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정두언의 외고, 안병만의 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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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16일 02시 55분


솔직히 ‘외고’라는 장르의 고등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어슴푸레하게나마 짐작하게 된 건 몇 년 되지 않는다. 논설위원으로 있을 때 동료 위원들의 토론을 들으면서 ‘익히게’ 됐는데, 무척이나 낯선 느낌을 주는 학교였다. 주위 사람들이 너나없이 안달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전의 경기고나 경복고, 서울고 같은 명문고인 모양인데 이름이 왜 외고(外高)일까?’ 하고 갸우뚱거리기도 했다.
이름만 이상한 게 아니라 문제도 많은 듯했다. 사교육이나 입시 대책이 거론될 때마다 외고는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이번 국정감사장에서도 그랬다.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의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국감으로도 모자랐던지 TV와 라디오에 출연해 외고 개혁을 외쳤다. 외고나 과학고는 원래 외국어 잘하고, 과학 잘하는 애들을 뽑기 위한 특목고인데 이게 일류대학을 가기 위한 특목고가 돼버렸다. 그러니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특목고 과외를 하고, 학원을 다닌다. 특목고를 원래 목적으로 돌려야 한다. 영어 잘하는 애 뽑고, 과학 잘하는 애 뽑으면 되지 왜 전 과목 내신 성적을 다 보느냐는 게 정 의원의 일관된 개혁 논지다.
정 의원은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교육개혁 3인방으로 불리는 여당의 소장 실세다. 그런 그도 거대한 벽을 느끼는 듯 “안병만 교과부 장관이 답답하다” “악덕 사교육업체, 전교조를 비롯해 교사 이익에 매몰된 집단, 완고한 교육 관료들이 사교육 문제 해결을 가로막는 3대 주범이다”라고 하소연했다. ‘완고한 교육 관료들’이라고 했지만 누가 봐도 안 장관을 지칭하는 게 분명하다. 정 의원은 “안 장관은 외국어대 총장 시절 용인외고를 만들어 (외고에) 애착이 많다”고까지 했다. 국가 교육책임자가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떨치지 못하고 반(反)개혁의 주범 노릇을 하고 있다는 얘기니, 거의 인신비방이나 다름없다.
정 의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어제 “외고를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내겠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선전포고다.
외고 문제도 이제 비등점에 다가가고 있는 듯하다. 사실 외고는 우리 교육의 일그러진 초상(肖像)이다. 외고는 2001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할 때 ‘특수 분야의 전문적인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고등학교’로 선정됐다. 공업 농업 수산 해양 과학 예술 체육 국제 고등학교와 함께 9개 특수목적고의 하나였고, 시행령 90조 1항에는 ‘어학영재 양성을 위한 외국어 계열의 고등학교’라고 목적이 명시돼 있다.
이제 와서 케케묵은 입법 목적을 따져 뭐하겠다는 거냐고 반문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또 정 의원 말처럼 외고만 폐지하면 사교육을 잡을 수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학교가 ‘법 따로, 현실 따로’의 살아있는 교실이 돼선 안 된다. 아무리 ‘명품 교육’이라도 학교를 부동산 투기 같은 편법 곡예(曲藝)의 난장(亂場)으로 버려둬선 안 된다. 아이들이 ‘세상은 원래 그런 곳 아닌가요?’라고 반문할까봐 두렵다.
어느 교과부 간부는 “외고만 생각하면 교육정책 책임자로서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자괴감을 떨칠 수 없다”며 부끄러워했다. 답답하다. 법을 바꾸든지, 외고를 바꾸든지 해서 문제를 바로잡으면 될 것 아닌가. 무슨 다른 곡절이라도 있는가?
김창혁 교육복지부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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