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가 만난 사람] 산불진화 헬기 기장 김무창

  • 입력 2009년 2월 28일 08시 18분


지난 대보름날, 경남 창녕 화왕산에서는 불놀이를 하다 산불이 나 관광객 4명이 숨지고 70여 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이날의 풍속은 초속 4.5m. 강풍은 순식간에 불씨를 사방으로 옮겼고 메마른 산을 태웠다. “억새밭 주변에 방호선을 구축해 풀을 베어내고 물을 뿌리는 안전대책을 세웠다”던 창녕군의 말은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무색했고, 무력했다.

호주 빅토리아주를 강타한 동시다발적 산불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산불 발생 십 수 일이 지난 현재까지도 여전히 진압되지 않고 있는 이 재앙은 200여 명의 사망자와 2000여 채의 주택 전소·파손을 낳는 등 최악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어느 정도 잡힐 듯 보이던 호주 산불은 이번 주말 다시 기승을 부릴 조짐이 보여 37개 학교가 휴교에 들어갔다.

호주 기상청은 남호주의 한낮 기온이 섭씨 30도를 웃돌면서 건조한 북풍이 시속 50km로 불어 주 전체가 산불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2005년 4월 5일 산림청 양산산림항공관리소(소장 이창범) 김무창(52) 기장은 당시 헬기로 낙산사 상공을 날고 있었다. 김 기장 뿐만아니라 모든 조종사들이 눈물을 삼키며 사력을 다해 불 속으로, 연기 속으로 날아들어 물을 투하했지만 이미 기세를 얻을 대로 얻은 불길 앞에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양양 산불은 낙산사 대부분의 건물을 전소시키는 등 대규모 피해를 낸 최악의 재앙이 됐다. “눈으로 보면서도 막지 못했다는 거죠.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일 겁니다.” 김무창 기장은 30년 경력의 베테랑 헬기 조종사다.

육군에서 22년 간 헬기를 조종하다 소령으로 예편했고, 산림청으로 옮겨 8년째 임무를 수행 중이다.

- 조종사 중에 군 출신이 많으신 모양입니다.

“100%가 군 장교 출신입니다. 육군이 많고, 일부 공군과 해군 출신도 있죠. 이유가 있어요. 산림청 조종사 입사 조건이 1500시간 이상 비행경력입니다. 이 시간을 채우려면 최소한 군에서 10∼20년 복무해야 되거든요. 그 만큼 산불진압을 위해서는 기술이 축적된 조종사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베테랑 조종사들을 선발하다 보니 아무래도 조종사들의 연령층이 높을 수밖에 없다. 양산관리소만 해도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산불이 발생하면 지자체를 통해 산림청으로 접수가 된다. 제보가 확인되면 산림청 본부에서는 화재 현장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항공관리소로 출동을 지시한다. 출동 명령이 떨어지면 일단 조종사가 먼저 날아가서 현장 상황을 살핀 뒤 무전으로 산불규모, 진화, 임상과 바람상태 등 개략적인 브리핑을 한다. 그리고 본격적인 임무 수행에 들어간다.

산불과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불을 끄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하다. 물은 화재 현장 인근의 저수지, 호수, 하천 등에서 얻는다. 이것을 담수라 하는데 매우 고난도의 기술을 요하는 작업이다.

“대형산불은 대개 바람이 강하고, 건조한 날 발생을 합니다. 바람이 강할 때면 담수과정이 아주 위험하죠. 하강풍(헬기의 로터가 회전하면서 생기는 바람)이 어마어마한 데다 본래 바람이 강하니 담수를 할 때 엄청나게 물보라가 튑니다. 이럴 땐 헬기 앞이 아무 것도 안 보여요. 담수를 할 때는 여러 대의 헬기가 동시에 작업을 합니다. 시야가 확보되지 않으면 아주 위험하죠. 이따가 보시면 무슨 뜻인지 아시게 될 겁니다.”

- 꼭 담수를 해야 합니까? 수돗물로 탱크를 채우면 위험하지도 않을 텐데요.

“하하!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산불진압에 쓰이는 주력기는 러시아제 KA-32T로 일명 ‘카모프’라고 합니다. 이 기종이 약 3000리터 정도의 물을 담을 수 있습니다. 이 정도 양을 수돗물로 담으려면 10∼20분쯤 걸릴 겁니다. 불이 난 상황에서 그럴 시간이 없죠. 게다가 물을 넣고 언제 화재현장까지 날아가겠습니까. 그러니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담수지로 날아가 물을 채울 수밖에요. 헬기 양쪽에 강력한 스노클 펌프가 달려 있어요. 이걸 가동하면 1분이면 탱크를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밤에는 산불 진화를 하지 않는다. 일몰 때까지 진화가 종료되지 않을 때는 현장에서 가깝고 안전한 계류지역을 확보한 뒤 밤을 지새우고 나서 다음날 일출부터 시작한다. 야간비행 자체가 어려운 데다 시야 확보가 되지 않아 진화작업을 할 수가 없다. 기상 변화를 예측하기 힘들다. 담수도 곤란하다. 공중 진화작업은 대낮에도 곳곳에서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하물며 밤은 말할 것도 없다. 규정상으로도 진화는 일출부터 일몰까지로 돼 있다. 이는 외국도 마찬가지이다.

- 산불진화를 할 때도 ‘작전’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작전을 총괄하는 선임 조종사가 있습니다. 대형 산불이 발생할 경우 산림청 헬기뿐만 아니라 군, 지자체, 민간 임차헬기 등 다수의 헬기가 동시에 현장에 투입됩니다. 여러 항공기가 같은 지역에서 산불을 끄다보면 가장 위험한 것이 충돌이죠. 그래서 선임기장이 긴급재난 주파수를 이용해 전체를 통제해야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산림청 헬기는 북쪽으로 가고, 군 헬기는 남쪽, 임차항공기는 서쪽을 꺼라 … 누구누구가 먼저 담수를 하라 … 식이죠. 지상과의 교신도 중요합니다. 공중에서 보는 상황과 지상에서 보는 것이 다를 수 있거든요. 공중에서 보면 연기로 지상이 차폐됩니다. 인가, 사람, 가축 이런 것들을 공중에서는 보기 힘듭니다.”

- 산불진압작업에서 위험한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조종사들이 산불을 꺼야겠다는 사명감이 투철하다 보니 산불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려고 하다가 사고가 나는 것이죠. 산불 현장은 불과 연기가 혼재된 상황입니다. 욕심을 부리다 자칫 그 안으로 들어가 버릴 수가 있어요. 능선, 고압선 등 여러 장애물도 있죠. 불을 끄기 위해서는 자기 불과 함께 주변 경계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서로 교신을 하고,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다는 걸 인지해야 하는데 그걸 못 하는 거죠.”

제일 위험한 것은 김 기장의 말대로 산불을 진화하겠다는 사명감에 불타 불과 연기 속으로 기체를 몰고 들어가는 것이다. 대개 30∼50미터 상공에서 물을 투하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10미터까지도 접근해야 할 때도 있다.

“가슴 아픈 사례도 많지요. 2000년에 안동 길안 쪽에서 진화하다가 우리 항공기와 경북 소방항공기 간에 서로 회피하는 과정에서 추락을 하고 말았죠. 조종사 두 명과 정비사 한 명, 모두 세 명이 순직했습니다.”

김 기장의 눈가가 붉어져 온다. 고인들과의 친분이 깊었을 것이다. 2004년 포항 산불 때에는 해군 군용항공기가 밤비 바켓(긴 줄을 매단 물바구니)으로 담수작업을 하다가 난기류로 인해 추락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 출동 대기를 하는 날이 많으시겠죠?

“항상 하고 있죠. 산불조심기간 동안은 더 합니다. 기상이 건조주의보냐, 경보냐, 평시냐에 따라 산림청으로부터 대기해야 할 헬기 대수가 지정됩니다. 주 5일 근무가 되면서 주말에 산으로들 많이 가시잖아요. 남들이 쉴 때, 우리는 대기를 하는 거죠, 하하! 사실 요즘엔 산불 계절이란 게 딱히 없어요. 봄과 가을에 좀 다발적으로 날 뿐이지. 4계절 대비해야 합니다.”

야간에 산불이 나게 되면 출동해야 할 대원에게 휴대폰으로 지시가 떨어진다. 이미 밝힌 대로 야간에는 헬기가 뜨지 않는다. 지시를 받은 대원은 긴장된 가운데 밤을 지새우게 된다. 그 심경은 아는 사람만 안다.

그런데 비가 내린다? 이렇게 되면 세 대 중 한 대만 출동해도 된다. 여유가 생긴다. 그 마음 역시 아는 사람만 안다.

“그래서 우리들은 비 오는 금요일을 가장 좋아합니다. 마음이 푹해지거든요.”

김 기장이 웃는다.

여기서 잠깐. 불은 어디서 끄나? 소방서. 그렇다면 산불은? 역시 소방서 … 라고 답했다면 오답이다. 산불은 산림청이 끈다.

그래서 ‘소방헬기’가 아니라 ‘산불진화헬기’라 해야 정확하다. 산불현장에 소방차가 오기도 하지만 산불진화 때문이 아니라 불길이 민가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인터뷰 후 김 기장이 조종하는 헬기에 올랐다. 저수지에서 담수를 하는 모습도 보았다. 사진기자가 촬영을 위해 문을 여니 과연 엄청난 물보라가 헬기 안까지 쏟아져 들어왔다.

착륙한 뒤에는 헬기의 무시무시한 하강풍도 실컷 맛보았다. 바람에 머리는 순식간에 수세미처럼 변했고, 어디 가서 말랐다 소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들어보지 못한 기자가 바람에 밀려 휘청거렸다.

6명의 공중진화대원들은 레펠 강하와 인명구조 시범훈련을 했다.

난이도 높기로 소문난 훈련들을 능수능란하게 펼쳐 놀랐는데, 아닌 게 아니라 전원 군 특전사 출신들이었다.

김 기장이 헬기를 몰며 두 번의 물 투하 시범을 보일 때는 지상에서 모두가 박수를 쳤다. 물이 마치 안개처럼 나무 위로 뿌려져 ‘너무 약한 게 아닌가’싶었지만 밑에서 등에 맞으면 성인 남성의 무릎이 푹 꺾일 정도의 압력이라고 한다.

“고향인 포항에는 비행장이 있어요. 어릴 때 동산에 올라가 보면 늘 비행기가 이착륙을 했지요. 그걸 보면서 ‘아, 나도 조종사가 한 번 되어 봤으면’하고 막연한 동경의 꿈을 꾸었습니다. 헬기 조종사가 됐으니 나는 행운아입니다. 내 일이 자랑스럽습니다. 내 사명감이 그 무엇보다 자랑스럽습니다.”

양산(경남) |양형모기자 ranbi@donga.com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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