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입시 짜증… 외국서 ‘실력 경쟁’

  • 입력 2007년 7월 4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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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입시 경쟁과 취업 준비로 국내 명문대에 등을 돌리고 해외 유명 대학으로 진학하는 특수목적고 학생이 늘고 있다. 이화외고 2학년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전영한 기자
치열한 입시 경쟁과 취업 준비로 국내 명문대에 등을 돌리고 해외 유명 대학으로 진학하는 특수목적고 학생이 늘고 있다. 이화외고 2학년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다. 전영한 기자
■ 외고-자사고, 서울대보다 해외대 많이 간다

“입시지옥 통과해도 취업 부담에 꿈 못펴”

국내인맥 포기하고 ‘글로벌 인재’ 길 선택

해외대, 우수학생 유치하려 한국 원정도

지난해 2월 한영외국어고를 졸업한 장시환(20) 씨는 미국 스탠퍼드대에 입학했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1년간 미국 학교를 다니며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 비해 미국 교육이 훨씬 자유롭고 선택의 폭이 넓다는 느낌을 받은 뒤 해외 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장 씨는 “국내 명문대보다 해외 대학에서 더 좋은 환경과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다”며 “한국에서 생활하기 위해선 국내 명문대가 유리할 수도 있지만 인맥보다 실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곳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외국어고와 자립형사립고 졸업생 중 해외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이 크게 늘고 있다. 특히 내신 비중 확대를 둘러싼 정부와 대학 간의 갈등으로 특수목적고 학생의 국내 명문대 진학이 어려워지면서 해외 진학자 수는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해외 대학 진학자 급증=외고와 자사고 중 2007학년도에 가장 많은 졸업생을 해외 대학으로 보낸 학교는 민족사관고로 나타났다. 민족사관고는 83명이 해외로 나가 전년도 46명에 비해 그 수가 크게 늘었다.

대원외고 한영외고 대일외고 명지외고 이화외고 등이 뒤를 이었다. 대원외고는 59명에서 74명, 한영외고는 16명에서 30명, 대일외고는 8명에서 19명으로 진학자 수가 가파르게 늘어났다.

미국 동부 8개 아이비리그 대학에 가장 많이 진학시킨 고교는 대원외고(36명)로 해외 진학자의 49%가 이곳에 입학했다. 그 다음은 민사고(21명) 한영외고(8명) 명지외고(3명) 순이다.

특목고의 우수한 학생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 입시제도와 대학의 교육 여건에 대한 불만 때문. 외국 대학들이 국내 고교를 직접 방문해 입시설명회를 여는 등 적극적인 신입생 유치 활동을 벌이는 반면 국내 대학은 내신 비중 확대 등 논란으로 선발의 자율성마저 잃어 가고 있는 것도 비교되는 대목이다.

한국공학교육학회 조진수 기획이사는 “세계무대에서 활동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고 있다”며 “외국 학생들도 좀 더 자유롭게 국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입시 제도부터 글로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은 아이비리그, 지방은 일본 선호=외고와 자사고에서 졸업생을 가장 많이 보낸 해외 대학은 일본의 와세다대로 31명이 진학했다. 그 외 아시아퍼시픽대(29명), 코넬대(20명), 듀크대(14명) 순이었다.

서울지역 외고는 코넬대와 다트머스대 등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경기 및 지방 외고는 와세다대 게이오대 등 일본 대학을 선호했다. 자사고 출신은 주로 노스웨스턴대 스탠퍼드대 등 아이비리그에 속하지 않는 대학으로 진학했다.

대원외고는 다트머스대에 10명, 코넬대에 8명, 듀크대와 컬럼비아대에 각각 6명을 보냈다. 한영외고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 4명, 듀크대 등 6개 학교에 각각 2명, 대일외고는 와세다대 4명, 퍼듀대에 3명이 진학했다.

민족사관고는 노스웨스턴대에 7명, 코넬대와 스탠퍼드대에 각각 12명을 보냈다. 해운대고는 일본국립공대에 2명, 와세다대와 위스콘신대, 교토대에 각각 1명을 보냈다.

▽과학고도 해외 진학 늘어=외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외 대학 진학이 적었던 과학고도 최근 해외 진학자 수가 늘었다. 전국 17개 과학고와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해외로 진학한 학생 수는 2006학년도 25명에서 2007학년도 39명으로 14명(56%) 증가했다.

2007학년도 학교별로는 한국과학영재학교가 20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과학고(7명), 인천과학고(4명), 한성과학고와 전북과학고가 각각 2명이었다.

한나라당 김영숙 의원은 “최상위권 학생들을 해외 대학에 빼앗기는 것은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며 “특정 분야의 우수 학생을 자유롭게 뽑을 수 있도록 획일적인 입시 규제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교육에 대한 불신도 심각=국내 고교를 졸업한 뒤 해외 대학을 선택한 학생들은 대부분 “넓은 세상에서 우수한 학생들과 경쟁하며 공부하고 싶어 외국 대학을 선택했다”고 입을 모았다.

대학 진학 뒤 정작 원하는 공부를 하지 못하고 취업 경쟁에 내몰리는 국내 분위기가 싫어 해외로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많다.

외고를 졸업하고 지난해 뉴욕대에 입학한 정모(20) 씨는 “한국은 입시 경쟁이 살벌할 정도로 치열한 데다 대학에 가서도 관심 분야를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국 대학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일일이 간섭하는 대입제도와 대학의 낮은 경쟁력도 우수한 학생들을 해외로 밀어내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김모(48·여) 씨는 “과거에는 서울대에 못 보내 목을 맸지만 이제는 웬만큼 공부하면 어떻게 외국에 보낼까 궁리한다”며 “정부가 내신 반영 비율을 올려라, 내려라 하는 등 입시정책이 짜증스럽고 변경이 잦아 아이를 외국 대학에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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