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법-오락가락 정부, 이랜드 농성 사태 키워

  • 입력 2007년 7월 2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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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의 외주용역화에 항의하며 서울 마포구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점에서 21일째 점거 농성을 벌여 온 이랜드 노조원들이 20일 오전 강제진압에 나선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경찰은 71개 중대 7000여 명을 투입해 뉴코아 강남점과 홈에버 월드컵점에서 농성 노조원 168명 전원을 연행했다. 홍진환  기자
비정규직의 외주용역화에 항의하며 서울 마포구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점에서 21일째 점거 농성을 벌여 온 이랜드 노조원들이 20일 오전 강제진압에 나선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경찰은 71개 중대 7000여 명을 투입해 뉴코아 강남점과 홈에버 월드컵점에서 농성 노조원 168명 전원을 연행했다. 홍진환 기자

이랜드 비정규직 매장 점거 21일만에 경찰 투입으로 종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문제로 촉발된 이랜드 계열 유통업체 노조의 농성 사태가 20일 경찰력이 투입되면서 끝났다. 이번 사태를 통해 비정규직 보호법의 문제점과 정부 조정 능력의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것이 노동 문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등이 경찰력 투입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비정규직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노동계 사이의 갈등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경찰, “점거 노조원 전원 사법 처리”=경찰은 이날 오전 9시 40분 서울 서초구 잠원동 뉴코아 강남점과 마포구 상암동 홈에버 월드컵몰점에 71개 중대 7000여 명을 투입해 1시간 만에 농성 중이던 노조원 168명을 모두 연행했다.

경찰이 농성장으로 투입되자 노조원들은 서로 팔짱을 끼고 바닥에 누워 저항하는 등 몸싸움이 벌어졌다. 19일 밤부터 홈에버 월드컵몰점의 농성장에 들어가 있던 민주노동당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천영세 의원은 경찰의 진압에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경찰은 연행된 노조원 전원을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사법 처리할 방침이다.

한편 이날 경찰력 투입에 항의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전국 8개 이랜드계열 매장에서 시위를 벌여 홈에버 울산점과 경기 시흥점의 영업이 한때 중단되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불매운동도 벌이기로 했다.

▽농성 후유증 계속될 듯=농성이 끝났지만 이번 사태의 후유증은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이랜드 측은 21일간 지속된 농성 과정에서 수백억 원대의 영업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랜드 관계자는 “3, 4일 정도 두 점포의 내부시설 복구공사를 한 후 영업을 재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파업 지도부를 포함해 이랜드 노조원 상당수가 경찰에 연행됐지만 이랜드 노조와 이랜드 사측의 협상은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새로 노조 대표가 된 홍윤경 사무국장은 “사측이 교섭을 요청하면 협상에 응하겠다”고 밝혔다.

이랜드 최성호 홍보담당 이사도 “이미 내놓은 양보안에 대한 약속은 지킬 것이며 새 지도부와 협상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측은 농성에 단순 가담한 근로자는 경찰에 선처를 요청하겠지만 노조 지도부에 대한 손해배상은 취하하지 않겠다고 했다.

노조 측도 민주노총과 연대해 매장 앞 항의 시위와 불매운동을 계속할 계획이어서 이랜드 노사 간 갈등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계 드러낸 정부의 관리 능력=이날 노동부는 “제3자가 농성에 합류해 개입하는 등 사태 악화 가능성이 높아 어쩔 수 없이 경찰력을 투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랜드 노조의 농성 과정에서 정부는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여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태 초기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사측이 성급하게 비정규직의 외주 용역화를 추진하고 있다”며 이랜드 사측을 압박했다. 정부는 이랜드 사측의 계약 해지, 외주 용역화가 불법이 아닌데도 기업 쪽을 비판해 경제계에서도 “노조의 편만 든다”는 비판을 받았다.

민주노총이 농성과 교섭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이번 사태가 ‘노사 대리전’ 양상으로 발전했지만 이에 대해 정부는 마지막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정부는 사태가 장기화되자 경찰력 투입을 결정해 노조의 반발을 샀다.

이에 대해 박준성(경영학) 성신여대 교수는 “비정규직 보호법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라도 정부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면서 노조 측의 무리한 요구를 자제시켰어야 했다”면서 “이번 사태의 일차적인 책임은 법과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정부에 있다”고 비판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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