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나한테 말걸지마’

  • 입력 2009년 4월 14일 03시 01분


학원버스안의 불문율 ‘나한테 말걸지마’

‘막간’이용 벼락치기 시험공부… 단어암기… 대부분 긴장-한숨

“버스 안에서도 공부해요?”(기자)

“학원에 도착하기 전 20분. 바로 이 시간이 제일 중요해요. 수업시간에 단어시험을 보는데 중간고사 기간엔 따로 시간 내서 공부할 수 없거든요. 시험 못 보면 수업 끝나고 ‘나머지 공부’해야 하는데, 시험 못 보고 한 시간 더 공부하는 것보단 20분 반짝 공부해서 시험 잘 보는 게 낫죠.”(중 3 심모 양)

“학원에서 하루에 단어 몇 개를 시험봐요?”(기자)

“그때그때 달라요. 오늘은 180개 정도요. 시험 못 보면 다음 학원에 오는 날에는 더 일찍 학원에 와서 재시험을 봐야하기도 해요. 그럼 초등학생들이랑 함께 학원버스를 타야 하는데요. 진짜 창피하죠. 그만 물어보시면 안 될까요? 저 단어 외워야 되는데….”(심모 양)

7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어학원이 운행하는 45인승 학원버스 안.

탑승한 학생 대부분이 ‘나한테 절대 말 걸지 마’ 하는 표정으로 단어암기에 열중하고 있다(웅크리고 토막 잠을 자거나 닌텐도 DS를 즐기는 몇 명을 제외하고). 중간고사를 앞두고 있어서인지 학교에서 나눠준 프린트를 뚫어져라 보는 학생도 있었다. 저러다가 멀미가 나진 않을까.

오후 7시 35분. 버스가 학원 앞에 당도했다. 13대나 되는 대형 학원버스가 도로에 일렬로 쫙 늘어선 모습은 장관이었다. 한 손엔 무전기를, 다른 한 손엔 확성기를 든 승하차 도우미들은 학생들이 일사불란하게 하차해 중간에 ‘새지’ 않고 학원 정문으로 직행하도록 지도했다.

수업 시작 10분 전. 학원 로비에서 서울 신도림중 1학년 어승혜 양(13)을 만났다. 어 양은 일주일에 두 번 이 학원에 오기 위해 왕복 50분∼1시간 학원버스를 탄다. 학원에 올 땐 가장 먼저 타고, 집에 갈 땐 가장 늦게 내리지만 어 양은 “힘들기는커녕 즐겁다”고 말했다.

“초등 4학년 때부터 학원 버스를 타고 다녀서 힘들진 않아요. 오히려 버스 안에서 친구들이랑 ‘슈주’(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줄임말) 얘기를 하며 수다 떠는 게 즐겁죠. 학교에서는 얘기를 나눌 시간이 많지 않거든요. 특목고 입시나 중간고사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서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해요.”

하지만 3학년 언니, 오빠들이 유독 많이 타는 날엔 분위기가 확 바뀐다. 어 양도 조용히 소설책을 읽거나 토막 잠을 자며 에너지를 보충한다. 버스 안에서도 학년의 위계서열은 철저히 지켜진다고 어 양은 말했다.

“요즘은 학원버스 타는 재미가 반으로 줄었어요. 화요일 밤엔 버스 내에 있는 TV로 ‘F4’(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등장했던 미남 4인조)를 지켜보는 게 낙이었는데 얼마 전에 끝났거든요. 버스에 오를 때마다 구준표나 윤지후(F4 멤버 중 2명) 같은 멋진 선배와 함께 버스를 타고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해요(웃음).”

남자친구와 같은 학원에 다니면서 ‘버스 데이트’를 즐기는 친구들도 있다고 어 양은 귀띔했다.

서울 목일중 1학년 신현준 군(13)은 “버스 안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나 형들을 보면 자극도 많이 돼요.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니까 다 참고 다니는 거죠”라고 말했다. 자동차 멀미가 유독 심한 신 군은 자전거를 타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든 ‘고통스럽지 않게’ 학원에 다닐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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