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 입력 2007년 11월 2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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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란 야릇한 제목을 가진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Lost In Translation’입니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통역 도중 길을 잃다’가 되겠지요.

제목 그대로 이 영화는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이국땅 일본에서 소통의 단절을 느끼는 미국인 남녀의 이야기입니다.

언어가 서로 다르니 ‘통역 도중 길을 잃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요?

글쎄요….

이 영화는 서로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과 사람, 심지어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통역’이 되지 않아 길을 잃는 경우가 있다고 말합니다.》

[1] 스토리라인

미국의 유명 영화배우 ‘밥’(빌 머리)은 위스키 광고를 찍기 위해 일본 도쿄로 옵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마저 낯선 일본에서 그는 깊은 고독감을 느낄 뿐입니다.

한편 밥이 묵는 호텔엔 ‘샬럿’(스칼렛 조핸슨)이란 여성이 투숙 중입니다. 젊은 주부 샬럿은 남편과의 결혼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있습니다. 잘나가는 사진작가인 남편은 자신을 이방인처럼 대할 뿐이죠.

호텔 바에서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 결혼 25년째인 밥과 결혼 2년째인 샬럿은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한눈에 동병상련(同病相憐)을 느낍니다. 상대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지요. ‘주위 어떤 사람보다도 지금 저 사람이야말로 나의 고독과 허무를 이해해주고 채워줄 사람’이란 사실을 직감한 두 사람은 인생의 친구가 됩니다.

도쿄 시내에서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낸 두 사람. 하지만 밥에겐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 순간이 닥쳐옵니다.

[2] 핵심 콕콕 찌르기

먼저 밥이 위스키 광고를 찍는 장면을 살펴봅시다. 일본인 CF 감독은 밥에게 일본어로 자세히 주문합니다.

“감정을 넣어서 천천히 카메라를 쳐다보세요. 부드럽게. 마치 오랜 옛 친구를 만나는 느낌으로요. 그리고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남자 주인공이 했던 것처럼, 그렇게 말해 주세요.”

하지만 어떤가요? 이토록 길고 상세한 설명이지만 통역을 맡은 일본인 여성을 거치는 동안 단 한 줄로 요약돼 밥에게 전달됩니다.

“그는 당신이 카메라를 쳐다보길 원해요.”

이에 밥은 “그렇게 길게 얘기했는데 겨우 그 한마디란 말이오?”라고 반문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광고를 찍는 내내 소통의 단절에 시달리지요.

밥이 겪는 단절감. 이건 단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전형적인 문제에 불과할까요?

아닙니다. 이번엔 샬럿을 보세요. 그녀가 느끼는 고독은 언어의 차이에서 온 게 아닙니다. 그녀의 마음을 잠식하는 소외감은 다름 아닌 그녀의 남편에게서 비롯되었습니다. 매일 한 침대를 쓰는, 스스로 가장 사랑한다고 믿어왔던 그 남편에게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밥과 샬럿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소통의 단절은 비단 ‘언어의 단절’이 아니라 궁극적인 ‘마음의 단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들이 각자의 배우자에게 그토록 바랐던 건 뜨거운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나’라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태평양을 건너 국제전화를 걸어오는 밥의 아내, 그녀의 관심사는 오로지 ‘거실 카펫을 무슨 색깔로 바꿀까’에만 맞춰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일수록 나를 소외시킨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나를 모른다? 난생 처음, 그것도 우연히 마주친 상대가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고 보듬어준다? 밥과 샬럿이 체감하는 이런 삶의 아이러니 속에서 두 사람은 더욱 절박한 사이가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샬럿이 밥과 함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영화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샬럿이 절규처럼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난 특별해. 정말 특별해. 난 당신의 관심을 받고 싶어(I'm special, so special. I'm gonna have some of your attention).”

아, 얼마나 쓸쓸한 고백입니까. 샬럿이 원했던 건, 그리고 밥이 원했던 건 그저 ‘나 자신이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느끼게 해 줄’ 주위 사람들의 진정한 관심이었던 거죠.

[3] 더 깊이 생각하기

영화는 염세적이고 쓸쓸한 메시지만을 무책임하게 던지고 돌아서지 않습니다. 이런 단절감과 소외감에게서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낮은 목소리로 일러줍니다. 지독한 고독감을 토로하는 샬럿에게 밥은 말합니다.

“당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를 당신이 알수록 당신을 힘들게 하는 건 줄어들 거예요.”

그렇습니다. 우리를 소외시키는 건 ‘남’이 아니었습니다. 알고 보니, 우리 자신이었습니다. 나 자신이 진정 무엇을 원하고 욕망하는지를 너무도 능숙하게 감추고 위장해왔기에 어느새 우리는 나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습니다.

드디어 밥은 수화기 저편의 아내에게 힘주어 말합니다. 자신의 욕망을 난생 처음으로 말합니다.

“난 단지 건강하게 지내고 싶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지내고 싶어. 난 파스타를 먹는 게 이젠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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