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배수펌프 오작동… 대구 노곡동 또 ‘물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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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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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가능성 지적 자문 무시 잘못된 설계가 화 키워”
잇단 물난리에 주민들 분통,경찰, 구청-건설사 수사 확대

17일 침수 피해로 아수라장이 된 대구 북구 노곡동.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17일 침수 피해로 아수라장이 된 대구 북구 노곡동.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17일 오전 10시경 대구 북구 노곡동. 흙탕물이 뒤덮은 마을 입구는 아수라장이었다. 가재도구는 소방도로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승용차들은 빗물에 떠내려 온 각종 쓰레기를 뒤집어쓴 상태였다. 지난달 설치된 침수피해대책위원회 천막은 형체만 알아볼 정도다. 주민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행여 유실된 물건이 있나 살펴보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33m²(10평)에 있었던 슈퍼마켓 물건이 통째 못 쓰게 된 이종술 씨(70·여)는 눈물부터 보였다. 이 씨는 “지체장애인인 남편은 충격을 받아 병원으로 실려 갔다”면서 “안심하고 살라는 구청 공무원 말을 믿었던 내가 바보였다”며 가슴을 쳤다.

○ 전형적인 인재(人災)

지난달 17일 침수 피해를 보았던 북구 노곡동이 또다시 물에 잠겼다. 대구시와 북구에 따르면 16일 오후 4시 40분경 노곡동 금호강 주변 9000여 m²(약 2700평)가 평균 수심 1.2m로 침수됐다. 주택 80여 채와 승용차 30여 대가 물에 잠겼다. 주민 40여 명이 구조됐고 3명은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 이곳은 지난달 17일 새벽에도 유입된 물에 각종 쓰레기 등을 골라내는 배수펌프장 제진기(除塵機)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주택 62채와 차량 118대가 침수됐다. 대구시 등은 1, 2차 침수 원인이 같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상습 침수지역인 노곡동은 2003년 태풍 ‘매미’ 때도 물난리를 겪었다. 북구는 후속대책으로 30여억 원을 투입해 지금의 배수펌프장을 건설하고 있다. 완공은 10월 예정. 문제는 ‘배수펌프장 수문 오작동’ 등을 지적한 실시설계 자문보고서를 무시한 사실이 드러난 것. 지홍기 영남대 교수 등은 보고서에서 ‘침수 방지를 위해 터널 배수로와 펌프장을 함께 설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북구 건설과 관계자는 “터널 배수로 설치에 대한 민원이 많아 펌프장만 공사했다”고 말했다. 사건을 수사 중인 대구지방경찰청 관계자는 “2차 침수 원인은 과부하가 걸린 제진기가 멈췄기 때문”이라며 “제진기 모터 안전장치인 시어핀(퓨즈 일종)이 작동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 뒤늦은 대책

경찰은 북구, 건설업체 등을 상대로 배수펌프장 제진기 채택의 적절성과 배수시설 설계에 하자가 있는지를 집중 수사할 계획이다. 이번 주에는 1차 침수피해 책임을 물어 감리단장, 공무원 등 4명을 과실 및 직무유기 혐의로 입건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배수펌프장 설계 문제도 조사하는 등 1차 침수 때보다 수사를 확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구시의회는 17일 노곡동 침수피해 조사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피해 원인 등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노곡동 주민들은 이날 오전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주민들은 대책위원회 위원을 13명에서 15명으로 늘리고 조만간 북구청 앞에서 대규모 규탄집회를 열기로 뜻을 모았다. 주민들은 이날 오전 이종화 북구청장의 방문을 거부하고 구 피해조사단의 진입을 막았다. 이수환 대책위원장은 “같은 피해가 또 발생한 만큼 관련자들의 강력한 처벌 등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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