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풍어제-당산제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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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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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 비금초교 개교 85주년 문집 ‘비금교’ 발간
천일염 산업 산파역할 등 각종 기록 답사통해 확인

“1951년 전남 신안군 비금면 비금국민학교(초등학교)에 염업기술원 양성소가 처음 설립됐다. 당시 전국 소금 생산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1년 남짓 운영된 염업기술원 양성소 교사들은 호남 최초 염전인 비금면 수림리 염전(근대 문화유산)을 만든 박삼만 씨를 비롯한 천일염 기술자들이었다. 이곳에서 소금 제조기술을 배운 학생들이 신안군과 전남 영광군 등에서 염전을 만들었다. 비금초교는 국내 천일염 산업의 산파 역할을 맡았다.”

비금초교 총동문회 문집편찬위원회가 개교 85주년을 맞아 최근 발간한 ‘비금교’라는 문집에 실린 내용이다. 453쪽의 이 문집에는 섬의 역사와 서당교육, 교회야학, 소금 등 구전으로 전해오던 것들을 각종 기록과 답사를 통해 확인한 내용을 담았다. 문집은 목포에서 54km 떨어진 비금도가 60여 년 전까지 조기잡이 어장 등으로 명성이 높았고 모래가 혼합된 갯벌 때문에 1990년대까지 전국 면 단위에서 소금을 가장 많이 생산했다고 소개했다. 다른 섬들처럼 산업화와 도시화의 영향으로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사라지고 있는 독특한 전통문화인 풍어제나 당산제, 뱃노래 등에 대한 기록도 남겼다.

비금도 주민들이 학교를 만들기 위해 들인 노력도 자세히 소개돼 있다. 동아일보 1923년 3월 22일자 기사는 “비금도 유지들이 5000원을 모아 비금초교 개교를 요청했으나 지연되자 면민대회를 갖고 면장 등 공무원이 사표를 제출하는 개교투쟁을 벌였다”고 전했다. 또 동아일보가 1924년 2월 7일자 ‘자녀교육을 위해 싸우는 비금면민’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주민들의 교육열에 찬사를 보냈다고 소개하고 있다. 진통 끝에 개교한 비금초교는 현재까지 졸업생 6800여 명을 배출했다.

황원섭 문집편찬위원장(70)은 “비금초교 개교 당시 선배들의 개교정신을 이어받아 훼손되고 있는 고향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문집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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