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이 존경받는 사회]<2>황도현 중사 부모의 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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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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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연평해전 6인의 용사도 잊지 않겠습니다

故 황도현 중사는…
감수성 풍부 ‘딸같은 아들’
학비 모으려 부사관에 지원
함상 행사선 사회 도맡아

제2연평해전 전사자인 황도현 중사의 아버지 황은태 씨(왼쪽)가 23일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에 마련한 컨테이너에서 아들의 영정 앞에 향을 피우고 있다. 컨테이너에 가득한 아들의 흔적을 매만지며 어머니 박공순 씨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부부는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 4년 전 마련한 이 컨테이너에 아들의 유품을 모두 모아 놨다. 남양주=변영욱 기자 ☞사진 더보기
제2연평해전 전사자인 황도현 중사의 아버지 황은태 씨(왼쪽)가 23일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에 마련한 컨테이너에서 아들의 영정 앞에 향을 피우고 있다. 컨테이너에 가득한 아들의 흔적을 매만지며 어머니 박공순 씨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부부는 아들을 기억하기 위해 4년 전 마련한 이 컨테이너에 아들의 유품을 모두 모아 놨다. 남양주=변영욱 기자 ☞사진 더보기
《1980년 서울 출생. 부모와 형이 있다. 황도현 중사는 부모에게 ‘딸 같은 아들’이었다. 감수성이 풍부해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눈이 예쁘게 내렸어” 하며 어머니 팔짱을 끼고 산책을 나가곤 했다. 서울 중랑중 2학년 때 담임교사였던 김응경 씨(48)는 “군에 있을 때 휴가를 나와 작은 화분을 들고 인사를 왔던 다정다감한 제자”로 회상했다. 1998년 숭실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다. 교육대에 진학해 교사가 되고 싶어 한 아들을 말리고 어려운 공부를 시켰던 걸 어머니 박공순 씨는 아직도 미안해한다. 2000년 3월 학교를 휴학하고 학비를 모아 오겠다며 부사관에 지원했다. 영주함에서 함께 생활했던 황석우 씨(30)는 “배에서 행사가 열리면 나서서 사회를 맡았다”며 “같은 배에 탄 사람 중에 그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추억’으로 가득찬 기념관
낡은 책상엔 책과 글 빼곡
‘문학소년’의 체취 고스란히

투사가 된 아버지
잊혀진 설움 안은 8년
보수단체 집회 단골 연사로


8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 북한군의 기습공격으로 침몰한 ‘참수리 357호정’에 난 것과 똑같은 자리에 258개의 총탄 구멍이 뚫려 있었다. 포탄을 맞은 자리에도 쇠로 된 외벽이 종이처럼 찢겼다. 전쟁의 기억을 담은 함정은 처참했다.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청량고 재학시절 황도현 중사(가운데)와 친구들의 즐거운 한때. 사진 제공 박공순 씨 ☞사진 더보기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청량고 재학시절 황도현 중사(가운데)와 친구들의 즐거운 한때. 사진 제공 박공순 씨 ☞사진 더보기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 참수리 357호정과 똑같은 복제 함정이 들어섰다. 이 복제 함정은 다음 달 3일부터 정식으로 일반에 공개된다. 14일 끝마무리 도장공사가 한창인 현장을 제2연평해전 전사자 황도현 중사의 아버지 황은태 씨(63)와 함께 찾았다. 배 뒤쪽 22mm 벌컨포 커버에도 구멍이 뚫렸다. 황 중사의 머리를 관통한 총알이 낸 자국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상처를 매만지듯 총탄 구멍을 자꾸 쓰다듬었다. 참수리 357호정의 22mm 벌컨포 사수였던 황 중사는 제2연평해전 당시 포탄을 다 쏘고도 방아쇠를 꼭 쥔 채 시신으로 발견돼 감동을 줬다.

찢기고 벌집처럼 구멍이 난 함정이지만 황 씨에겐 아들의 일부가 돌아온 것처럼 반갑게 느껴졌다고 했다. 8년 전 아들을 잃은 뒤로 부모는 아들에 대한 기억을 좇는 게 일이 됐다.

○ 부모가 만든 아들의 기념관

황 중사 가족이 살던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에는 아들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 찬 컨테이너가 있다. 부모가 꾸민 아들의 기념관이다. 황은태, 박공순 씨(58) 부부는 21일 부처님 오신 날 봉축법요식에 참석하기 위해 경기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 해웅사에 다녀온 뒤 23일 컨테이너를 다시 찾았다. 8년 전 컨테이너를 만든 뒤 아들을 만나듯 매일같이 찾아와 쓸고 닦은 곳이다. 향냄새가 진하게 밴 이곳은 어느새 서울 중랑구 집보다 더 아늑한 곳이 됐다.

황 중사를 보내면서 부모는 유품을 태우지 않고 남겨뒀다. ‘문학소년’이었던 황 중사의 낡은 책상 위에는 어려서부터 읽었던 책이며 사진과 글이 빼곡했다. 참수리 357호정에서 해 지는 바다를 보며 남긴 글도 여러 편. 아버지는 ‘자유’라는 제목의 아들의 시를 액자로 만들어 놓았다. 한쪽 벽에는 아들의 관을 덮었던 태극기를, 다른 쪽에는 황 중사가 입었던 군복을 걸어 놓았다. 아들의 낡은 휴대전화도 이따금 켜서 8년 전 통화목록에 남은 ‘아빠’ ‘엄마’ 글자를 문지르곤 한다. 부부가 아들의 유품을 모조리 남겨둔 건 미안해서였다. “잊고 살면 홀가분하겠지만 그러면 우리 아들은 누가 기억해 주나요. 죽을 때까지 아파해 주고 싶어요.” 아들의 체취가 달아날까봐 빨지 않고 비닐봉지에 꼭꼭 싸둔 아들의 스웨터에 얼굴을 파묻으며 어머니 박 씨가 말했다.

컨테이너 밖 황 씨의 승용차에서는 하염없이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사랑했어요 그땐 몰랐지만 이 마음 다 바쳐서 당신을 사랑했어요/이젠 알아요 사랑이 무언지 마음이 아프다는 걸….” 가족끼리 노래방에 갔다가 녹음한 아들의 노래를 아버지는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듣고 또 들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 도현이한테 말을 걸어요. ‘도현아, 네 노래다. 아버지가 너를 잊지 않고 있다’고.”

○ 축구경기만 보면 슬퍼져

황 중사의 부모가 필사적으로 아들의 기억을 좇은 건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아서였다. 축구를 무척 좋아했던 박 씨는 이제 ‘축구’란 말만 들으면 심술이 난다고 했다. “이러면 안 되지만 마음속으로 ‘축구 져라’라고 해요.” 8년 전 터키와 3·4위전이 열리던 날(2002년 6월 29일) 황 중사는 총탄에 스러졌다.

4년 전 독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때 붉은 물결로 가득하던 세종로 사거리 한편에서 제2연평해전 전사자 추모대회가 열렸다. “잊지 않고 추모대회를 열어준 이들이 고마워 음료수 두 박스를 사들고 찾아갔어요. 천막에 참가자 다섯 명이 촛불 여섯 개를 쓸쓸히 들고 있더라고요. 참담합디다.” 발 디딜 틈 없이 들어찬 인파를 헤치고 나오면서 부부는 서러워 펑펑 울었단다. 그동안 정부는 잊으려고만 했다. “벌집이 된 참수리 357호정만 해도 평택 해군 제2함대사에 있어요. 어떻게든 서울로 옮겨와야 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함정을 조각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미뤄 왔지요. 이제 복제품이라도 서울에 만들어진다니 그나마 다행이지요.”

○ “기억해 주면 그뿐이에요”

잊혀지는 설움을 안고 8년을 지낸 황 중사의 부모는 어느새 투사가 됐다. 황 씨는 보수단체 집회의 단골 연사다. 14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천안함 전사자 추모대회’에서도 고 황도현 중사 아버지의 이름으로 연단에 섰다. “저는 2002년 제2연평해전에서 전사한 22mm 벌컨포 사수 황도현 중사 애비입니다.” 작은 체구에 덤프트럭을 운전하는 황 씨가 ‘좌파 단체를 척결해야 한다’며 소리쳤다. 어머니 박 씨도 무서운 게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 생전에 동교동 사저에도 ‘미안하다’는 한마디를 들으려 두 번이나 찾아갔지만 비서관들의 만류로 끝내 만나지 못했다. “우리 아들이, 제2연평해전이 잊혀질까 두려운 마음에 그런 용기가 생겼나 봐요.”

황 씨 부부는 보상금도, 빛나는 훈장도 바라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 아들의 죽음을 기억해 주기만을 바랐다. “참수리 357호정 전시관에는 어린이가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아들이 죽음으로 지킨 대한민국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배울 수 있잖아요.”

남양주=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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