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는 건 기술… 쓰는 건 예술”

  • 입력 2009년 8월 13일 02시 59분


음식 배달부터 시작해 자동차부품 판매점, 자연체험농원 사업 등으로 모은 300억 원을 KAIST에 기부한 김병호 서전농원 대표(68). KAIST에 거액을 기부한 사람 가운데 KAIST와 아무런 연고 없이 스스로 기부 의사를 밝힌 사람은 김 대표가 처음이다. KAIST는 12일 오후 교내 대강당에서 정문술 이사장, 서남표 총장 등 내외빈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 대표의 발전기금 기부 약정식을 열었다. 대전=연합뉴스
음식 배달부터 시작해 자동차부품 판매점, 자연체험농원 사업 등으로 모은 300억 원을 KAIST에 기부한 김병호 서전농원 대표(68). KAIST에 거액을 기부한 사람 가운데 KAIST와 아무런 연고 없이 스스로 기부 의사를 밝힌 사람은 김 대표가 처음이다. KAIST는 12일 오후 교내 대강당에서 정문술 이사장, 서남표 총장 등 내외빈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 대표의 발전기금 기부 약정식을 열었다. 대전=연합뉴스
KAIST에 300억 재산 기부한 서전농원 김병호 대표

이쑤시개도 8개로 잘라서 사용
한평생 ‘자린고비’로 재산 일궈

가족에겐 “10원 한장 기대말라”
기부엔 관대… 시신기증 약속도

“우선 이쑤시개를 가로로 두 토막으로 잘라요. 그런 다음 면도날로 다시 4등분 하죠.”

이쑤시개 1개를 8개로 만들어 쓰면서 재산을 모은 60대 ‘자린고비’가 KAIST에 300억 원 상당의 재산을 기부했다. 경기 용인시에서 서전농원을 운영하는 김병호 대표(68)는 12일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로 국민 모두가 잘살 수 있는 나라를 KAIST가 만들어 달라”며 300억 원 상당의 임야와 논밭 3필지 9만4733m²(약 2만8660평)을 내놓았다.

김 대표의 인생 신조는 ‘부지런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다(勤爲無價之寶)’와 ‘버는 것은 기술이요, 쓰는 것은 예술이다’이다.

○ 근검절약으로 재산을 모으고

전북 부안군 출신인 김 대표는 전쟁 탓에 학업이 늦어져 17세 때인 1958년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돈을 벌기 위해 보리타작 일로 번 76원(당시 보리쌀 한 가마니 값)을 들고 상경했다. 아버지는 천석꾼 집안의 막내아들이었지만 재산을 지키지 못한 데다 6·25전쟁 때 빨치산에게 재산을 모두 빼앗겨 빚쟁이들이 집안을 들락거리던 때였다.

서울에 도착한 그는 미아리의 한 식당에서 음식 배달 일을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해 별도로 수금사원과 청소 일도 했다. 이렇게 1년 동안 모은 2000원으로 자동차 기름과 부품 판매점을 시작해 4년 후에는 72.6m²(22평형) 아파트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때 부모님과 형제자매를 모두 서울로 불러들였다. 부인 김삼열 여사(60)는 “돈을 아끼려고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았고 무더운 여름날 1원을 아끼려고 남들이 다 먹는 사카린 음료수조차 사 먹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판매점 사업에서 돈을 벌자 김 대표는 26세 때인 1967년 시내버스 5대로 운수회사 지입사업을 시작했고, 돈이 모이면 용인 지역 땅을 사들였다. 그는 “돈 복이 있었는지 땅을 사는 족족 값이 크게 올랐다”고 귀띔했다. 그는 지입 사업을 10년 정도 한 뒤 용인시 원산면 좌항리에 5200여 그루의 밤나무 단지와 사슴, 오리 등의 사육장을 갖춘 자연체험농원인 서전농원을 차렸다.

○ 아낌없는 기부

아들 세윤 씨(36)에게 “아버지 재산은 10원 한 장 기대하지 말라”고 말해온 김 대표는 평소 KAIST 개혁에 감명을 받아오다 서남표 총장이 동아일보 인촌상 상금 1억 원을 비롯해 각종 상금과 강연료를 학교에 기부한다는 보도를 보고 KAIST 기부를 결심했다.

▶본보 2008년 11월 12일 A28면 참조
서남표 총장 또 1억 기부

KAIST 거액 기부자 중 이 대학과 아무런 연고 없이 스스로 기부 의사를 밝힌 사람은 김 대표가 처음이다. 아들 세윤 씨는 서울대 시각디자인학과를 나왔다. 가족도 흔쾌히 동의했다. 김 여사는 “처음에는 우리 가족보다 더 귀중한 것이 있나 하는 생각에 서운하기도 했지만 남편의 깊은 뜻에 따르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자린고비였지만 기부에는 관대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의금을 친척들 자제 교육비로 내놨고, 2005년에는 고향인 부안군 ‘나누미 근농장학재단’에 10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또 1993년 TV에서 시신 부족으로 연구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서울대병원장의 말을 듣고 자신과 아내, 아들 3명의 시신을 서울대에 기증하기로 약속했다.

12일 오후 KAIST 대강당에서 열린 발전기금 약정식에서 서 총장은 “앞으로 지을 정보기술(IT)융합센터에 김병호 대표와 김삼열 여사의 존함을 쓰겠다”며 “이분들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세계적인 과학기술자들을 배출하는 데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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