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포효하는 중화제국]<3>주변경제 삼키는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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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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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흡입기’… 접경국 절반이 교역비중 20% 넘어

《 중국은 주변국에는 한 번 빨려 들어가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경제 블랙홀’이다. 중국과 육지 또는 해양으로 인접한 21개국 중 일본과 인도 러시아 한국 인도네시아 등 5국을 제외하면 경제 규모가 중국의 8%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중국의 기침’에도 주변국 경제가 ‘몸살’을 앓고 중국 정부가 ‘헛기침’만 해도 주변국이 불안에 떠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달 30일 오전 10시 반경 중국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와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을 잇는 중국대륙 서쪽 끝의 변경 훠얼궈쓰(곽爾果斯) 해관. 신장과 주변 중앙아시아 국가를 잇는 13개 해관 중 1개인 이곳은 방금 공장에서 생산된 덤프트럭과 불도저, 화물을 잔뜩 실은 대형 화물트럭 등 수백 대의 차량이 4줄로 길게 늘어서 통관 수속을 기다렸다. 훠얼궈쓰 해관 신문판공실 양지훙(楊繼宏) 주임은 “지난해 금융위기 때도 이곳의 통관액은 22.6% 늘었다”고 말했다. 육지로 인접한 14개 주변국으로 향하는 66개 해관에서는 매일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중국의 경제력이 주변국으로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모습이다. 》
○ 주변국과 교통 물류 인프라 속속 완비

국경무역을 위해 지금은 자동차도로가 유일하지만 2012년엔 중국의 국경도시인 훠얼궈쓰와 카자흐스탄의 경제수도 알마티 사이에 철도가 놓인다. 이닝(伊寧) 변경 경제합작구관리위원회 상무국 자오펑(趙峰) 부국장은 “알마티는 중앙아시아 전역을 잇는 교통중추”라며 “알마티와 이닝이 철로로 연결되면 양국 무역규모는 한층 커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우루무치(烏魯木齊)와 훠얼궈쓰를 잇는 670km 길이의 4차로 고속도로도 일부 산악구간을 제외하고 지난해부터 개통돼 차량이 운행하고 있다. 이 구간은 몇 년 전만 해도 17∼18시간 걸렸지만 지금은 8시간 안팎으로 줄었다.

서남부에서는 윈난(雲南) 성과 미얀마를 잇는 철로와 고속도로가 현재 건설되고 있다. 동북부 헤이룽장(黑龍江) 성 헤이허(黑河)에서는 아무르 강을 가로질러 러시아를 잇는 1.1km 다리가 2014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다. 랴오닝(遼寧) 성 단둥(丹東)에는 곧 중국과 북한을 잇는 신압록강대교가 착공될 예정이다. 남부에는 광시좡(廣西壯)족 자치구와 베트남을 잇는 4차로 고속도로가 이미 개통됐다.

중국과 주변 14개 나라를 잇는 교통 인프라가 사방에서 줄줄이 확충됐거나 건설 중인 셈이다. 중국은 이를 통해 변경 11곳에 9개 나라와 경제협력지대 건설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중국이 최근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창지투(長吉圖·창춘-지린-투먼을 축으로 하는 개발) 계획’도 주변의 북한과 러시아를 염두에 둔 계획이다.

○ 중국, 대(大)중화경제권의 꿈

중화경제권이란 보통 중국 대륙과 홍콩 마카오 대만 싱가포르 등 화교 상권을 포함해 일컫는 말이다. 반면 대중화경제권(Great China Economic Zone)은 중국의 경제력이 큰 영향을 미치는 지역으로 중국 주변국과 동남아시아를 모두 포함한다.

중국이 대중화경제권을 형성하기 위해 추진하는 것은 자유무역협정(FTA)과 직접투자의 확대다. 중국은 올해 1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과 FTA를 발표해 세계 19억 인구를 가진 최대 자유무역지대를 구축했다. 또 중국은 2007년 파키스탄과 FTA를 발효했으며 현재 한국 인도와 FTA 체결을 추진 중이다.

주변국에 대한 중국의 직접투자액도 상당하다. 중국 상무부의 대외직접투자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중국이 투자 중인 나라만도 아시아·중동 국가의 90%에 이른다. 2009년 중국의 대외직접투자액 565억3000만 달러 가운데 404억1000만 달러(71.4%)가 아시아·중동 지역에서 이뤄졌다.

중국삼성경제연구소 류진허(劉金賀) 수석연구원은 “중국은 경제대국을 넘어 경제강국을 목표로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FTA와 직접투자를 통한 주변국과의 경제협력 강화가 필수”라고 말했다.

○ 주변국에 중국은 ‘유일한 경제패권국’

중국의 경제력은 지난해 4조9093억 달러로 일본의 5조681억 달러를 제외하면 주변국을 모두 앞선다. 특히 인도 러시아 한국 인도네시아 대만을 제외하면 모두 연간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2000억 달러에도 미치지 못한다.

지난해 세계무역액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9%로 미국의 10.8%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이런 중국의 주변국에 대한 경제영향력은 사실상 절대적이다. 국제통화기금(IMF) 통계에 따르면 접경 12개국(북한 부탄 제외)과 한국 일본 가운데 중국과의 무역비중이 20%가 넘는 나라는 한국 일본 등 7개국이다. 특히 경제규모가 작은 몽골이나 키르기스스탄 등은 중국과의 무역비중이 전체 무역의 50%를 넘는다. 또 이들 인접국의 대(對)중국 무역 편중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반면 중국의 무역액에서 주변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지난해 중국의 수출대상국 가운데 특수 관계인 대만을 제외한 나머지 20개국 중 수출액 비율이 1%를 넘는 주변국은 일본(8.1%) 한국(4.5%) 인도(2.5%) 러시아(1.5%) 베트남(1.4%) 인도네시아(1.2%) 등 6개국에 불과했다.

LG경제연구원 이철용 연구위원(중국 주재)은 “중국은 주요 무역상대국인 미국 유럽 지역과 갈수록 높아지는 무역마찰을 피하고 한편으론 영향력 강화를 위해 전략적으로 주변국에 진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훠얼궈쓰·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 ‘Buy 저팬’… 기업 - 부동산 닥치는 대로 산다 ▼
올 日기업 인수합병 22건… 신축맨션 20% 싹쓸이도


중국 거리 같은 오사카 상점가 일본의 유명 백화점과 쇼핑센터마다 중국인 관광객을 잡기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오사카 신사이바시의 한 상점가에 ‘홋카이도 물산전’을 알리는 중국어 포스터가 등장했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중국 거리 같은 오사카 상점가 일본의 유명 백화점과 쇼핑센터마다 중국인 관광객을 잡기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오사카 신사이바시의 한 상점가에 ‘홋카이도 물산전’을 알리는 중국어 포스터가 등장했다.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일본을 향한 차이나 머니의 공습은 무차별적이다. 올해 2분기(4∼6월)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대국에 오른 중국은 일본의 알짜 기업에서 부동산까지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있다. 7월에는 일본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이 16만5100명으로 사상 최대에 이르면서 일본 내수시장의 최대 고객으로 자리를 굳혔다.

중국 자본의 일본기업 인수합병(M&A)은 일반 제조업에서 부품소재 고급소비재 서비스업체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에 걸쳐 있다. 올 한 해만 해도 중국 자본은 태양전지 소재업체인 에바테크, 자동차 금형회사인 오기하라, 화학소재 회사인 히가시야마필름, 의류회사인 레나운, 대형가전 유통체인인 라옥스까지 삼켰다. 올해 들어 7월 말 현재 중국 기업이 직간접으로 참여한 일본기업 M&A는 22건에 이른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2006년부터 본격화된 중국 자본의 대일(對日) M&A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지난해 일본의 M&A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20% 넘게 축소됐지만 중국의 대일 M&A는 오히려 전년보다 금액 기준으로는 4.2배 늘었다.

중국 자본의 침투는 비단 기업에 머물지 않는다. 명품 브랜드와 고급 백화점이 몰려있는 도쿄 긴자(銀座)에서 수십 명 단위의 중국인 싹쓸이 쇼핑객은 이제 낯익은 풍경이다. 최근에는 도심의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머물면서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도쿄의 신축 맨션 모델하우스와 중고 맨션을 집중 매입하는 ‘부동산 쇼핑족’까지 생겼다. 도쿄 내 입지가 좋은 고급 신축 맨션 가운데는 전체 물량의 20% 이상을 중국인이 분양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 하코네(箱根)와 홋카이도(北海道) 등 관광명소의 펜션이나 리조트, 별장지까지 ‘돈이 될 만한’ 물건이면 모조리 사들이고 있다.

막대한 중국 자본의 유입은 20년 장기불황에서 허덕이던 일본 경제에 숨통을 틔워주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센카쿠 열도 사태를 거치면서 중국 자본을 바라보는 우호적인 시선은 점차 경계의 눈빛으로 변하고 있다. 당장 먹고살기 위해 중국 자본을 받아들였지만 호랑이를 불러들인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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