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놀토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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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0일 03시 00분


《학교의 ‘놀토’(수업을 하지 않는 토요일)인 둘째, 넷째 토요일을 말 그대로 ‘노는 토요일’로 보내는 초중학생이 많다.
많은 학부모가 ‘자유시간’이라는 명목으로 자녀에게 컴퓨터 게임을 할 시간을 주거나 주중에 시간이 없어 가지 못한 학원에 보낸다.
물론 놀토를 활용해 휴식과 보충학습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만 전환하면 어떨까.
놀토는 짧게는 초등학교 6년, 길게는 중학교 때까지 9년 동안 매달 2번씩
하루를 ‘통째로’ 쓸 수 있는 날이다.
놀토, 전략적으로 활용하라.
‘노는 토요일’이 아닌, ‘놀라운 토요일’로 만들라.
다양한 기회를 통해 적성과 재능을 발견하고 인성과 리더십을 성장시킬 일석다조(一石多鳥)의 알짜배기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
이는 학생의 잠재력과 비교과 활동을 중시하는 대학의 입학사정관 전형이나 해외 대학 진학 시에도 특별한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수백만 원짜리 전문 포트폴리오, 해외 봉사활동, 고급 컨설팅?
필요 없다.
‘키워드’와 ‘맥락’이 있는 놀토를 스스로 기획, 실천, 관리하는 게 핵심이다.》○ 가족등산, 국제중 입시의 경쟁력으로

송태오 군(13·청심국제중 1)은 초등학교 시절 놀토의 대부분을 산에서 보냈다. 송 군이 4학년 되던 해부터 가족 모두 토요일 오전이면 집 근처 청계산에 올랐다. 처음엔 해발 400m가 채 안되는 옥녀봉에 오르는 것도 쉽지 않았다. 토요일이면 ‘다리가 아프다’, ‘몸살감기에 걸린 것 같다’며 꾀병을 부렸다. 6개월쯤 지나니 해발 600m에 가까운 매봉도 가뿐해졌다. 한여름엔 아버지와 단둘이 헤드라이트를 착용하고 야간산행을 했다. 1년간 이렇게 몸을 만든 후 송 군의 가족은 놀토마다 전국의 명산을 찾았다.

태백산, 지리산, 소백산, 무등산, 한라산까지 엄홍길 대장이 추천한 전국 명산 16좌 등반에 올랐다. 처음엔 놀토가 싫다면서 산에 안 갈 핑계를 찾기 바쁘던 송 군이 달라졌다. 자신의 키만큼 큰 조릿대가 무성한 좁은 숲길을 지날 땐 “옷에 조릿대가 닿아 부스럭대는 소리가 듣기 좋다”고 말했다. 꼬불거리는 숲길을 지나 탁 트인 산 중턱, 꽃이 흐드러진 들판을 보면 “와아!”라는 감탄사가 절로 터졌다. 14시간 걸려 지리산 정상에 오르고는 다리에 힘이 풀려 구르다시피 내려온 적도 있었다. 가을 무등산의 능선도 겨울 태백산의 눈꽃도 가족과 함께했던 놀토의 추억이었다.

등산을 한 후로 송 군의 체력, 인성, 참을성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명산의 정상에 올랐다는 특별한 경험은 송 군의 자신감을 높였다. 국제중에 지원할 땐 30여 곳 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A4용지 한 장에 인쇄해 포트폴리오로 제출했다. 누가 보아도 인상적인 놀토 활동이었다.

송 군의 어머니 박은정 씨는 “평발인 태오가 산에 오르며 얼마나 힘들까 걱정했지만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산을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면서 “가족과 함께 한 놀토 등산 덕분에 국제중에서도 체력과 지구력은 친구들에게 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 체험학습보고서는 창의·사고력의 보고(寶庫)

올해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한국과학영재학교에 합격한 박현이 양(14·서울 상계제일중 2)은 초등 저학년 때부터 토요일이면 집에 머문 적이 없었다. 가족이 함께 짐을 꾸려 전국 곳곳을 누볐다. 경주, 철원, 제주, 태백 등 도착하자마자 가족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지역의 박물관과 기념관이다. 지역에 대한 정보와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려는 것. 그 덕분에 박 양은 철원전적지기념관, 태백 석탄박물관, 동학농민혁명기념관, 나주배 박물관 등 수십 곳의 지역박물관과 기념관을 둘러봤다.

박물관에 도착하면 박 양은 동생 둘을 데리고 음성 서비스로 전시 설명을 듣거나 해설을 읽었다. 인상 깊은 것, 궁금한 점은 수첩에 메모하거나 그림으로 그렸다. 책에서 읽고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실제 내 눈으로 목격하니 호기심과 탐구심이 생겼다. 박 양은 “놀토는 공부스트레스 없는 즐거운 날”이라면서 “현장에서 직접 보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좋았다”고 했다.

박 양의 어머니 김인영 씨(41·서울 노원구 상계동)는 “어느 곳에 가든 아이들 스스로 보고 느끼는 활동을 중시했다”고 말했다.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는 농장에서 제주 재래흑돼지(일명 ‘제주 똥돼지’)를 직접 보고, 제주의 옛 대문인 ‘정낭’을 관찰하며 제주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감귤로 손수건 물들이기 체험을 하기도 했다.

박 양은 여행을 다녀와 반드시 ‘체험학습 보고서’를 남겼다. 방문한 곳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고 직접 찍은 사진, 박물관·기념관의 팸플릿을 붙였다. 철원전적지기념관을 찾았을 때 전쟁 당시의 총알이 박혀 있는 벽을 직접 그렸던 그림을 붙였다. 지리산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야생화를 그림으로 그린 뒤엔 귀가 후 백과사전에서 똑같은 모습의 꽃을 찾아 이름과 정보를 정리했다.

박 양의 살아있는 체험활동은 남다른 창의력과 사고력으로 이어졌다. 창의력 경시대회, 서울시교육청 탐구대회 은상을 받았고, 한국물리올림피아드 등 수십 개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한국과학영재학교 입학사정관 전형에는 직접 작성한 식물재배 관찰 보고서를 제출했다.

○ 자원봉사를 통해 ‘나’를 알다

김예찬 군(13·청심국제중 1)은 토요일 이른 오전 어머니와 함께 경기 광주시에 있는 한 중증장애인시설을 찾는다. 초등학생부터 30세 이전의 장애인이 생활하는 이곳은 어머니 민경란 씨(40·경기 성남시 분당구)가 매주 봉사하는 곳이기도 하다. 민 씨는 “놀토까지 영어, 수학공부를 시키고 싶지 않았다”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직접 만나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봉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보조 자원봉사자로서 김 군은 코에 튜브를 연결해 영양을 공급받는 초등생, 온몸이 비틀어져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지체장애인을 돕는다. 샤워를 마친 어린이의 머리를 말려주거나 양말을 신겨주는 일을 맡아 한다. 방 청소를 하거나 식사하는 것을 거들 때도 있다.

봉사를 하고 난 뒤 송 군은 “내가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하고, 이렇게 건강한 것이 감사하고, 건강해서 도울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부모님께서 주신 모든 것에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민 씨는 “2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지금처럼 아들과 함께 의미 있는 토요일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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