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대입용” 거품 낀 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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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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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원 들여 해외원정 봉사… 1000시간 과잉 봉사…

《서울 양천구에 사는 고등학생 30여 명은 지난 겨울방학을 이용해 캄보디아로 8박 9일짜리 단체 해외봉사 캠프를 다녀왔다. 항공료 등을 포함해 1인당 150여만 원이 들었고, 현지 비정부기구(NGO)가 이들에게 40여 시간짜리 봉사확인증을 발급했다. 당초 30명을 목표로 모집한 이 해외봉사캠프는 70여 명이 신청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 조기에 신청이 마감됐다.》

“입학사정관 눈에 띄자” 일부 외고생 등 몽골-네팔로
“학생신분 어긋나면 감점” 대학측선 과잉봉사 경계


올해 2학기 H대 입학사정관 전형에 지원한 A 군(18)은 봉사활동을 강조하기 위해 한 병원에서 집중적으로 병원 봉사활동을 했다는 확인증을 발급받아 제출했다. 그런데 이 병원은 A 군의 아버지가 일하는 병원이었고, 허위로 봉사활동 확인증을 발급받은 게 드러나 결국 A 군은 지난달 말 떨어졌다.

대입에서 교과 외적 요소에 대한 평가를 강화하는 입학사정관제가 확대되면서 고등학생들의 봉사활동에 거품이 심해지고, 심지어는 허위 봉사활동 확인서까지 제출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입학사정관 전형이 확대되면서 이색봉사 경험으로 사정관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수십만∼수백만 원의 비용을 들여 캄보디아, 몽골, 네팔 등지로 해외 원정봉사를 다녀오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청소년 해외 봉사 수요가 많아지면서 일부 여행사나 해외봉사단체는 일선 고등학교의 의뢰를 받아 해외봉사 일정과 프로그램 견적을 뽑아 주고 현지 단체와 연결해 주는 사례도 있다. 한 청소년 해외봉사단체 관계자는 “학교나 청소년수련관 등에서 국가와 인원, 기간만 정해서 의뢰하면 현지 세부 봉사 일정과 가격 등 세부 견적을 보내줄 수 있다”며 “봉사확인증도 하루에 8시간 기준으로 확실히 발급해 준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입시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해외봉사는 아무래도 국내봉사에 비해 각 대학이 봉사 세부 내용을 검증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대학 지원 시 경력으로 앞세우기에 좋아 주로 해외 명문대학이나 국내대학 글로벌 전형 등에 지원하는 외국어고 학생들이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봉사에도 거품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심지어는 봉사활동 기록을 허위로 제출해 문제가 생기는 일도 적지 않다. 최근 경기교육청은 용인 B고가 학생의 허위 봉사확인서를 접수해 봉사실적을 부풀렸다는 국민권익위원회의 제보를 받아 해당 학교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또 H대에 지원한 수험생이 추석날 봉사했다는 증명서를 냈다가 면접에서 들통 난 경우도 있었다. 서울지역 고등학교 현직 교사 박모 씨(48)는 “부모가 대신 한 것으로 보이거나 봉사활동 없이 확인서만 있는 봉사실적을 학생부에 올리게 될 때가 있다”며 “눈에 보이는 피해를 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재학생들의 입시 경쟁력을 올려주자는 차원에서 학교가 과잉 봉사활동을 방조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학들은 과잉 봉사의 폐해를 경계하며 봉사활동 옥석 가리기에 들어갔다. 서강대는 2011학년도 수시모집부터 특기자 전형을 제외한 지원자들의 해외봉사 기록을 인정하지 않고 국내봉사활동도 20시간만 인정하기로 했다. 서강대 이욱연 입학처장은 “(봉사활동 기록을 보면) 어떤 단체에서 어떻게 봉사를 했다는 것인지 불분명하거나 무의미한 봉사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중앙대 박상규 입학처장도 “200시간 봉사는 보통이고 봉사시간이 1000시간 넘는 지원자도 있다”며 “특수목적고 학생이나 도시 지역 학생들이 좀 더 심한 편”이라고 전했다.

대학 관계자들은 부모 경제력에 기대거나 학생 신분에 걸맞지 않는 해외원정 봉사 등 과잉봉사는 합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건국대 입학처 관계자는 “봉사의 양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대학은 거의 없다”며 “해외 봉사든 국내 봉사든 이를 통해 어떤 삶의 교훈을 얻었고 무엇을 느꼈는지를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유덕영 기자 firedy@donga.com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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