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밤중에 미안합니다만 체납 세금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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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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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청 야간 징수 현장 가보니…

서울 성동구가 최근 서울시내 25개 자치구로는 처음으로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세금징수를 하는 야간 체납 징수반을 만들었다. 지난달 13일 체납 징수반 직원들이 성동구 행당동의 한 아파트를 찾았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서울 성동구가 최근 서울시내 25개 자치구로는 처음으로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세금징수를 하는 야간 체납 징수반을 만들었다. 지난달 13일 체납 징수반 직원들이 성동구 행당동의 한 아파트를 찾았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성동구청에서 나왔습니다!”

“네… 네? 어디요?”

순간 집 안에서 들리던 야구 중계 소리가 사라졌다. 동시에 뭔가 후다닥 뛰는 소리도 들렸다. 10초 정도 흘렀을까. 굳게 닫혔던 문이 열렸고 40대로 보이는 남성이 문 앞 구청 직원 3명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혹시나 다시 문을 닫을까 구청 직원들은 일단 몸으로 문을 막고 준비해온 대사를 읊었다.

“선생님, 현재 세금 100만 원 안 내신 걸로 나오는데 납부 좀 부탁드려요.”

내겠다, 안 내겠다 말 대신 집 주인의 대답은 이랬다. “아니 이 시간에, 참….”

지난달 13일 오후 8시 서울 성동구 행당동의 한 아파트. 집주인도, 구청 직원도 난감한 표정을 짓는 이곳은 성동구가 야간 체납 징수 업무를 시작한 현장. 상습 체납자 및 고액 체납자가 주로 주간에 집을 비워 세금 징수에 어려움을 겪자 성동구가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중 처음으로 야간(오후 7∼10시)에 체납자 집을 찾아가는 ‘야간 체납 징수’ 제도를 만들었다. 야간반 직원 3명이 이날 3시간 안에 만나야 할 체납자는 총 10명. “대낮보다 일정이 더 빡빡해 저녁 먹을 틈도 없다”는 성동구청 세무과 직원들. 이들의 ‘밤일’을 따라가 봤다.

○ 초대받지 않은 밤 손님 vs 꼭 만나야 할 체납자들

체납자들이 오죽 세금을 안 냈으면 구청에서 야간반까지 만들었을까. 성동구가 야간 체납 징수반을 만든 것은 단순히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다. 현재 성동구가 걷지 못한 세금은 약 252억 원(결손처분액 포함)으로 이 금액은 성동구 한 해 예산 2756억 원의 9%에 해당한다. 야간반 팀장인 박문식 세무2과 체납징수팀장은 “성동구는 25개 자치구 중 재정자립도가 최하위 수준”이라며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밤에라도 체납자 집을 방문해 세금을 거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야간 체납 징수 첫날. 행당동 아파트에서 만난 40대 남성은 지방세 100만 원이 밀려 체납자로 분류됐다. 7년 전 사업이 번창하던 시절에는 소득세만 1000만 원 이상 냈다.

야간 체납 징수 현장은 대낮과 많은 차이가 있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부드럽게 설득한다는 점. 대낮 같으면 “세금 안 내시면 불이익 받습니다” 식으로 겁을 준다면 밤에는 체납자들을 최대한 다독인다. 이를 위해 야간반은 화법 교육까지 따로 받는다. 체납자를 부르는 호칭도 ‘씨’ 대신 ‘선생님’으로 높여 부른다. “지금 돈 못 벌고 있는데 어떻게 돈을 내냐”며 40대 남성이 항변하자 박 팀장은 “분할로 내시면 됩니다” “선생님 힘드신 것 충분히 이해합니다”라며 다독였다. 그러자 40대 남성은 “나도 사업할 때 수금이 가장 힘들었다”며 오히려 찾아온 구청 직원들을 격려했다.

○ “선생님께서…” 화법 교육까지


부드러운 설득 덕분인지 처음엔 거부 반응을 보이던 체납자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경계심을 풀었다. 세금 1700만 원을 내지 않은 응봉동의 한 슈퍼마켓 주인은 야간반 직원들이 “선생님 힘드시죠”라고 조심스레 말하자 주인은 “사실 우리가 많이 밀리긴 했다”며 순순히 시인했다. 야간반 이두진 주임은 “낮에는 10명 중 3명도 못 만나지만 밤에는 7명 정도는 만난다”고 말했다. 체납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성동구만이 아니다. 서울시도 500만 원 이상 고액 체납 건수는 16만4000건, 액수는 4292억 원에 이른다. 건수와 체납액 모두 늘고 있지만 징수율은 10% 내외에 머물고 있다. 시 관계자는 “요리조리 단속반을 피하며 세금을 안 내는 지능범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지방자치단체들은 체납자들을 잡기 위한 아이디어 전쟁을 펴고 있다. 서울시는 최근 지리정보시스템(GIS)으로 체납자 집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볼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했고 1000만 원 이상 고액 체납자 335명의 은행 대여 금고를 압류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배째라 고액 체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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