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비자라는데…” 고개드는 美원정출산

  • 입력 2008년 11월 21일 02시 57분


비자면제 시행 뒤 예비부모들 관심 고조… 한인 이미지 실추 우려도

문의 급증에 알선업체들 설명회-할인행사까지

17일부터 한국을 대상으로 미국 비자면제프로그램(VWP)이 시행되면서 입국 절차가 간소화되자 원정출산을 계획 중인 예비 부모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원정출산 동호회 게시판엔 ‘무비자 첫날 입국했다’는 경험담과 함께 원정출산 방법을 묻는 글이 하루에도 10∼20건씩 게재되고 있다. 알선업체 G는 이달 들어 국내에서 원정출산 설명회를 두 차례나 열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원정출산 전문 L산후조리원 관계자는 “환율 상승(원화가치 하락)에도 불구하고 비자면제 조치 발표 후 문의전화가 많아졌다”며 “예약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이전엔 정식으로 미국 관광비자를 받더라도 미국 공항에서 까다로운 입국심사를 거쳐야 했다. 특히 임신부는 원정출산 우려로 체류기간이 ‘한 달 이내’로 정해지는 사례가 많았다.

원정출산 목적의 임신부들은 보통 출산 1, 2개월 전에 미국에 입국한다. ‘출산→산후조리→자녀 출생신고→자녀 사회보장번호(한국의 주민등록번호에 해당) 취득’ 등 미국에서 출산한 자녀를 ‘미국 시민권자’로 만들기 위해선 한 달이 훨씬 넘게 걸리기 마련. 이 때문에 알선업체에 돈을 주고 의뢰해 체류기간을 연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비자면제프로그램 시행으로 체류기간에 대한 부담이 줄었다는 것이 원정출산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전자여권 소지자는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는 한 ‘90일 체류’가 보장된다는 것.

한 업체 관계자는 “입국심사 때 예정일을 한 달 앞둔 임신부라도 ‘임신 5∼6개월째’라고 속이면 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업체는 “방문 일정을 일주일 이내라고 거짓으로 밝히면 입국심사관의 의심을 받지 않는다”고 요령을 알려 줬다.

업체나 브로커들은 원정출산에 대해 “비록 눈총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합법적인 절차”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입국 목적을 출산이 아닌 관광으로 속이는 것 자체가 불법이고, 적발 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밝히지 않는다.

한편 원정출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업체 간 경쟁도 치열하다. 산모 1인당 보통 1만∼6만 달러가 들어가는데 일부 산후조리원에선 최근 원화가치 하락을 감안해 10∼30% 할인 행사를 진행 중이다.

브로커들은 “출산 예정일이 비슷한 임신부 두 명이 함께 방을 쓰면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유혹하기도 한다. 반면 ‘상위 0.1%만을 위한 VVIP 원정출산’ 등 고가 상품으로 차별화한 업체도 등장했다.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본토의 원정출산 시설과 괌, 사이판 등 미국 자치령의 관련 업체 사이에선 경쟁구도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본토의 산후조리원 측은 “의료시설 수준에서 차이가 난다. 괌, 사이판은 미국 정식 주가 아닌 자치령으로 자녀 유학 시 등록금 지원 혜택 등이 본토 출신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반면 괌과 사이판 업체들은 “지리적으로 가까워 임신부 건강과 안전 측면에서 유리하고 비용도 저렴하다”고 강조한다.

한편 미국 한인회 홈페이지에는 “무비자 입국으로 원정출산이 늘면 한인 이미지가 실추되고 미국 시민의 혜택이 줄어든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괌 일간 ‘퍼시픽데일리뉴스’는 한국인의 괌 원정출산 실태를 고발하며 ‘적절하지 못한 시민권 취득 방법’이라고 비판했다.

좋은 취지로 시작됐던 비자면제프로그램이 원정출산처럼 엉뚱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편법으로 활용될 경우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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