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실기로 성적 뒤집기? 그건 거의 로또!
19일 오전 0시 10분. 졸음을 참으며 컴퓨터를 켰다. ‘미대 준비생의 애환’을 털어놓겠다는 그녀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공부로 대학 못 갈 것 같으니 미술이나 해야겠다는 말이 제일 싫다’는 그들과의 메신저 토크를 지상 중계한다.
봉 기자: 늦은 시간, 아니 이른 새벽;; 달려오신 여러분 감사해요. 자기소개 부탁.^^
소묘천재: 경기 분당 사는 고2 여.ㅋㅋ
디쟌: 서울 살고 고3이염. ㅠㅠ 저 땜에 늦었죠? 집에 오면 이 시간이에욤.
봉 기자: 소묘 님은 고2니까 좀 여유 있죠?
소묘천재: 월, 목, 금, 토 학교 끝나고 미술학원으로 고고싱(간다). (오후) 6시에 가면 10시에 끝나요. 틈틈이 영어 과외하고 언어학원 가요.
디쟌: 저도 비슷해요. 수업 끝나고 학교에서 저녁 먹고 10시까지 학원에서 미술 실기. 바로 독서실 가서 12시 반까지 공부하고 집에 와 못 다한 공부하고 잠을 청한답니다. +¤+ 실기랑 공부 병행한다고 하루에 3, 4시간 자는 애들 있는데 좀 심하고요. 5시간 정도는 자줘야 다음날 지장이 없어요.^^;;
봉 기자: 미대 준비생의 고민을 털어놔 봐요.
소묘천재: 공부하기 싫다고 ‘미술이나 해야겠다’ 그런 애들 진짜 어이없어요.
디쟌: 말리고 싶죠.ㅎㅎ
소묘천재: 전 성적 쫌만 나왔으면 미술 안 했을 거예요. 성적도 인문계 애들만큼 나와야 하고 그림도 힘들고요. 3월부터 소묘(대입 실기 과목) 시작했는데 손이 느려서 진짜 힘들어욤. ㅠㅠ
디쟌: 음…. 상위권 미대 가려면 내신+수능+실기 모두 완벽해야 해요. 세 마리 토끼 다 잡는 게 사실 힘들죠. 일단, 성적 안 나오면 상위권 대학은 포기해야 해요.
봉 기자: 그림 잘 그리면 뒤집을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디쟌: 아뇨. 그림으로 성적 뒤집는 건 거의 로또 맞는 수준이에요. 내신이나 모의고사 1, 2등급 나오는 애들이 미대 지망해요. 성적이 대학 레벨을 결정하고 실기가 합격, 불합격을 결정하거든요. 일단 성적 돼야 하고, 실기 안 되면 또 포기해야 하고요. 작년에 저희 학원에서 수능 평균 1, 2등급 나온 언니가 홍대 디자인학부 떨어졌어요.
소묘천재: 대학 문은 좁고 미대 입시생은 많다보니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따기. ㅠㅠ;
봉 기자: 홍익대가 실기고사를 폐지할 계획이라는 소식에 대한 반응은 어때요?
소묘천재: 거의 공황 상태예요.@@ 전 중학교 때부터 공부는 뒷전이고 미술만 했는데 갑자기 확 바뀌어서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학원 샘(선생님)들은 ‘실기 폐지는 음대에서 악기 못 다루는 학생 뽑는 거나 마찬가지다. 바로 시행되진 않을 거다’ 이러면서 안심시키는데 선생님들 말을 믿어야 할지.
디쟌: 그림 그리는 기술보다 잠재력과 창의력 뛰어난 학생을 뽑겠다는 취지라니 찬반 의견을 내놓기도 조심스러워요. 그래도 실기고사를 완전 폐지하는 건 너무 위험한 발상인 것 같아요. 입시 미술의 폐해가 심하다고 하더라도 좀 더 나은 방안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너무 갑작스러워서 말이 많은데 일단 지켜봐야겠죠.
봉 기자: 으아∼. 정말 고민 많겠어요. 혹시 디쟌 님은 홍대 준비 중?
디쟌: 넵? 네엡;; 사실 말이 ‘홍대’지, 실제로 미술 하는 애들 중에 홍대에 원서조차 못 쓰는 학생이 태반이에요. ‘미대 하면 홍대’라는 일반인의 인식. 완전 부담∼.
소묘천재: 흔들리지 않고 열심히 그림 그리다보면 언젠가 기쁜 날 오겠죠? 뼈 빠지게 돈 벌어서 학원비 대주시는 부모님께도 미안하고 입시 쪼끔만(조금만) 바뀌어도 귀 커다래져서 술렁이는 거, 정말×100 지쳐요. ㅠㅠ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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