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경고’ 기후변화 현장을 가다]<4>사라지는 로드하우 섬의 산호군락,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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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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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보랏빛 잃고 하얗게 질린 산호숲… 두달새 20~40% 죽어가

올해 3월 로드하우 섬 인근 해역에서 촬영한 산호. 2003년 4월까지만 해도 갈색과 초록색 등 형형색색으로 아름답게 빛나던 산호(오른쪽 위)는 현재 기후변화에 따른 수온 상승으로 색깔이 하얗게 변하면서 서서히 죽어간다. 사진 제공 피터 해리슨 교수
올해 3월 로드하우 섬 인근 해역에서 촬영한 산호. 2003년 4월까지만 해도 갈색과 초록색 등 형형색색으로 아름답게 빛나던 산호(오른쪽 위)는 현재 기후변화에 따른 수온 상승으로 색깔이 하얗게 변하면서 서서히 죽어간다. 사진 제공 피터 해리슨 교수

호주 시드니에서 동쪽으로 약 7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로드하우 섬. 면적 약 56km²의 작은 섬이지만 241종에 이르는 식물과 164종의 새, 500여 종의 어류 등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어 ‘호주의 갈라파고스’로 불린다. 유네스코는 1982년 이 섬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로드하우 섬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산호다. 이 섬 서쪽 해안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 산호 군락은 다양한 바다생물이 살아가는 터전을 마련해주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산호 군락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호주의 여름인 올 1월부터 이 섬의 산호 색깔이 하얗게 바뀌기 시작하더니 3월에는 산호 전체의 20∼40%가 하얗게 변해버렸다는 조사 결과가 지난달 호주 국영 ABC방송을 통해 발표됐다. 대규모 산호 백화(白化·bleaching)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백화현상이 일어난 산호는 제 기능을 잃고 서서히 죽어간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 하얗게 죽어가는 산호

6일 로드하우 섬을 찾아가 산호의 상태를 들여다봤다. 바닥이 유리로 돼 있는 산호 관찰용 선박을 타고 섬 중부 해안에서 2km가량 떨어진 ‘어스코츠홀’로 불리는 해역을 먼저 찾았다. 갈색, 초록색, 보라색 등 화려한 산호 사이로 열대어가 유유히 지나가는 아름다운 광경과 함께 흰색 산호가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이곳은 현재 전체 산호의 10%가량이 하얗게 변한 상태다.

배를 타고 북쪽으로 향했다. 노스베이 해역에서는 산호의 절반 이상이 흰색을 띠고 있었다. 이어 상황이 가장 심각한 ‘실프스홀’에 도착했다. 산호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바닷속으로 들어가 봤다. 듬성듬성 무리지어 있는 산호는 온통 흰색이었고 생기가 없어 보였다. 화려한 색을 띤 정상적인 산호는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 배를 운영하면서 학자들의 산호 연구를 돕고 있는 피터 버스티드 씨는 “실프스홀의 산호는 95% 정도 백화돼 산호 무덤이 돼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 날 관광객들과 함께 다시 산호를 둘러보며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었다. 영국에서 온 관광객 스티븐 조어스 씨는 “여러 곳에서 산호를 구경했지만 흰색으로 변한 것은 처음 봤다. 기후변화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버스티드 씨는 관광객들에게 “올여름 유난히 더웠던 것이 산호 백화의 원인”이라며 “보통 이 지역 바다의 한여름 수온은 섭씨 25∼26도인데 올해는 29도까지 올라갔다”고 설명했다.

“온난화로 수온 올라간 탓”
일부지역 95% ‘백화현상’

바다생물들 보금자리 파괴
어류 200여종 사라질수도
관광 의존 주민생계 큰 타격


○ 바다생태계에 치명적 피해 우려


수온 상승이 산호에 치명적인 이유는 산호와 함께 살고 있는 조류(藻類·물속에 사는 원시생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갈충말(zooxanthellae) 또는 갈충조로 불리는 이 조류는 광합성을 하면서 산호에 양분을 공급해 준다. 원래 산호는 투명 흰색인데 산호를 덮고 있는 이 조류의 색깔 때문에 아름다운 색으로 보인다. 이 조류가 산호를 떠나면서 산호가 원래의 흰색을 드러내는 것이 백화현상이다. 이 조류는 수온이 평년보다 1∼2도만 높아져도 이 상태가 6∼8주 정도 지속되면 산호를 떠나게 된다. 산호로서는 생명선이 끊어지는 셈이다. 수온이 낮아져 이 조류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산호는 서서히 죽어간다.

산호가 사라지면 바다생물과 지역 주민의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 산하 로드하우 섬 해양공원관리소의 이언 커 소장은 “이 섬에서 대규모로 산호의 백화현상이 일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산호가 없어진다면 산호를 기반으로 살고 있는 200여 종의 어류도 사라지게 되고 바닷새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로드하우 섬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닐 터크 씨는 “주민들은 산호의 백화현상이 심해지면 결국 주 수입원인 관광이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 기후변화가 산호 백화현상의 주범

지난달 로드하우 섬의 대규모 산호 백화현상을 조사해 발표한 호주 서던크로스대 산호연구소 소장인 피터 해리슨 교수는 8일 “기후변화가 산호 백화현상의 주범”이라며 “1993년부터 로드하우 섬 주변 바다를 꾸준히 조사해 왔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학계에서는 폐수 방류로 인한 수질오염, 바다 염분의 변화, 산호의 질병 등도 백화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로드하우 섬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뒤 30년 가까이 정부의 엄격한 통제 아래 자연환경이 철저하게 유지되고 있고, 다른 백화현상 발생 원인도 발견되지 않았다. 해리슨 교수는 “결국 올여름 이 해역의 수온이 평년보다 2도가량 높았던 것이 산호의 백화현상을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높은 수온이 오래 지속되면서 일부 산호는 이미 죽은 상태다.

그는 “그동안 산호 백화현상은 수온이 높은 열대지방에서 주로 일어났는데 아열대 기후인 로드하우 섬에서도 일어났다는 것은 기후변화의 피해 지역에 예외가 없다는 경고”라며 “수온이 빨리 내려가지 않으면 이 지역의 산호 군락이 회복되는 데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세계최대 산호군락 대보초도 ‘몸살’ ▼

호주 동북부 해안을 따라 약 2300km에 걸쳐 형성된 대보초(great barrier reef) 해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산호 군락 지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호주 대보초에 형성된 산호초는 세계 전체 산호초의 약 10%를 차지하며 1981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됐다.

대보초에 살고 있는 산호 역시 기후변화에 따른 위기를 겪고 있다. 대보초의 산호는 이미 세 차례 심각한 피해를 경험했다. 1998년과 2002년에는 전체 산호의 60% 이상이 백화됐고 2006년에도 46%의 산호가 흰색으로 변했다. 학계에서는 이런 대규모 백화 현상이 전 세계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 상승과 직·간접적 영향이 있다고 본다.

올해에는 강한 사이클론이 몇 차례 지나가면서 대보초 해역에 차가운 물이 유입되는 효과를 가져와 대규모 백화 현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년 여름에는 수온이 올라갈 것으로 보여 산호에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에 호주 정부는 ‘대보초 기후변화 대응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호주만의 힘으로 기후변화를 막을 순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호주 정부 산하기관인 대보초해양공원관리청은 최근 발간한 연례 보고서에서 “2100년까지 수온이 1∼3도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전 세계적 기후변화로 대보초의 생태계가 영향을 받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며 “대보초의 생물 중 산호의 생태가 가장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 “지구 생태계에 영향미쳐 재앙 부를수도… 시간 촉박… 온실가스 10%이상 줄여야”▼
濠퀸즐랜드대 굴드베르그 교수


“이대로 가면 40년 뒤엔 산호가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 전 세계 정부와 기업들이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실천에 나서야 합니다.”

9일 호주 브리즈번의 퀸즐랜드대에서 만난 오베 호그 굴드베르그 교수(51·사진)의 표정은 어두웠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산호연구학자인 그는 특히 기후변화가 산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굴드베르그 교수는 “기후변화 때문에 세계에서 해마다 산호초가 1∼2%씩 줄어들고 있다”면서 “1990년 이후 산호초의 성장속도가 15%가량 느려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그는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수온상승 못지않게 바다의 산성화도 산호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산화탄소가 바다에 녹아 바닷물의 산성화가 심해지면서 산호의 골격 역할을 하는 석회질을 생성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 추세대로 기후변화가 진행다면 20년 뒤에는 호주에서 산호 피해가 확실하게 눈에 보일 것이고 최악의 경우 2050년이면 산호가 대부분 사라져 우리의 기억 속에만 남게 될 수도 있다”며 “다른 지역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산호가 피해를 보면 생물다양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그는 지적했다. 전체 바다생물 중 산호에 의지해 사는 생물이 20∼30%를 차지하고 있는데 먼저 이들이 타격을 받고 결국 지구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와 더불어 수질오염과 어류 남획 등도 산호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굴드베르그 교수의 결론이다. 그는 “전 세계 정부와 기업이 친환경 에너지를 사용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금보다 10% 이상 줄여야 기후변화를 늦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맨해튼 프로젝트’를 가동해 몇 년 만에 핵폭탄을 만들어낸 것처럼 산호와 생태계를 살리려면 신속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로드하우 섬·리즈모어·브리즈번=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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