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비파라치에 찍힐라” 아파트 비상

  • Array
  • 입력 2010년 7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주민들 대부분 계단-비상구에 유모차 자전거 세워… 적발땐 과태료 30만원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사는 직장인 이모 씨(39)는 최근 유모차와 자전거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복도에 세워둔 자전거와 유모차를 모두 치워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아이가 셋이라 자전거 세 대에 유모차까지 있다”며 “‘비파라치(비상구 파파라치)’가 뜬다고 치워 달라는 경비 아저씨와 매일 실랑이를 벌이는 중”이라고 하소연했다.

서울 시내 아파트 주민들에게 ‘비파라치 경고령’이 내려졌다. 소방방재청이 비상구를 가리는 행위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는 ‘비상구 신고포상제’를 지난해 입법예고한 가운데 서울시도 15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 경기는 예산 부족…서울 신고 폭주

25일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 복도에 집집마다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많은 아파트 단지의 관리사무소가 “자전거나 유모차를 집 안이나 지정된 곳에 세우지 않으면 ‘비파라치’가 신고해 3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공고했지만 서울시는 “과태료 부과 요건을 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들의 혼란만 가중되는 양상이다. 김수민 인턴기자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4학년
25일 서울 강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 복도에 집집마다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많은 아파트 단지의 관리사무소가 “자전거나 유모차를 집 안이나 지정된 곳에 세우지 않으면 ‘비파라치’가 신고해 3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고 공고했지만 서울시는 “과태료 부과 요건을 완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들의 혼란만 가중되는 양상이다. 김수민 인턴기자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4학년
비상구 신고포상제는 비상구를 막으면 비상시 피난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에 따라 마련됐다. 이에 따라 복도를 막는 자전거나 유모차 등도 사진 및 영상으로 촬영해 해당 지역 소방서로 제출하면 소방서에서 심사위원회를 열어 사진을 분석하고 현장을 확인한다. 이 중 실제 피난에 장애를 줬다고 판단되면 비파라치는 포상금 5만 원을 받고, 비파라치에게 ‘찍힌’ 가정은 과태료 30만 원을 물어야 한다. 두 번 잇달아 적발되면 100만 원, 세 번째엔 200만 원을 물게 된다.

소방방재청이 지난해 말 입법예고한 후 각 지자체는 관련 조례를 만들어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달 1일부터 비상구 신고포상제를 시행한 경기 지역은 한 달 만에 2993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지난달 말까지 경북은 1058건, 경남은 790건, 대구는 426건이 각각 접수됐다. 실제 포상금이 지급된 것은 총 6158건의 신고 중 1090건, 5450만 원이다. 심사 중이거나 신고를 취하한 2793건을 제외하면 지급률이 32%에 이른다.

‘파파라치 학원’까지 있는 수도권의 신고 건수가 현재 다른 시도를 압도하고 있다. 경기 지역은 3500만 원의 예산을 책정했으나 한 달 만에 바닥날 지경이다. 경기 수원지역의 한 소방서는 “포상금 지급 예산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무작정 사진만 찍어 보내는 비파라치가 너무 많아 일일이 확인하느라 업무만 가중됐다”고 말했다. 서울도 15일 시행 이후 27일까지 900여 건이 신고 접수됐다.

○ 신고되는 기준은

하지만 지역마다 조금씩 시행 기준 및 지침이 다르다 보니 일선 소방서 및 주민들 사이에서는 혼란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측은 “조례를 제정하면서 아파트 복도에 짐을 내놓아 통행이 아예 힘든 정도가 아니라면 비파라치 포상 대상이 되지 않도록 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한 소방서도 “원칙적으로는 아파트 복도도 비상구에 해당해 비워둬야 하지만 비파라치 제도가 시행된 이후 민원이 크게 늘어 자전거를 일렬로 세워두거나 유모차를 접어서 보관하는 경우 과태료를 물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노모 씨(31·여)는 “유모차가 크고, 바퀴가 지저분해 집 안에 넣어두기가 쉽지 않다”며 “이웃들은 ‘그 정도면 괜찮다’는 분위기인데도 행여나 사진 찍힐까 봐 매일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