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채용장사 근절” 공채전환 선언했던 부산항운노조위원장이 ‘비리의 덫’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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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구속영장 청구
2005년엔 내부비리 고발… 투명사회상 받기도

부산항운노조의 고질적인 병폐이던 ‘취업 장사’ 비리가 또다시 터져 나왔다. 조합원 채용과정에서 불거지던 부패 사슬을 끊기 위해 조합원 추천 방식을 공개채용으로 바꾸겠다던 현 위원장마저 채용 비리로 검찰에 적발됐다. 2005년 이후 사법처리 된 전현직 부산항운노조 위원장만 6명이다.

○ 끝없는 취업 장사

부산지검 특수부(부장 차맹기)는 3일 조합원 채용 과정에서 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 등)로 부산항운노조 이근택 위원장(62)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씨는 조합원 채용 대가로 거액을 받고 일부 조합원의 근무지를 옮겨주는 과정에서 수천만 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씨는 지난해 1월 치러진 위원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선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금품을 받은 뒤 전보 인사 등에서 특혜를 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채용 대가로 조합원에게서 수천만 원을 받은 항운노조 지부장 2명도 구속했다. 검찰은 이들이 받은 돈 일부가 이 위원장에게 흘러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항운노조 채용 비리에 또 다른 노조 간부들도 연루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기로 했다.

취업 ‘검은 거래’ 연루 6번째 위원장

지난해 말에도 노조간부 선거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구직자 46명에게서 1인당 1800만∼2500만 원씩 모두 9억5000만 원을 챙겼던 항운노조 작업반장과 취업브로커가 적발됐다.

○ 2005년 이후 전현직 위원장 6명 연루

항운노조 위원장의 비리가 적발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2005년 부산지검의 부산항운노조 대규모 채용 비리 수사 때는 노조 간부 53명이 적발돼 34명이 구속됐다. 이 가운데 1987년부터 2005년까지 항운노조위원장을 지냈던 전현직 위원장 3명도 구속됐다. 이들은 채용과 승진 대가, 노조가 발주한 사업의 사례비로 적게는 수천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씩을 받았다. 2005년 6월 조합원 직선제로 선출된 조영탁 위원장도 2006년 취업자, 승진 대상자 10여 명에게서 5000만 원, 안전제품 납품업체로부터 사례비 2800만여 원을 받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조 씨를 누르고 2007년 당선된 이유덕 위원장은 2005년 7월부터 이듬해까지 항운노조 납품업체와 건설업체 등으로부터 수천만 원의 뒷돈을 받은 혐의로 역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씨는 당선 직후 “이전 집행부보다 더 강력한 개혁을 진행하겠다”고 공언했지만 2008년 불명예 퇴진했다.

4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는 이근택 위원장은 지난달 5일 추천 방식의 조합원 채용제도 대신 노사 심사를 거치는 공개채용 방식으로 바꿀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1947년 노조 설립 이후 노조가 조합원 채용과 인사권까지 독점하면서 불거진 부패 고리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 씨는 2005년 부산항운노조의 채용비리 당시 내부 비리를 폭로해 한국투명성기구로부터 투명사회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씨도 전임 위원장처럼 채용 비리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법처리를 받게 될 처지에 놓였다.

○ 여전한 폐쇄적 조직구조

2005년 채용 비리 사태 이후 신임 항운노조 위원장은 저마다 노무 독점공급권 포기, 업체별로 조합원을 고용하는 상용화 도입, 노조 내 감찰부와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클린위원회 신설, 대국민 사과 등 취업 비리를 뿌리 뽑기 위한 자정운동을 벌였지만 노조 조직 자체는 바꾸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수십 명에 이르는 지부장, 반장 등 노조간부가 조합원 근무 배치, 근로 기회 제공 등 실권을 갖는 폐쇄적 노조 조직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선거 과정에서 불거지는 계파 간 갈등도 여전하다. 한 해운회사 관계자는 “항운노조 취업 비리의 핵심인 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재로선 이 위원장이 제시한 조합원 공개채용부터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부산항운노조 :

조합원 수만 7500여 명에 이르는 국내 최대 항만노조로 1947년 출범했다. 부산항 북항과 신항, 감천항 등 부두와 냉동창고, 보세창고에서 화물을 싣거나 내리는 작업을 독점적으로 한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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