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代에 걸친 스승과 제자 인연…한 교정 ‘사랑의 교편’ 한마음

  • 입력 2009년 5월 14일 02시 57분


■ 이화여고 60~20대 동문교사 5명의 특별한 40년

“교사가 되어 모교로 돌아올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처음 부임하던 날, 마치 소풍 온 것처럼 날아갈 듯했죠.”

“학창시절 저를 가르쳐주신 선생님들과 함께 출석부를 들고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죠. 교사가 되고 첫해에는 너무 긴장이 돼 선생님들과 나란히 걸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종례가 끝난 교실에서 일부러 늦게 나오기도 했으니까요.”

14일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고 교정에 아주 특별한 인연을 가진 5명의 여성 교사가 모였다. 1970년부터 학생을 가르쳐 온 정창용 교장(62·가정)과 31년차 강경림(53·한문), 24년차 한소연(47·윤리), 16년차 이수경(41·생물), 6년차 권현지 교사(29·가정). 모두 이화여고를 졸업한 이들은 5대에 걸친 스승과 제자들이다.

1966년 이화여고를 졸업한 정 교장은 1970년 모교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해 1973년 강 교사를 가르쳤다. 강 교사는 ‘사제 5대’ 가운데 셋째인 한 교사를 1979년에 가르쳤고, 이어 한 교사는 이 교사를 1986년에 지도했으며 1998년엔 막내 권 교사의 담임을 맡기도 했다. 넷째 이 교사는 권 교사를 1996년에 가르쳤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40년을 함께한 이들은 스승이자 학생이었던 서로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했다.

강 교사는 37년 전 정 교장의 수업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그는 “정 선생님은 교사를 꿈꾼 내게 이상형과 같은 분이셨다”며 “온화한 미소, 친절한 말씨, 당당한 기품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시다”고 말했다.

정 교장의 그런 모습은 강 교사에게도 그대로 체현되었다. 강 교사의 제자였던 한 교사는 “교사란 그 외양조차 학생에게 가르침을 주어야 하는 것인데, 강 선생님은 언제나 단정하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모범을 보여주셨다”고 회고했다.

한 교사는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들에 대해 “이 선생은 작지만 똘똘하고 야무진 학생이었고 권 선생은 반장으로서 일도 잘하고 모범생이었다”며 “지금은 둘 다 학교 다닐 때보다 많이 말랐는데 이런 얘기 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웃었다.

제자였던 교사들은 자신도 교사가 되고 보니 예전에는 몰랐던 스승의 모습을 많이 알게 됐다고 말했다. 권 교사는 “학생 때는 이 선생님이 원리원칙에 충실한 엄격한 분인 줄로만 알았는데 함께 일해 보니 무척 따뜻한 분이다”며 “아이들을 엄마처럼 챙기신다. 반지가 손가락에 끼어 빠지지 않는 학생을 직접 병원까지 데리고 가시기도 했다”고 전했다.

사제지간인 이들에겐 다른 직장에서 볼 수 없는 남다른 애정과 동료의식이 있다. 막내 권 교사는 자신을 가르친 선생님들을 ‘학교 엄마’라고 부른다. 그는 “담임이셨던 한 선생님을 비롯해 모두들 나를 딸처럼 타이르고 조언도 해주신다”고 말했다. 강 교사는 “모교 출신인 만큼 더 잘해주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며 “마음속으로 늘 응원한다”고 말했다.

사제 5대의 첫째인 정 교장은 올해 8월로 학교를 떠난다. 그는 가족과 같았던 교사들에게 당부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요즘 교사의 위상이 떨어졌지만 교사는 공부만 잘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에요. 우리 모두 인성과 지성을 함께 배양한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이들과 같은 훌륭한 제자가 나온 것이죠.”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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