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야겠다는 생각에 파도 속 뛰어들어”

  • 입력 2008년 5월 6일 03시 00분


삽시간에 벌어진 충남 보령시의 사고 현장에 의인이 있었다. 순식간에 파도에 휩쓸린 관광객을 주민들이 앞장서서 구했다. 주민 백영호 씨가 5일 사고 순간을 설명하고 있다. 보령=이기진 기자
삽시간에 벌어진 충남 보령시의 사고 현장에 의인이 있었다. 순식간에 파도에 휩쓸린 관광객을 주민들이 앞장서서 구했다. 주민 백영호 씨가 5일 사고 순간을 설명하고 있다. 보령=이기진 기자
■ 보령 앞바다서 16명 생명 구한 백영호씨

“또 한 번 파도가 밀려오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생사기로에 서 있는 사람이 코앞에 보이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백영호(31·사업) 씨는 친구 3명과 함께 수중 다이빙을 하려던 참이었다. 4일 낮 12시 42분경 충남 보령시 남포면 월전리 죽도 북쪽 갯바위에서였다.

산소통과 다이빙 장비를 20m쯤 떨어진 차 안에서 꺼내 보트 쪽으로 걸어가는 순간 기가 막힌 광경을 목격했다.

사람 키보다 훨씬 높은 파도가 갯바위를 강타했다. 흰 거품과 함께 관광객 수십 명이 한꺼번에 바다 속으로 끌려갔다.

파도가 ‘죽음의 사신’처럼 보였다. 그는 들고 있던 산소통을 떨어뜨렸다. 친구 김형기(31) 씨도 넋을 잃었다.

사방에서 ‘아빠’, ‘여보’, ‘사람 살려’라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백 씨는 김 씨와 함께 곧바로 보트에 올라갔다.

“눈에 보이는 대로 허리춤을 잡고, 목을 붙잡고 보트 위로 끌어 올렸어요. 7명을 한꺼번에 태우는 바람에 보트가 전복될 뻔하기도 했고….”

백 씨는 7명을 1차로 갯바위에 올려놓았다. 다시 보트를 바다 쪽으로 몰았다. 지켜보던 가족과 주민들이 허우적대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10분쯤 지났을까. 물에 떠 있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탈진할 것 같았지만 한 바퀴를 더 돌았다.

“모르겠어요. 몇 명을 구했는지….” 합동대책본부는 이날 갯바위 북쪽에서 파도에 휩쓸린 16명이 모두 구조됐다고 밝혔다.

백 씨는 초등학교 때 육상선수로 전국소년체전에서 금메달을 땄다. 4년 전까지 보령시 육상선수단 코치를 지내다 지금은 작은 조경회사를 운영한다.

파도에 휩쓸린 관광객을 구하는 데는 어민도 한몫했다. 새마을호 장의진, 태양호 조병철, 광명8호 강종훈·명훈 씨 형제, 해림호 박종철 씨가 직접 배를 몰고 바다로 나갔다.

횟집 아주머니는 고무대야를 바다로 던졌다. 바다에서 구조된 관광객 27명 중 25명을 이들이 구했다.

“장사요? 사람이 죽었는데 장사가 문제입니까. 그저 마음이 아플 따름입니다.”

죽도보물섬 횟집·커피숍 이계종(46) 사장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어린이날인 5일, 귀한 목숨을 삼켜 버린 채 무심한 바다를 하루 종일 바라봤다. 자신이 바다에서 건져내 인공호흡을 했지만 결국 세상을 떠난 박성우 군을 생각하면서….

보령=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 화면제공 : 보령소방서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신원건 기자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회부 이기진 기자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회부 이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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