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조지 오웰 ‘1984년’

  • 입력 2008년 9월 8일 02시 54분


빅브러더의 감시… 자유가 없는 인간에게 남는 것은?

‘자유’는 때로는 사소하고 때로는 무겁다. 마지막 시험시간 끝 종이 울리는 순간도, 사회적 억압에 저항할 때도 우리는 자유를 느낀다. 물체의 비중에 따라 물에 뜨는 정도가 다르듯 자유의 무게도 그 질이 다양하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은 더 많은 자유를 얻기 위한 탐색이 아니라 자유의 궁극적 포기에 이르는 실험극이다. 이 책은 인간이 외부에서 가해지는 억압과 개인의 내부로부터 오는 자유를 벗어던지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보여준다.

책 속에서 벌어지는 1984년은 오세아니아와 유라시아, 동아시아로 삼 분할된 세계가 서로 전쟁을 벌이며 대치 중인 상태이다. 이들은 서로를 적국으로 규정하지만 공통 관심은 적에 대한 분노를 이용하여 내부통치를 강화하는 데 쏠려 있다.

반란군에 대한 증오도 필요하다. 오세아니아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은 인민의 적인 골드스타인과 지하조직 ‘형제단’이다. 이들은 해외 어디선가 반란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알려진다. 그래서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3대 슬로건은 국가의 당면 과제가 된다.

거대한 초국가 오세아니아의 지도자는 일명 B.B라 불리는 ‘빅 브러더’이다. 그의 사진은 모든 가정, 사업장, 동전, 벽보에 살아 있지만, 정작 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빅 브러더가 당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포스터의 문구를 현실로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텔레스크린’이라는 금속판이다.

이 금속판은 수신과 송신을 모두 행한다. 텔레스크린을 통해 개인은 당의 선전을 듣고, 당은 개인의 반응을 감지한다.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표정죄’라도 짓게 되면 어디선가 ‘사상경찰’이 나타나 처벌한다. 언제 감시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없으므로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감시한다.

39세의 남자, 윈스턴 스미스. 그는 이러한 사회에서 무언가 다른 생각과 표정을 갖게 된 사람이다. 외부 당원인 그는 기록국에 근무하는 소심한 직원이다. 당의 선전 내용이 바뀌면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 기록을 찾아 완벽하게 조작하는 일을 맡고 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는 당의 슬로건은 현재와 미래를 완전무결하게 만드는 최선의 방법이 역사 조작에 있음을 알려준다.

맡은 일 탓일까. 윈스턴의 소심한 저항은 바로 일기를 쓰는 것에서 시작된다. 진실을 알더라도 모르는 척해야 하고, 논리를 이용해서 비논리를 조작하는 ‘이중사고’는 당이 적극 권장하는 것. 자신의 이중사고를 인식하거나 주체적 사색, 모호한 의심을 글로 남기는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최면상태와 같이 당의 지침에 완전히 동화되는 길밖에 없다.

윈스턴은 당이 금지한 사랑에도 도전한다. 쾌락은 인간의 행복한 본능을 이끌어내고 증오를 무디게 만드는 법. 이곳에선 남녀의 사랑 또한 사상죄에 해당한다. 그러나 줄리아와 사랑에 빠진 윈스턴은 세상을 새롭게 느끼게 된다. ‘새도 노래 부르고 노동자도 노래 부르지만 당은 노래를 부르지 않아.’ 사랑은 윈스턴의 감성을 회복시켰지만 당에는 처벌의 사유를 만들어 주었다.

책의 말미에서 윈스턴을 고문하는 내부 당원 오브라이언은 이렇게 경고한다. ‘모든 행위의 결과는 그 행위 자체 속에 들어 있다.’ 그의 사상죄는 당의 명령에 포섭되지 않고 자신의 정신을 들여다보려는 자각 그 자체, 마음과 본능의 발현을 거부하지 않은 그 자체에서 비롯된다. 자유에 대한 인식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주체성을 겨냥하고 있음을 무섭게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은 한때 구소련의 억압통치를 비판하는 책으로 읽히기도 했지만 지금은 정보사회의 감시 권력에 대한 경고로 해석되기도 한다. 그러나 한발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인간에게 필요한 자유의 층위가 얼마나 깊은지를, 그리고 자유 없는 인간에게 생명은 무엇인지를. 이는 빅 브러더를 사랑하면서 총을 맞고 죽어간 윈스턴이 살아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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