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통계로 세상읽기]으∼, 간식에 살고 간식에 죽고

  • 입력 2008년 4월 21일 02시 54분


《“친구들이랑 피자 한 판 시켜서 셋이 나눠 먹으면 그날 분위기 끝내줘요”라고 요즘 아이들은 이야기하지만, 난롯불에 구워 먹던 일명 ‘쫀드기’나 앞니로 깨물어 빨아먹던 ‘아폴로’와 같은 추억의 간식으로도 그 부모 세대는 행복했다.》

한입 두입 당장엔 맛있지만… ‘비만’을 먹는 아이들

초중생 80% “패스트푸드 즐겨요”

그 원색의 색깔만큼이나 황홀하고 달콤한 당분으로 허허롭고 고픈 배를 채워 주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뻥튀기나 ‘뽑기’도 한몫 했는데, 방과 후에 저 멀리서 유혹하는 그 냄새는 공기놀이, 구슬치기, 딱지치기와 더불어 골목길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즐거움 중 하나였다.

1980년대에 간식은 거리에서 분식집으로 공간 이동을 한다. 작은 공간이지만 디스크자키(DJ)가 틀어주는 노래나 뮤직 비디오를 즐기는 것은 분식집에서 떡볶이, 김밥, 순대를 먹으면서 덤으로 누릴 수 있는 행복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지나면서 새로운 간식거리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 있으니, 이름 하여 패스트푸드인 햄버거, 치킨 그리고 피자 등이다.

일반적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가 넘어서면 사람들이 외식을 즐기는 현상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를 넘긴 1980년대 중반, 특히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 이후에 우리나라에도 외식문화가 발달한다. 햄버거 같은 서구식 패스트푸드는 아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맞벌이 부모들이 아이들 생일 파티를 패스트푸드점에서 할 정도로 패스트푸드는 아이들 간식 문화의 핵심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데도 2000년 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가 서울시내 중·고교생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장 많이 먹는 간식 1위는 빵, 2위는 라면, 3위는 떡볶이, 그 다음으로 과자, 햄버거, 피자 순이었다. 그러나 요즘 다시 조사한다면 햄버거나 피자가 상위를 석권할지 모르겠다. 2007년 환경정의시민연대가 수도권의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패스트푸드를 거의 먹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19.4%밖에 안 된다.

어릴 때부터 입맛이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져 간다. 미국의 경우 아이들의 비만·과체중의 증가와 패스트푸드 산업의 성장은 시기적으로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패스트푸드를 영양과 건강에 문제가 많다는 의미에서 종종 ‘정크 푸드(junk food)’라고 부르기도 한다. 성장기 청소년 건강에 해로움을 준다는 점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패스트푸드가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이에 대항하는 작은 운동이 생겨났으니, ‘슬로 푸드 운동’이 그것이다. 슬로 푸드 운동은 1986년 미국 패스트푸드의 대명사격인 맥도널드 햄버거가 이탈리아 로마에 진출하는 데 반대하여 ‘식사, 미각의 즐거움, 전통 음식의 보존’을 강조하면서 시작되었다. 현재는 40여 개국에 7만 명의 풀뿌리 조직을 둔 운동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이 운동에도 불구하고 로마 시내 곳곳에 패스트푸드점이 들어서 이탈리아의 생활 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다.

요즘 들어 참살이(웰빙) 열풍과 더불어 우리나라 패스트푸드 업체의 성장세는 줄어드는 듯하다. 그러나 작은 시골에까지 패스트푸드점이 들어서 2000원 안팎의 돈을 주면 풍성한 햄버거 하나를 아이들에게 안겨주는 것이다. 어른들의 우려와는 상관없이 아이들에겐 누가 뭐래도 패스트푸드가 중요한 간식이다. 아이들 입맛을 변화시킨 서구식 패스트푸드는 단순히 간식 메뉴를 변화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음식문화와 생활방식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김치나 된장찌개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니, 조만간 전통음식이 외면당하면서 서구식 식생활이 아이들을 사로잡을지 모를 일이다. 패스트푸드로 생기는 소아비만 문제도 간간히 이야기되니 아이들 건강도 걱정이다.

패스트푸드를 즐기는 아이들의 입맛을 방치할 수만은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슬로 푸드 운동도 좋은 방안일 수 있지만, 무엇보다 패스트푸드를 대신할 수 있으면서 아이들의 기호와 입맛에 맞는 좋은 간식을 개발해야 한다. 간식을 먹는 이유는 단순히 입을 즐겁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족한 영양분을 채우고,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고, 마음속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면서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먹고 있는 간식이 우리의 삶을 더 풍성하게 하는지, 우리의 음식문화를 바꾸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 생각해 보면 어떨까?

구정화 경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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