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뚫린 ‘보조금 어망’… 69억 샜다

  • 입력 2009년 5월 1일 02시 56분


어민들, 허술한 실사 등 허점 이용 돈 빼돌려

사업비-조업일 위조 등 비리 작년 98건 적발

해양경찰청은 지난달 24일 경남 통영시 K어촌계장 유모 씨(62) 등 어민 6명을 보조금의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적발했다. 이들은 2006년 12월 한 수산물 양식업자에게서 바다에 뿌릴 바지락, 전복 등의 종패(種貝)를 1억2000만 원어치나 더 납품받은 것처럼 부풀려 꾸민 서류를 통해 정부 보조금 2억4000만 원을 챙겼다. 또 2007년 12월에는 공사비가 9700여만 원에 불과한 수산물판매소를 신축한다며 건설업자와 짜고 서류를 만들어 보조금 1억6000만 원을 받았다.

이들이 최근까지 부당하게 받은 보조금은 모두 8억8500만 원에 이른다. 정부가 2000년부터 시작한 ‘자율관리어업’ 육성지원사업의 허점을 교묘히 파고든 것이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공무원이 현지 실사를 한 번 나왔지만 배를 타고 바다를 둘러본 뒤 그냥 돌아가기에 사업비를 부풀릴 생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 보조금은 눈먼 돈

정부가 어업 분야에 지원하는 각종 보조금이 곳곳에서 새고 있다. 보조금을 받는 데 필요한 서류만 만들어 신청하면 쉽게 받아 빼돌릴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실제로 보조금을 허위로 타낸 혐의로 해경이 적발한 범죄는 지난해에만 98건(69억여 원)에 이른다.

연근해업구조조정사업(어선 감척 사업) 보상금은 어민들 사이에서 ‘눈먼 돈’으로 통한다. 해경은 버려진 어선을 줄이는 것처럼 속여 보상금을 받은 혐의(사기 등)로 최근 전북 군산시 S어촌계 조모 씨(68) 등 5명을 입건했다.

이들은 지난해 4월 어촌계장 등과 짜고 연간 60일 이상 조업한 것처럼 ‘어업사실확인서’를 위조한 뒤 바닷가에 버려진 10t 규모의 폐선 4척을 감척하겠다며 1억여 원을 타낸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조업일을 공무원이 파악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이용한 것이다.

태풍이나 호우로 양식시설에 피해를 보았을 경우 정부가 주는 재난지원금도 마찬가지다. 충남 서천군 B어촌계 소속 김 양식업자 정모 씨(54) 등 3명은 지난해 4월 4억9000만 원을 빼돌렸다.

김 양식장 5400여 m²와 어망 등이 유실됐다며 가짜 영수증을 제출해 지원금을 받은 것. 이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인 정모 씨는 한 술 더 떠 가짜 사진을 찍어 ‘준공검사결과보고서’를 만들어 준 혐의(허위공문서 작성)로 적발됐다.

○ 보조금 지급 시스템 수술해야

정부가 매년 지원하는 어업분야 보조금은 93개 사업에 1조 원에 이른다. 정부나 민간단체가 직접 지급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지방자치단체가 정부에서 지침과 예산을 받아 보조금을 나눠준다.

그러나 보조금 지급에 관한 정부와 지자체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아 그동안 사실상 범죄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어민들이 신청한 보조금 지급 업무를 담당하는 지자체의 공무원은 대부분 1, 2명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사업비 집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현장실사는 수박겉핥기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영수증과 세금계산서에 의존할 뿐 사용명세를 확인할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보조금 지급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조금 집행명세에 대한 실사를 강화해 부당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날 경우 규정대로 이를 적극적으로 회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경 정보수사국 박종철 기획수사계장은 “서류만 조작하면 보조금을 쉽게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비리 행위가 전국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보조금이 새지 않도록 정부가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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