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7월부터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통해 의료사고의 시비를 가릴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환자나 가족이 의료소송에서 이기려면 자료를 모아서 의료진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했다. 앞으로는 환자가 중재를 신청하면 중재원 내 감정단이 환자를 대신해 의료진으로부터 자료를 제출받고 현지실사도 벌인다. 그동안 소송 이외에는 의료분쟁 해결 방법이 없었지만 중재원 합의를 이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의료소송으로 인한 경제적 시간적 낭비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는 29일 전체회의를 열어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안’을 의결했다. 중재원이라는 조정기구를 통해 의료사고 당사자와 의료진에게 조정안을 내놓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이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 논의를 거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내년 7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다.
그동안 시민단체는 “의학지식이 없는 환자가 의료진의 과오를 증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의사를 비롯한 의료진이 ‘의료행위에 잘못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의료계는 의료진이 입증 책임을 질 경우 소송이 남발되고 의사는 진료를 할 때 소극적·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번 의결에 따라 중재원 안에는 의료분쟁조정위원회와 의료사고감정단이 생기게 된다. 환자가 위원회에 의료사고가 났다고 신청하면 위원회는 감정단에 실사평가를 하도록 지시한다. 감정단은 의사와 환자 양측의 이야기를 듣고 양측이 내놓는 증거를 수집한다. 위원회는 감정단의 결과물을 토대로 조정안을 내놓는다. 위원회는 검사·판사·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 2명, 의료계에서 추천하는 사람 1명, 시민단체에서 1명, 의대 교수를 제외한 대학교수(부교수급) 1명 등 5명으로 구성된다. 배상금 액수까지 제안할 수 있다. 환자와 의료진이 중재안을 받아들이게 되면 의료소송까지 가지 않고 합의가 된다. 만약 조정이 성립됐는데 피해자가 손해배상금을 지급받지 못한 경우에는 중재원이 미지급금을 피해자에게 대신 지급하고, 해당 의료인에게 받아낼 수 있도록 대불제도도 운영된다. 국내 병원을 이용한 외국인 환자도 똑같이 참여할 수 있다.
특히 접수부터 판정까지 총 90일 안에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은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존 의료소송은 평균 2년 이상 걸렸다.
그러나 이번 의결이 정작 중요한 입증 책임 전환은 이뤄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날 전체회의에서 의사가 입증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온 최영희 민주당 의원은 “위원회의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결국 조정기구도 환자에게는 높은 벽일 수밖에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