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 학교도 못 가… 이제야 당당한 삶 찾았어요”

  • 입력 2009년 2월 24일 16시 15분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아 든 최막래 할머니.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아 든 최막래 할머니.
24일 오전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양원주부학교 졸업식에서 참석자들이 교장선생님의 축사에 박수를 치고 있다. 24일 오전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양원주부학교 졸업식에서 참석자들이 손으로 하트를 표시하고 있다. 24일 오전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양원주부학교 졸업식에서 참석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
24일 오전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양원주부학교 졸업식에서 참석자들이 교장선생님의 축사에 박수를 치고 있다.
24일 오전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양원주부학교 졸업식에서 참석자들이 손으로 하트를 표시하고 있다.
24일 오전 마포구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양원주부학교 졸업식에서 참석자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
왕복 4시간 통학하며 초등학교 졸업장 받은 최막래 할머니

"66년 인생 중 나를 위해 살았던 유일한 1년이었어요."

24일 양원주부학교 졸업식에서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아 든 최막래 할머니(66)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졸업 소감을 전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무렵에 6·25전쟁이 터져 배움의 길에서 영영 멀어졌던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이 묻어났다.

최 할머니가 양원주부학교를 처음 찾은 것은 2년 전이었지만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학교 건물 앞에서 발을 돌렸다. 1년을 망설이다가 "이대로 죽는 날만 기다릴 수 없다"는 생각에 1년 전 기초반(초등학교 학력인증)에 등록했다. 최 할머니의 통학시간은 천안 두정역에서 전철을 타고 서울 이화여대역까지 무려 왕복 4시간. 처음엔 힘에 부쳤지만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풀리는 만큼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3남 5녀 중 막내인 최 할머니가 6·25 전쟁 때 그만둔 학교에 다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은 전쟁 탓도, 가난 탓도 아니었다. 집안 어른들이 "여자가 배우면 건방져 질 뿐"이라며 반대하셨기 때문이었다. 19살이 될 때까지 바느질과 요리를 배우며 집안 살림을 도와야 했다.

"중학교 교복을 곱게 차려 입은 친구들을 볼 때면 얼마나 기가 죽던지… 뒤돌아서서 울던 그 설움을 어찌 다 헤아릴 수나 있겠어요. 배우지 못 했다는 서러움은 겪어보지 않음 몰라요."

최 할머니는 노래 솜씨가 빼어났다. 시골 마을에 악극단이 내려오면 한 두곡씩 노래를 불렀을 정도다. 집안 어른들이 얼굴을 알아 볼 까봐 무대 뒤에 숨어서 불렀다. 그 때만 해도 가수는 '딴따라'라고 천대받던 시절이라 "감히 여자가…"라는 아버지 호통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배움도 접고 꿈도 접고 21살 나이에 시집을 갔다. 그러나 남편이 사업에 실패 한 후 화장품 외판원, 보험 설계사를 하며 생계를 꾸려야 했다. 아이들한테까지 못 배운 한을 대물림 할 수 없어 밤낮으로 열심히 살았다.

"화장품을 팔며 영수증을 쓸 때도, 보험 가입서를 쓸 때도 맞춤법이 틀리지는 않을까 숨어서 쓰곤 했죠. 왜 나는 남 앞에서 한 번도 당당할 수 없나 억울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어요."

자녀들도 장성해서 결혼을 하고 손자도 보고 나니 인생이 허무해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늙고 마른 껍데기만 남았구나 낙담하던 최 할머니는 양원주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이제야 내 인생을 찾았다"고 말했다.

가족들도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아들, 며느리들은 집에서 손에 물 하나 안 묻히고 공부하도록 도와줬다. 최 할머니는 "녹슨 머리에 지식을 차곡차곡 넣어 준 열정적인 선생님들에게도 감사할 뿐"이라고 선생님들의 이름을 차례차례 꼽기도 했다.

최 할머니는 "사람이 밥이 있고 옷이 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배워서 사람 노릇을 해야 행복한 것"이라며 "1년이고 10년이고 살아 있는 동안은 계속 공부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6·25전쟁이 끝난 1953년 11월 13일 '일성고등공민학교'로 출발한 양원주부학교는 70년대 후반 이후 진학률이 높아지면서 청소년 대신 주부들의 입학이 늘어나자 1983년 양원주부학교로 이름을 바꿔 현재에 이르렀다. 24일 서울 마포구 마포문화센터에서 열린 양원주부학교 졸업식에서는 모두 429명의 졸업생이 배출됐다.

우경임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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