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 밀린 월급 좀 받아주세요”

  • Array
  • 입력 2010년 5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 안산지원 야간 법정 열려
변호사 비용 없는 서민들
퇴근후 찾아 억울함 풀어

19일 오후 7시부터 1시간 반 동안 야간 재판이 열린 수원지법 안산지원 410호 법정에서 민사11단독 신중권 판사가 민사 소액사건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안산=이서현 기자
19일 오후 7시부터 1시간 반 동안 야간 재판이 열린 수원지법 안산지원 410호 법정에서 민사11단독 신중권 판사가 민사 소액사건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안산=이서현 기자
모든 관공서가 문을 닫은 19일 오후 7시.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수원지법 안산지원(지원장 김흥준) 410호 법정에는 고달픈 하루를 마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이날은 안산지원에서 두 번째 민사소액재판 야간 법정이 열린 날.

안산공단에서 전자부품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박영철 씨(49)는 재판이 시작되기 30분 전부터 아내와 함께 법정 앞 의자에서 법정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박 씨는 거래처 두 곳에서 납품대금 2800여만 원을 떼이자 지난해 소송을 냈다. 박 씨는 “그쪽도 무슨 사정이 있겠지만 직원 10여 명의 월급 한 번 밀린 적이 없는 나도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한 푼이 급한 사정이 됐다”고 말했다. 이날 승소 판결을 받아낸 박 씨는 법정을 나서며 “이제 한시름 덜었지만 거래처와 연락이 돼야 돈을 받지 않겠느냐”며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장문구 씨(44)는 이날 밀린 두 달 치 월급 500여만 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2008년 말 기계부품 회사에 취업했는데 사장은 입사 두 달째부터 차일피일 월급 지급을 미뤘다. 결국 석 달 만에 그만뒀지만 새 직장은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사장의 지인들까지 모조리 수소문했지만 돈을 받지 못하자 장 씨는 야간법정을 찾았다. 승소 선고 직후 장 씨는 얼굴에 번지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이제야 속이 시원하다”고 말했다.

민사소액 사건은 소송가액 2000만 원 이하 사건으로 대부분이 밀린 임금이나 빌려준 돈, 물품 대금 등을 두고 다투는 서민들의 소송.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변호사를 선임해 법정에 나갈 일이 없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변호사 수임료를 낼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생업을 제치고 직접 법정에 나와야 한다. 안산지원은 공장과 사무실이 몰려 있는 관할지역의 특성에 맞춰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달부터 야간 재판을 열고 있다.

17건의 재판이 모두 끝나고 오후 8시 반 법정을 정리하던 안산지원 조해용 경위는 “처음에는 저녁 근무 부담으로 직원들도 야간 개정에 난색을 표했지만 지금은 도입 취지에 공감하고 있다”며 “야간 개정이 많이 알려져 법원에서 억울함을 푸는 서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안산=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