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동거하면 4억 주겠다” 일방적 구애편지도 성희롱

  • 입력 2007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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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안경환)는 그간 직장 및 학교 등에서 발생한 성희롱 사건 가운데 인권위가 시정을 권고한 23건의 결정문을 담아 ‘성희롱 시정권고 결정례집’을 25일 발간했다.

이번 결정례집에는 그간 일반적으로 성희롱으로 인식되지 못했던 부분들을 성희롱으로 판단한 결정도 적지 않아 직장인들이 참고할 대목이 많다.

○ 전해 들은 성적 모욕도 성희롱

지난해 모 주유소에서 주유원으로 일한 이모(여) 씨는 근무 당시 동료 남자 직원에게서 불쾌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주유소의 또 다른 남자 직원 김모 씨가 자신을 두고 “그 여자는 내 것이니 건드리지 말라” “(식사하면서) 콜라에다 약을 타서 어떻게 한번 해 보지 그랬느냐” 등의 발언을 했다는 것.

인권위는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성적 언행이었다 할지라도 해당 여성은 직접 들은 것과 마찬가지의 정신적 스트레스 및 근로 환경의 악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며 “가해자의 발언은 여성을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저급한 표현으로 사회 통념이나 합리적 여성의 관점에서 봤을 때 성적 굴욕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성희롱 행위”라고 밝혔다.

○ 동성 간 성적 언행도 성희롱

모 병원의 남자 직원 이모 씨는 2005년 병원에 입원 치료 중이던 남자 환자 박모 씨에게 “너 나 좋아하지, 사랑하지, 나도 너 사랑하고 좋아서 이렇게 손을 만진다”며 몇 차례 박 씨의 손을 만졌다.

또 이 씨는 박 씨의 성기를 만지며 한 달에 자위행위를 몇 번 하느냐고 묻기도 했다. 인권위는 이를 명백한 성희롱 행위로 판단했다.

과거 여성부는 이성 간에 벌어진 성적 언행만을 성희롱의 대상으로 봤지만 인권위는 성희롱 당사자의 범위를 확대해 동성 간의 성희롱도 조사 범위에 포함시켰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같은 직장의 여성 동료에 대해 “같은 사무실의 남자 직원과 모텔에 들어가는 것을 봤다. 또 다른 남자 직원들과도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말을 하고 다닌 여직원의 행위도 성희롱으로 판단해 시정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해당 가해자는 여성 동료에 대한 성적 소문을 퍼뜨려 피해자에게 적대적이고 모욕적인 근무 환경을 조성했다”고 지적했다.

○ 동거제안 등 구애편지도 성희롱

지난해 7월 모 회사 사장 한모 씨는 회사 여직원 박모 씨에게 같이 살면 거액의 돈을 주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암으로 장기 투병 중인 아내를 둔 한 씨의 편지에는 “여생을 같이할 의사가 확인되면 1억 원을 주고 독신이 된 후 정식으로 동거하게 되면 4억 원을 주겠다. 이후 매달 500만 원의 생활비를 주겠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인권위는 “특별한 연애감정 없이 고용관계에 있는 사장과 직원 사이에서 성적인 의미가 내포된 동거, 결혼 등의 말을 일방적으로 듣게 될 경우 이는 사회통념상 성적 수치심과 불쾌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며 이 같은 언행이 성희롱 행위임을 인정했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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