키트 결과만 믿고 정밀 검사를 안함으로써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것이다.

이때는 이미 구제역 바이러스가 안동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진 다음이었다. 주이석 수과원 질병방역부장은 “항체 양성 반응이 나타난 것으로 미루어 11월 중순경 이미 (안동에) 구제역이 발생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며 “(방역 당국이) 통제에 들어가기 전에 인근이 심하게 오염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방역 당국은 11월 14일에서 17일 사이에 구제역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방역 당국이 신고 접수 직후 이동제한 조치를 취한 28일은 이미 구제역 바이러스가 최소 열흘 이상 아무런 막힘없이 전파된 상태였다. 방역 당국 관계자는 “간이 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지역에서 상부에 제대로 신고만 했다면 1주일가량 빨리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지방 방역당국과 수과원 사이에 제대로 된 업무 전달만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자성했다.

집성촌이 많은 안동의 특성도 확산에 한몫했다. 수과원은 “안동은 동일 성씨가 많은 지역 특성상 평소 주민 간의 회합이 많다”며 “구제역 발생 후에도 발생 농가와 비 발생 농가 사람들이 자주 만남으로써 바이러스가 급속히 주변 지역으로 전파됐다”고 설명했다.

○ 경기는 한 달 넘게 잠복

경북 북부 일대를 뒤덮은 구제역은 이후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경기에서 발생했다. 당시 방역 당국은 경기 지역으로 구제역 바이러스가 어떻게 전파되는지 밝혀내지 못해 애를 먹었다. 뒤늦게 방역 당국은 “지난해 11월 26일 경기 파주의 분뇨처리 차량이 안동의 최초 발생농장을 방문한 것이 경기지역 확산의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수과원은 조사 결과 이보다 앞선 지난해 11월 17일에도 최초 발생 농장의 분뇨가 경기 파주로 옮겨졌다고 밝혔다. 수과원은 “경기 북부지역의 최초 신고가 지난해 12월 14일인 점을 감안하면, 이 시기는 경기지역이 분뇨에 의해 오염이 된 후 상당한 시일이 경과된 시점이다”고 설명했다.

결국 한 달 이상 구제역 바이러스가 경기 일대에 잠복해 있었던 셈이다. 여기에 경기지역은 지난해 12월 15일 양주에서 구제역이 발생하기 전까지 단 한곳의 방역 초소도 운영되지 않았다.

수과원은 강원, 충청지역은 오염지역을 방문한 사료 차량으로 인해 구제역이 전파된 것으로 추정했다. 수과원 관계자는 “강원의 경우 횡성군 소재 사료공장의 배송차량에 의해 철원, 춘천, 원주 등 광범위하게 바이러스가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며 “충청은 사료 차량은 물론이고 가축 종사자의 구제역 오염 지역 방문 등으로 인해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과원은 경남에서의 발생 원인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 구제역은 이어지는데 백신은 부족

전날 경남지역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김해시에서는 25일에도 추가로 구제역이 발생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경남 김해시 주촌면과 충남 공주시 계룡면 돼지농장의 의심신고에 대한 조사 결과 양성으로 판명됐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번 구제역으로 인한 도살처분 규모도 262만5553마리로 늘어났다.

이처럼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백신 부족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백신 부족으로 인해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백신을 정량보다 20%가량 적게 주사하는 고육책을 쓰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전남은 단 한 마리분의 백신조차 없어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전남도 관계자는 “정부에 백신을 빨리 공급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지금으로선 차단 방역을 강화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지금까지 850만 마리분의 백신이 수입됐고, 이달 말까지 400만 마리분이 추가로 들어온다”며 “추가 발생 지역을 중심으로 (백신을) 공급하느라 지역별로 다소 차질이 있지만 물량이 확보되는 대로 각 지자체에 공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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