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실패를 ‘경영’하라

  • 입력 2009년 10월 13일 02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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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중간고사 성적이 발표됐다.

서울 B 중학교 2학년 김모 군은 무표정한 얼굴로 성적표를 동그랗게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시험 직전 추석연휴에도 책이 아닌 TV 리모컨을 들고 있었다는 김 군.

“시험공부는 거의 안 해요. 해도 성적이 안 나오니까요. 괜히 공부한다고 책을 펴면 기분만 상해요.”

김 군은 초등학교까지만 해도 평균 97점 이상의 성적을 받은 우등생이었다.

하지만 그의 현재 성적은 반 30명 중 27등.

학급 반장을 도맡아 할 만큼 밝고 적극적인 성격도 180도 달라졌다. 김 군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또 한숨만 나오는 중간고사 성적?
이젠 더이상 어쩔 수가 없다?
NO!
실패엔 까닭이 있는 법, 그건 바로 나 자신
추락 멈추고 다시 오를 ‘날개’는 있다

김 군은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에서 처음으로 실패를 경험했다. 평균 성적이 75점으로 뚝 떨어진 것.

‘처음이라 그럴 거야.’

김 군은 낯선 성적에 당황했지만 공부시간을 늘리면 성적이 오를 거라 생각했다. 김 군은 1학기 초부터 다니던 수학, 영어 단과학원을 그만두고 전 과목 성적관리를 해준다는 종합학원에 등록했다. 기말고사 3주 전부턴 자정 무렵까지 시험공부를 했다. 기말고사에선 성적이 제자리를 찾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기말고사 성적은 기대만큼 오르지 않았다.

김 군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여름방학을 맞아 캐나다로 한 달 반 동안 어학연수를 떠난다는 생각에 들떠 또 한 번 실패를 지나쳤다.

○ 실패 또 실패… 실패가 ‘습관’이 되다

문제는 귀국 후 들이닥쳤다. 교과서 한 번 펼쳐볼 새 없이 2학기를 맞은 김 군은 수업을 따라가는 게 버거웠다. 2학기 선행학습을 한 친구들이 심화학습 문제를 척척 풀어내는 모습은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연습문제에도 쩔쩔매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너 이것도 몰라?” 친구의 말은 상처가 됐다.

점점 공부에 자신이 없어졌다. 책상 앞에 앉아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나 혼자만 모르는 게 아닐까? 너무 늦은 건 아닐까?’란 잡생각이 공부를 방해했다. 2학기 중간고사 결과는 참담했다. 세 번의 시험 결과 하위권으로 떨어진 김 군은 방황하기 시작했다.

쉽게 오르지 않는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였다. 들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아지자 학원에 가지 않는 날이 늘었다.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PC방에 자주 들락거렸다. 이른바 ‘노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학교에 가지 않는 날도 잦아졌다. 책만 보면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김 군은 “처음 성적이 떨어졌을 때 바로잡았다면 이렇게 바닥까지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이젠 공부에 관심도, 흥미도 없다”고 했다.

○ 실패의 원인은 내 안에 있다

학생이라면 누구나 실패를 경험한다. 입시에서, 중간·기말고사에서, 심지어 수학문제를 풀다가도 실패감을 맛본다. 특히 학업에 있어 첫 실패를 경험하는 순간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인 경우가 많다. 수학을 비롯한 주요 과목의 난도가 급격히 높아지기 때문.

대부분의 학생은 “수학문제가 너무 어려워졌다”며 외적요인을 실패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아니다. 1학기 때 배운 기초적인 내용이 2학기 때 응용·심화된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단원 간의 연관성을 무시한 채 공부한 ‘나 자신’ 탓이다.

경기 김포시 마송초등학교 김연우 교사(26·여)는 “1학기 때 도형 단원이 어렵다는 이유로 개념이해를 소홀히 하고 넘어간 학생은 2학기 때 도형에 공식을 적용해 답을 도출하는 응용문제에서 애를 먹을 수밖에 없다”면서 “4학년 때 수학에서 한 번 실패를 경험한 뒤 이를 바로잡지 않고 넘어가면 5, 6학년 때 똑같은 실패를 거듭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1학기,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첫 시험에서 ‘성적 하락’이란 실패를 경험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달라진 커리큘럼, 늘어난 학습량 등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 크다. 이런 경우에도 ‘자만심’ ‘타성’ 같은 내적요인이 가장 큰 원인이다.

서울 Y 고등학교 1학년 조모 양도 1학기 중간고사 때 전교 석차가 중학교 3학년에 비해 100등 가까이 떨어지면서 난생 처음 실패를 경험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까지 꾸준히 성적을 올려 3학년 2학기 기말고사에선 반 1등을 차지했던 조 양. 그만큼 충격은 더 컸다.

조 양은 1등을 차지했을 당시의 학습계획표와 중간고사를 위해 얼마 전 작성했던 학습계획표를 꺼내 비교하며 원인분석을 했다.

“중학교 땐 한 단원을 정리하는 데 2시간이 걸렸지만 고등학교 땐 같은 시간 동안 2, 3페이지 정도밖에 진도가 나가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한 과목-2시간’ 규칙에 따라 학습계획을 세웠으니 계획이 자꾸 어긋나고 목표했던 학습량을 채우지 못했죠. 모의고사처럼 교과서 외 지문이 문제로 출제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도 실패의 원인이었어요.”

학습 환경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채 예전의 공부방법을 고집했던 게 문제였다. 조 양은 시험 직후 기말고사를 위해 공부법을 완전히 개조했다. ‘단원-시간’으로 구성했던 학습계획표는 ‘페이지-시간’으로 적었다. 쉬는 시간, 수면시간은 물론 집중해서 공부한 시간과 그냥 책상에 앉아있던 시간까지 꼼꼼히 기록했다. 내신 시험기간이지만 주말을 이용해 언어, 수리, 외국어영역 1회분씩을 꼭 풀었다.

조 양은 1학기 기말고사에서 반 5등으로 성적을 올렸지만 “달라진 변화에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 실패보다 더 무서운 ‘심리적 실패’

열패감, 불안, 자괴감 같은 심리적 실패로 자기 페이스를 잃는 학생도 있다. 경쟁 관계에 있는 친구의 성적이 크게 올랐을 때, 학교 내신 성적과 모의고사 성적의 격차가 클 때,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성적의 편차가 심할 때 심리적 실패가 찾아온다.

서울 K 고등학교 2학년 문모 양은 “모의고사나 수능은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실제 성적이 떨어지지 않았어도 친구들의 성적이 오르면 내 점수가 떨어진 것과 다를 바 없다”면서 “시험 직후엔 실패했다는 생각 때문에 자꾸 불안해진다”고 하소연했다.

내 안에 숨어있는 실패의 씨앗,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이젠 실패를 성공적으로 ‘경영’할 때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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