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커피 한잔에서 미래의 나를 찾아”

  • 입력 2008년 9월 30일 02시 57분


바리스타를 꿈꾸는 당당한 여고 2년생

진로 고민중 ‘운명적 만남’

“도전하면 길이 보여요”

“잘 볶아진 원두를 그라인더(분쇄기)에 넣고 간 다음 탬핑(원두가루를 일정한 밀도로 압축하는 과정)을 해요. 고압의 뜨거운 물을 원두가루 사이로 통과시켜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기 때문에 탬핑을 잘못하면 원두가 가진 단맛, 신맛, 쓴맛이 조화롭게 우러나지 못하죠. 오래 연습하다 보면 에스프레소가 추출되어 나오는 물줄기 모양만 봐도 맛을 내는 데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알 수 있답니다.”

구로여자정보산업고등학교 2학년 김보은(17·사진) 양. 김 양이 커피를 대하는 태도는 사뭇 경건하다. 커피야말로 ‘내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고민과 좌절감에 빠져 있던 김 양에게 ‘너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인생의 스승이기 때문이다.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김 양은 아예 전문 지식을 쌓아 사회에 진출하겠다는 각오로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해 ‘인터넷정보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도 전공에 대한 흥미나 열정은 생기지 않았고, 오히려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후회만 밀려왔다.

대입 준비에 한창인 친구들을 보면 이루고 싶은 인생의 목표가 있다는 점이 부럽게만 느껴졌다. ‘차라리 공부를 잘했다면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이렇게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될 텐데…’란 생각이 들 때 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도서관에서 취업 관련 책을 뒤지고, 매일 인터넷으로 다양한 직업을 검색하며 진로 찾기에 골몰했지만 ‘성적이 성공의 보증수표와 같은 한국 사회’에서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김 양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토록 찾았던 답을 발견했다. 커피 전문점에서 하트 모양이 그려진 라테(에스프레소에 거품을 낸 우유를 혼합한 커피)를 보는 순간 묘한 설렘을 느낀 것. 김 양은 따뜻한 라테 한 잔에서 ‘절벽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절박했던’ 마음을 위로받았고, 우유 거품을 이용해 만든 하트 모양을 보면서 처음으로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김 양은 커피의 맛과 향을 자유자재로 조리하는 ‘바리스타’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협회의 전문가 과정에 등록했다. 매주 토요일 두 시간씩 에스프레소 추출법, 우유에 거품을 내는 방법, 라테아트(우유거품을 이용해 커피 표면에 꽃, 하트, 곰 등 여러 가지 무늬 또는 그림을 만들어 내는 기술) 등의 실무교육을 받았고, 수업이 끝난 후에도 실습장을 떠나지 않고 만족할 때까지 연습했다.

커피와 관련된 서적을 구입해 커피의 역사, 나라별 원두의 특징, 원두 고유의 맛과 향 등 커피에 관련된 일반 상식 공부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주말마다 동네 커피 전문점을 돌아다니며 커피 맛을 보고, 새로운 메뉴를 개발할 때 참고할 만한 사항들과 자신의 느낌을 빠짐없이 적었다.

하루라도 빨리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커피 전문점 아르바이트도 시작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김 양은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한 커피전문점에 찾아가 면접만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사정했고, 김 양의 실력을 눈으로 확인한 사장은 그 자리에서 김 양을 채용했다.

김 양은 요즘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다. 바리스타를 양성하는 교육자도 되고 싶고, 식품회사에 입사해 커피를 개발하는 연구원도 되고 싶다. 자신의 이름을 건 커피 전문점을 열거나 책을 내고 싶은 소망도 있다.

김 양은 “힘든 사람에겐 따뜻한 위로가, 지친 사람에겐 달콤한 휴식이 될 수 있는 정성 가득한 커피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 김보은 양처럼 바리스타의 꿈을 품은 학생이라면 ‘한국바리스타협회’ 홈페이지(www.baok.org)에 들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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