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곳’ 노인요양시설, 텅텅 빈 애물단지로

  • 입력 2009년 4월 4일 02시 55분


서울과 지방의 노인요양시설이 심각한 수급불균형을 겪고 있다. 경기 여주군의 한 요양시설. 58개의 병상 중 50개가 비어 있다. 여주=남윤서 기자
서울과 지방의 노인요양시설이 심각한 수급불균형을 겪고 있다. 경기 여주군의 한 요양시설. 58개의 병상 중 50개가 비어 있다. 여주=남윤서 기자
본보 전국 1593곳 분석

지방행 꺼려 수급 불균형… 192곳은 반도 안차

전체 병상 수는 충분하지만 서울은 2년씩 대기

“설비도 중요하지만

가까운 곳 더욱 선호

총량만 따졌던 정부

노는 시설 구제 난감”

《경기 여주군의 노인요양시설 ‘노아시니어밸리’. 앞쪽으로는 벚나무가 도열해 있었고 뒤쪽으로는 야트막한 언덕에 개나리꽃이 피기 시작했다. 한적한 멋이 돋보이는 3층짜리 벽돌 건물이다.

2월에 문을 열 때까지만 해도 노인들이 앞 다퉈 올 줄 알았다. 그러나 착각이었다. 58개의 병상 가운데 8개만 차 있다.

2층만 사용하고 나머지 층은 아예 불을 꺼 놓아 서늘한 기분까지 든다. 지하 1층 물리치료실은 치료기 3대와 운동기구들이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놓여 있다. 세탁실에는 비닐 포장을 벗기지 않은 환자복과 이불이 쌓여 있다. 목욕실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 바닥이 바싹 말라 있었다.》

충북의 한 노인요양시설을 대중교통으로 찾아가려면 단단히 맘을 먹어야 한다. 버스로 한참 들어가야 간이 정거장이 나온다. 정거장에 내리면 시설까지 걸어 들어가야 한다. 거리만 4km나 된다. 그나마 버스도 뜸하다. 노인들은 이곳에 요양시설이 있다는 것도 잘 모른다. 27명 정원에 5명만 입주한 상태.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반면 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노인요양시설은 병상이 없어 입소하려면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노인요양시설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는 서울 시민은 지방의 이런 사정을 이해하기 힘들다. 서울 마포의 시립서부노인전문요양센터는 3월 16일 현재 344명이 입소를 기다리고 있다. 이 센터 관계자는 “지금 대기자 명단에 올리면 남자 노인은 1년 6개월, 여자 노인은 2년을 기다려야 입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다리다 거의 화병에 걸릴 지경이다. 노인요양시설의 수급불균형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 서울 ‘북적’ vs 지방 ‘텅텅’

월 16일 현재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신고된 시설은 전국적으로 1844곳이다. 그중 데이터가 부실한 251곳을 뺀 1593곳의 정원과 잔여 병상, 대기자 수를 분석해 봤다. 1593곳의 병상은 총 6만3426개. 분석 결과 85%인 5만3701개의 병상이 찬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자로 등록된 노인은 모두 7320명. 만약 이들이 지역을 따지지 않고 입소한다면 6만1021개의 병상만으로 충분하다. 현재 시설만으로도 2405개의 병상이 남는 것. 즉, 노인시설 자체가 부족한 것은 아니다. 실제 모든 병상이 다 차 있는 시설은 519곳(33%)에 불과했다. 반면 병상의 절반도 차지 않은 시설이 192곳(12%)이나 됐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과 제주의 노인요양시설은 병상이 꽉 찼다. 서울 132곳의 정원은 4739명이다. 현재 95%(4510개)의 병상이 차 있고 229개가 비어 있다. 1인실과 2인실처럼 이용료가 비싼 병상을 빼면 사실상 거의 모든 병상이 차 있는 것이다. 3246명의 대기자까지 포함하면 3017개의 병상이 더 필요하다. 제주 29곳의 정원은 1477명이다. 93%(1377명)가 차 있고 181명이 대기 중이다.

나머지 지역은 상당수가 텅텅 비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광역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특히 울산 26곳의 병상은 1322개이지만 74%(980개)만 차 있다. 전국에서 가장 낮은 수치다. 광주도 81%만 차 있다.

○ 정부 준비와 홍보 부족

부모는 자식 곁에 머물길 원하고, 자식이 부모님을 멀리 떨어진 시설에 모시면 불효라고 믿는 한국적 정서가 이런 격차를 만들었다. 서울에 유독 새로 지은 시설이 많은 것도 한 원인이다. 서울에서 가장 붐비는 마포구나 노원구의 요양시설은 대부분 지난해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실시하기 직전에 만들어졌다. 다른 광역시도 새로 지은 시설로 쏠림 현상이 강하다. 반면 같은 서울이라도 건물과 설비가 낡은 강서구의 한 시설은 병상이 남아 있다. 1986년 양로원으로 지어진 시설이다.

정부의 준비가 미흡했던 점도 지적된다. 지난해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 제도를 시행하기 전 보건복지가족부는 병상을 확보하기 위해 10인실 이하의 양로원이나 복지관에 대해 ‘병상 상향조정’을 권했다. 이에 따라 병상이 9개에서 25개로 늘어난 시설이 전국에 수백 개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시설은 건물도 낡고 지리적 접근성도 떨어져 대부분의 병상이 비어 있다.

경기 남양주 ‘섬기는요양센터’의 서경춘 시설장은 “건보공단에서 노인요양시설을 안내할 때는 꼭 그 지역의 시설만 알려준다”며 “외부로 가고 싶어도 시설에 대한 정보를 구할 수 없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노아시니어밸리의 황요환 이사장은 “일본의 우수 시설을 직접 벤치마킹해 이 시설을 세웠는데 정작 지역 노인들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뭔지도 모르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14곳은 대기자 100명 이상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이용자가 특정 시설에만 몰리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현재 대기자가 100명이 넘는 시설이 전국적으로 14곳이다. 인천에 1곳, 경기에 2곳을 빼면 11곳이 모두 서울이다.

344명이 대기자 명단에 올라 있는 서울 마포구 시립서부노인전문요양센터는 물론이고 서울 노원구의 서울시립중계노인복지관도 341명이 대기 중이다. 지방 시설 가운데는 경기 수원의 수원보훈요양원이 127명으로 대기자가 가장 많다.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난감하다. 지난해 7월만 해도 “전국적으로 6만여 명의 노인이 입소하고 7만여 개의 병상이 확보돼 있기 때문에 수급에 별 차질이 없다”고 밝혔는데 지금은 “다들 서울만 선호하니 어쩔 수 없다”며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건보공단도 마찬가지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많이 몰리는 서울지역은 시와 종교단체에 시설 증축을 건의했으며, 공단에서도 3개 시설을 별도로 만들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 소재 노인요양시설의 과밀현상을 해소한다고 해도 병상이 남아도는 지방시설 구제책은 없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시설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될 것”이라는 말만 하고 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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