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했던 섬 소록도, 소통에 눈 뜨고 소란에 속 끓고

  • 입력 2009년 9월 1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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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의 보금자리인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가 시끄러워졌다.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가 개통돼 외지인의 발길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몸이 불편해 전동차를 타고 가는 한센인 옆으로 관광객들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 제공 이남철 씨
한센인의 보금자리인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가 시끄러워졌다.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가 개통돼 외지인의 발길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몸이 불편해 전동차를 타고 가는 한센인 옆으로 관광객들이 걸어가고 있다. 사진 제공 이남철 씨
뭍과 연결 6개월
휴일 관광객 1800여명 몰려
곳곳 쓰레기… 일부 주민 반감
신종플루 탓 자원봉사 안받아
면역력 약한 환자 많아 긴장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도. 고흥반도 끝자락 녹동항에서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작은 섬이다. 면적은 여의도(8.4km²)의 약 1.5배. 아기 사슴을 닮은 소록도에는 1000여 명이 산다. 620여 명의 한센인 외에 200여 명의 병원 직원과 그 가족,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이다. 소록도는 올 3월 2일 육지와 연결됐다. 1916년 강제 격리 수용된 지 93년 만에 소록대교가 뭍과 섬을 이어줬다. 다리가 놓이면서 주민들은 격리의 세월을 끝내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육지 길이 열린 지 6개월, 소록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 다리 개통으로 엇갈리는 명암

8월 30일 오후 소록도에는 여름휴가 끝자락인데도 관광버스와 승용차 300여 대가 다리를 건너왔다. 병원 측은 이날 1820명이 소록도를 찾은 것으로 집계했다. 다리 개통 이후 소록도는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한동안 몸살을 앓았다. 5월에는 평일 300여 대, 주말 700여 대의 차량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관광객이 주로 찾는 곳은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중앙공원. 황금편백나무, 팔손이나무, 치자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주차장에서 700여 m 떨어져 있다.

소록도 사람들은 외부와 접촉할 기회가 많아졌지만 달갑지만은 않다. 섬에 쓰레기가 넘쳐나고 일상생활을 방해받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주민 신용만 씨(70)는 “낮잠 자고 있는데 불쑥 문을 열고 신기한 듯 쳐다보고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가 버린다”며 “우리가 무슨 동물원 원숭이냐”며 불만을 터뜨렸다. 이런 이유로 주민자치회에서는 4월부터 마을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김정행 소록도주민자치회장(69)은 “음식물 쓰레기를 몰래 버리고 노상 방뇨하고 어떤 관광객은 ‘문둥이들 어디 있느냐’라고 해 반감을 산 적도 있다”고 전했다. ‘소록도 사진사’로 통하는 이남철 씨(60)는 ‘소록도 지킴이’라는 인터넷 카페(cafe.daum.net/sorokchurch)에 ‘소록도를 사랑해주세요’라며 관광객들의 그릇된 행동을 꼬집는 사진을 올려놓기도 했다. 국립소록도병원 오은정 서무계장(43·여)은 “다리가 놓이면서 주민들이 많이 혼란스러워한다”며 “소록도를 관광지가 아닌 한센인의 치료와 재활공간으로 여겨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다리가 생겨서 꼭 불편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적막했던 마을은 외지에서 온 친척과 아이들로 웃음꽃이 피고 바다를 사이에 둔 도양읍 주민과 교류도 잦아졌다. 다리가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 역할을 어느 정도 하고 있는 셈이다. 장인심 씨(71·여)는 “며칠 전 친척 두 가족이 와서 휴가를 보내고 갔다”며 “밤중에 몸이 아프면 신속히 육지로 나가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다리가 생겨서 좋은 점”이라고 웃었다.

소록도로 가는 배가 출발하는 녹동항도 활기가 넘치고 있다. 박형안 도양읍번영회장(60)은 “활어 위판장과 횟집 매출이 크게 늘어 상인들도 다리 개통을 반기고 있다”며 “5월 축제 때와 읍민의 날에 소록도 주민들을 초청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 신종플루 걱정에 긴장

올가을 신종 인플루엔자가 유행할 것이라는 소식에 소록도 주민들은 외출을 자제하고 마을 행사도 취소하는 등 노심초사하고 있다. 국립소록도병원도 80세 이상의 주민이 절반 가까이 되는 데다 면역력이 약한 환자도 많아 바짝 긴장하고 있다.

병원 측은 7개 마을 이장들을 통해 매일 오전 신종플루 예방을 위한 안내방송을 하고 있다. 손 소독제와 마스크는 2개월 전에 이미 배포했다. 5개 마을 진료실에서 오전 9시 반부터 순회진료를 하면서 발열검사를 하는 등 주민 건강을 챙기고 있다.

주민 정월선 씨(55·여)는 “30여 년 전에 섬에 콜레라가 번져 섬이 한때 고립된 적이 있는데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며 “보름 뒤 동네 주민들과 충남 금산 인삼축제에 가기로 한 것도 취소했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신종 플루 예방을 위해 9월 한 달 동안 자원봉사자를 받지 않기로 했다. 9월 중 12개 단체 380여 명이 봉사활동을 할 예정이었으나 신종 플루가 진정될 때까지 방문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국립소록도병원 자원봉사계 김삼문 씨(55)는 “이런 일로 자원봉사자의 발길이 뜸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소록도=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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