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브레이브 원’

  • 입력 2007년 10월 22일 03시 05분


코멘트
《조디 포스터 주연의 최신작 ‘브레이브 원(The Brave One)’은 지난달 미국에서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 워’와 같은 날 개봉돼 특히 국내 영화 팬들의 관심을 끈 영화입니다. 당시 이 영화는 개봉 첫 주말 미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죠.

이 영화는 일견 박찬욱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이나 ‘친절한 금자씨’와 동일한 주제와 논쟁거리를 담고 있는 영화로 보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법에 기대지 않고 사적(私的)인 복수를 할 때 이를 우린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하는 문제이지요. 또 ‘사회의 암적 존재들을 법에 의하지 않은 채 해치워버린다’는 점에선 일본 영화 ‘데스 노트’와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진정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좀 더 깊은 곳에 숨겨져 있습니다.▶easynonsul.com에 동영상 강의》

[1] 스토리라인

미국 뉴욕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에리카 베인’(조디 포스터). 뉴욕 여기저기에서 채집한 소중한 소리들을 방송을 통해 청취자들에게 들려주는 그녀는 사랑하는 약혼자와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입니까. 어느 날 약혼자와 함께 공원을 산책하던 에리카는 느닷없이 불량배들의 습격을 받습니다. 참혹한 폭행을 당한 에리카와 약혼자. 약혼자는 그 자리에서 숨지고, 에리카는 혼수상태에 빠집니다.

3주 만에 의식을 되찾은 에리카에게 뉴욕은 이제 더는 이전의 뉴욕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에리카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불법적으로 권총을 구입합니다.

그녀의 두려움은 극심한 분노가 되어 폭발합니다. 그녀는 슈퍼마켓에서, 지하철에서, 그리고 밤거리에서 우연히 맞닥뜨리게 된 범죄자들을 자신의 손으로 없애버립니다. 이에 시민들은 열광합니다. 흉악범들을 처단하는 얼굴 없는 이 인물을 ‘사회 정의를 지키는 자경단’이라고 부르면서 말이죠.

한편 에리카가 저지르는 연쇄 살인사건을 조사하던 뉴욕의 유능한 형사 ‘머서’(테런스 하워드)는 평소 알고 지내던 에리카가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됩니다. 바로 이때, 에리카는 자신을 폭행했던 범인들의 소재를 알게 됩니다. 범인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에리카. 그녀에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2] 핵심 콕콕 찌르기

이 영화를 ‘한 여성이 벌이는 처절한 복수극’ 정도로 해석한다면, 그건 영화의 20%도 읽어내지 못한 겁니다. 사고를 당한 주인공 에리카가 분노의 여전사로 변해 가는 모습을 통해 이 영화는 훨씬 더 크고 중요한 어떤 사건을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으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에리카는 뉴욕에서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던 평범한 뉴요커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테러를 당합니다. 너무나 사랑하던 사람을 잃었습니다. 그 뒤 에리카는 자신의 안위에 대해 공포에 가까운 불안을 느낍니다. 그래서 결국 그녀는 무기를 들고 일어납니다.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흉악범들을 제 손으로 처단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그녀는 변해 갑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됩니다. 자신 또한 어느새 잔인무도한 폭력을 휘두르는 또 다른 살인자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자, 이런 에리카의 변화를 보고 뭔가 떠오르는 사건이나 대상이 없나요? 미국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사건….

그렇습니다. 9·11테러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인 에리카는 바로 9·11테러를 당한 뒤 변해 가는 미국의 모습에 대한 강력한 은유입니다.

2001년 9월 11일, 느닷없이 테러를 당한 뒤 미국민들은 ‘또 다른 테러가 언제 어디서 또 일어날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복수를 결심했습니다. 테러의 배후로 지목한 알 카에다가 본거지를 두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 폭탄을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복수와 응징의 전쟁은 이라크로 확대되었습니다.

처음엔 ‘정의로운 복수’였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복수 행위는 무미건조한 ‘습관’이 되어 버립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당한 테러나 진배없는, 또 다른 폭력의 주체가 돼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때는 너무나 늦어버린 것이지요.

에리카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이런 독백 같은 내레이션을 늘어놓습니다.

“공포를 경험하고 나면 알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 속에 그것(공포)이 잠복해 있었다는 걸. 아, 이제 옛날의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녀가 다시 예전의 그녀로 돌아갈 수 없듯, 미국도 이젠 과거의 평화롭고 자유롭고 지혜롭던 미국으로 회귀할 수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에리카가 말했듯 “너무 멀리 와버렸기 때문”이지요.

에리카가 범죄자들을 처단하는 곳이 뉴욕의 지하철이거나 슈퍼마켓이거나 주차장처럼 흔하디흔한 장소인 것도, 늘 평범한 일상 속에 테러의 공포가 깃들어 있는 미국의 현실을 빗대어 말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영화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에리카의 대사가 있는데요. 머서 형사가 “당신은 그 끔찍한 과거를 어떻게 극복했죠?” 하고 에리카에게 묻자, 그녀가 던지는 한숨처럼 짧은 답변입니다.

“딴 사람이 되어야 했어요. 이방인(stranger) 말이죠.”

아, 이방인. 영화의 핵심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자신이 당한 폭력, 그에 대한 복수를 하는 사이 스스로 낯선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그녀의 말. 바로 대테러 전쟁에 나서 ‘정의로운 응징’을 하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낯선 존재가 되어 가는 미국의 모습을 절묘하게 비유한 대사입니다.

여러분, 나의 삶에서 스스로 이방인이 되는 기분이란 어떤 걸까요? 분노할 때마다, 그리고 그 분노를 남김없이 쏟아낼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낯선 존재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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