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학교, 高품질-高수익 동시만족 가능할까

  • 입력 2009년 5월 20일 02시 58분


■ 사교육업체 참여, 학부모-업체 입장 들어보니…

《최근 사교육 업체의 관심은 28일 발표될 교육과학기술부의 사교육 종합 대책에 쏠려 있다. 이날 ‘방과후 학교’에 영리기업의 참여를 어느 정도 허용할 것인지 결판이 나기 때문이다. 18일 교과부와 한나라당의 당정 협의 과정에서 일부 의원이 우려를 표명하긴 했지만 현재로서는 방과후 학교를 사교육 업체에 어느 정도 개방하는 게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다만 교과부는 방과후 학교를 통째로 영리기관에 위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보고 교과별로 분리해 개별 위탁하는 방안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교과부가 사교육 업체에 방과후 학교를 개방하려는 이유는 방과후 학교의 경쟁력을 높여 학원으로 향하는 학생들의 발걸음을 돌리려는 것이다. 그래서 논의 초기에는 방과후 학교를 영리기관에 일괄 위탁하는 것까지 허용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이 경우 학교가 아예 학원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아 논의에서 제외됐다. 》

업체, 수강료 낮게 책정땐 이윤 적어 참여 꺼려
싼 교재 채택땐 강의 質 하락… ‘학원강의 통로’ 우려도

교과부가 추진하는 방과후 학교의 영리기관 위탁에는 두 가지 전제가 선행돼야 한다. 먼저 사교육 업체가 방과후 학교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두 번째는 학생과 학부모가 영리기관이 운영하는 방과후 학교의 품질에 만족해야 한다.

○ 교과부와 사교육 업체의 동상이몽

사실 방과후 학교에 영리기업 참여를 허용하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교과부는 지난해 발표한 ‘4·15학교자율화 조치’에서 각 시도 교육청이 방과후 학교의 영리기업 참여 여부를 결정하도록 규제를 없앴다. 이에 따라 서울시교육청은 이미 방과후 학교에 영리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터놓았다.

하지만 지난해 위탁 운영된 방과후 학교 현황을 보면 매우 미미하다. 초등학교의 경우 비영리기관에 위탁한 학교가 14.9%인 반면 영리기관에 위탁한 학교는 0.8%였다. 중학교는 비영리기관 6.4%, 영리기관 0.6%, 고등학교는 비영리기관 3.2%, 영리기관 0.4%로 학년이 올라갈수록 외부 기관에 위탁하는 비율은 줄어들었다. 특히 방과후 학교를 영리기관, 즉 사교육 업체에 위탁해 운영하는 경우는 1%도 안 됐다.

왜 그럴까? 우선 학교장과 교사들이 영리기관의 참여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서울 J초등학교 교장은 “예체능이나 영어 원어민 강의를 외부에 맡기면 교사들이 별로 반대하지 않는데 교과목 강의를 맡기려고 하면 거부감이 심하다”며 “교과목은 교사가 가르쳐야 한다는 자부심, 외부 강사와 비교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같은 것들이 복잡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부 위탁에 대한 거부감은 초중고교로 올라갈수록 더욱 심하다. 특히 방과후 학교 강좌의 대부분이 교과목 강의인 고등학교의 경우 유명한 사교육 강사가 학교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한 교사들의 반발이 강하다. 이에 따라 교사들이 보충수업과 같은 개념으로 방과후 학교를 전담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교과부가 영리기업 참여를 허용한다고 해도 일선 학교에서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사교육 업체의 손익 계산도 변수다. 사교육 업체들은 일단 28일 대책에서 적극적인 영리기관 위탁 지침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현재는 대부분 시도 교육청이 영리기관 위탁을 금지하고 있고, 교과부의 구체적인 지침이 없다 보니 일선 학교들이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게 업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사교육 업체의 속성상 방과후 학교에 참여했을 때 얼마나 이윤을 남길 수 있을지에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방과후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저렴한 수강료다. 전국적인 영업망, 체계적인 교재와 교구, 폭 넓은 강사 자원을 확보하지 못한 채 몇 개 학교에만 참여해서는 ‘본전’을 찾기가 쉽지 않다. 방과후 학교의 영리기업 위탁이 허용된 서울 부산 대구에서도 현재 대형 업체인 대교와 웅진씽크빅 정도만 초등학교의 영어와 컴퓨터 강의에 활발하게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사교육 업체들은 수강료 이외의 다른 목적을 갖고 방과후 학교에 참여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방과후 학교를 학원이나 온라인 강의로 아이들을 끌어 모으는 ‘통로’로 삼을 것이라는 우려다. 전국적 체인망을 갖춘 유명 중등학원 관계자는 “만약 스타 강사가 방과후 학교에 나간다면 몇 푼 안 되는 수강료를 받으러 가는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며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자신의 학원 강의, 온라인 강의까지 듣도록 하려고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외국어영역 강좌로 유명한 한 인터넷 강사는 “특히 방학 중에는 학원으로 아이를 끌어 모으기 위해 방과후 학교에 진출하는 강사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교육 시장이 방과후 학교의 발전을 위해 움직일 것으로 생각한다면 ‘순진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라는 얘기다.



○ 사교육 업체의 방과후 학교, 품질도 관건

사교육 업체가 방과후 학교에 참여하면 학원 강의처럼 아이들을 끌어 모을 수 있을까? 학원 강사의 강의라면 인기를 보장할 수 있을까? 학교와 학원 관계자 모두 “지금과 같은 시스템이라면 100% 장담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사교육 업체들이 지적하는 가장 잘못된 시스템은 개별 학교를 대상으로 업체가 영업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학교마다 접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들고, 일부 사례지만 리베이트가 오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그런 비용을 제외하고 이윤을 남기려다 보니 당연히 강의료가 낮은 강사, 원가가 싼 교재를 투입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자연히 강의의 질이 떨어지는 악순환이 거듭된다는 것. 따라서 학부모들이 사교육 업체가 제공하는 강의의 가격, 강사의 실력, 명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공개경쟁의 장을 마련해 달라는 요구가 높다. 예를 들어 지역 교육청이나 시도 교육청이 사교육 업체가 제공할 방과후 학교 강좌의 품질을 어느 정도 검증하고, 이를 거쳐 소위 ‘시장에 나온 강좌’ 가운데 학교가 공개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 업체들의 요구다.

방과후 학교의 경쟁력을 위해 무조건 싼 수강료를 고집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역 특성과 학부모들의 수요를 감안해 학원 수요를 흡수할 수 있도록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목고 입시학원 관계자는 “강남, 목동의 학원비가 과목당 수십만 원씩 하는 이유는 건물 임차료와 셔틀버스 운영비, 상담비 등 각종 부대비용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방과후 학교에서 똑같은 강의를 제공하면서 10만 원, 15만 원을 받는다고 해도 가격 대비 효용을 따지면 만족도가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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