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택시기사 ‘요금 카드결제’ 놓고 갈등

  • 입력 2007년 6월 4일 13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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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모았던 ‘택시요금 카드결제’ 제도가 수개월째 표류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3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사용하는 교통카드로 택시요금을 지불할 수 있는 ‘카드결제 서비스’를 도입키로 하고 시범운영에 들어갔다. 시는 시민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택시이용 활성화도 꾀해 궁극적으로 기사들의 수익이 올라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택시기사들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떨떠름해 하고 있다. 카드결제를 도입하더라도 승객은 늘어나지 않으며, 수수료 부담 등으로 인해 수익마저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다 보니 정책이 제대로 추진될 리 없다. 당장 서울시가 이달까지 택시 1,000대를 대상으로 시범운영을 한 후 제도를 본격 도입하겠다는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다. 기사들의 호응도가 낮아 시범운영 기간을 두 달 연장했다. 또한 오는 2010년까지 서울시 전체 택시 7만2500대 중 5만5000대에 카드결제 단말기를 장착하겠다는 목표도 달성될지 미지수다. 1일 현재 단말기를 설치한 택시는 2,985대에 불과하다. 더구나 지난 두 달 새 신청 혹은 장착했다가 해지한 건수만도 173대에 달한다.

1일 ‘카드결제’를 가운데 두고 팽팽히 맞서 있는 양측의 의견을 들어봤다.

택시기사들 “서울시, 우리랑 무슨 원한이 그렇게 맺혔다고 이러는지…”

이날 오후 1시께 서울시 마포구의 한 기사식당을 찾았다. 십여 명의 택시기사들이 식당 인근 그늘에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택시요금 카드결제’에 대해 운을 뗐더니 모두 격앙된 목소리로 서울시를 비판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서울시가 우리를 죽이려고 작정했다”고 입을 모았다.

“시내 곳곳에 버스전용차로를 설치해 택시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놓더니 이제는 카드결제를 도입해 영업 이익을 줄이려고 하고 있다. 무슨 원한이 그렇게 맺혔다고 이러는지, 할 말이 없다.”

그들이 말한 영업이익 저하 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수수료 부담, 영수증 출력과 처리로 인한 시간 지체, 기계의 잦은 고장이다.

시범적으로 카드결제 단말기를 장착한 개인택시 기사 조광철(46) 씨는 “몇 천 원을 카드로 결제하면 수수료 떼고 뭐가 남느냐. 기름값도 안 나온다. 그래서 다들 1만 원 이상 장거리일 경우에만 카드 결제를 받는다”고 했다. 이는 소액은 결제하지 않기 때문에 승객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뜻으로 보인다. 카드결제 시 기사들의 수수료 부담률은 2.4%다. 1만 원당 240원 꼴이다.

법인택시를 모는 이철진(39) 씨는 “회사가 손해 볼 짓 하겠느냐. 수수료는 고스란히 소속 기사들에게 전가되게 돼 있다. 수수료 비율만큼 사납금을 올린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기사들만 죽어나는 거다”며 한숨을 지었다. 현재 영업용 택시의 하루 사납금은 9만여 원이다.

“카드결제 서비스는 실효성이 없다”

다른 기사들도 회의적이었다.

“바로 앞에 손님이 있다고 칩시다. 현금으로 하면 금방 처리하고 태울 수 있는데, 카드로 하면 인증을 받아 영수증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잖습니까. 그러는 동안 차는 더 막힐 테고, 손님은 다른 택시가 태워가겠죠.”(박한철 씨)

“잔고장이 너무 많아요. 영수증이 출력되지 않는 경우는 다반사죠. 오작동도 예사고…. 고치는 데도 돈 들고, 스트레스 받아서 떼려고 해도 돈 들고…. 애물단지입니다.”(최치선 씨)

이러한 이유를 들며 기사들은 카드결제 서비스는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현금이 없는 고객을 한 명이라도 끌어들이면 택시이용객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서울시 주장에 대해서도 “택시를 이용하는 승객은 고정돼 있기 때문에 새로운 고객을 창출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이명박·오세훈·조세형, 택시 3적(敵)”

이승렬(42) 씨는 ‘택시 포화상태’도 수익 저하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97년 IMF가 터졌을 때 대기업에서 퇴직한 사람들에게 정부에서 개인택시 자격증을 발급해줬어요. 너무 많아요. 시에서도 1만5천대 정도가 초과돼 있다고 시인하잖습니까.”

한편 제도 시행 이전부터 카드결제 단말기를 장착한 박광재(51) 씨는 “‘콜택시’의 경우 대부분 단말기를 장착하고 있다. 개개인이 30~40원을 들여 단 거다. 그런데 이젠 쓸 수 없게 됐다”고 했다.

현재 모범택시 등 1만3000대 택시에는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가 장착돼 있다. 그러나 교통카드로는 결제할 수 없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정책에 맞추기 위해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단말기를 교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단말기 가격은 대당 15만 원이다.

그들은 이명박·오세훈 전·현직 서울시장과 조세형 전 민주당 의원을 ‘택시 3적(敵)’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이 시장은 버스전용차로제를 실시했지, 오 시장은 그걸 이어받아서 확대하고 카드결제 시스템을 도입하려고 하지, 조 의원은 경기도 택시가 서울 일부 지역에서 영업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놨지…. 택시 기사들이 다들 싫어합니다.”

택시기사 “택시 생명인 신속성을 살리는 정책을 마련해달라”

서울시 “지금도 택시는 빠르다”

택시 기사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서울시가 탁상공론을 그만두고 택시의 생명인 신속성을 살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것이다.

“택시의 생명은 신속성입니다. 이러한 장점을 살릴 수 없는 한 온갖 정책을 내놓은들 빛 좋은 개살구일 뿐입니다.”(차명진 씨)

“버스전용차로제 반대 안 합니다. 문제는 융통성이 없다는 겁니다. 출·퇴근 시간 외에는 손님을 태운 택시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합니다. 실제 버스전용차로가 설치된 지역은 정체가 얼마나 심합니까. 그런 지역은 기사들이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도중에 손님이 내리기 때문입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승차거부도 일어나는 겁니다.” (백진영 씨)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지금도 택시는 빠르다. 특정 시간대만 막힐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도시 정책의 가장 으뜸은 대중교통”이라며 “버스와 지하철이 잘돼 있어야 한다. 서울시민 중에서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하루 평균 800~900만 명이다. 반면 택시 승객은 190만 명이다. 190만 명을 위해 900만 명이 양보하는 건 어렵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과거 종로에서는 2차선까지 나와도 택시를 잡기 어려웠다. 그런 호황 시절에 택시 기사들은 너무 불친절하지 않았느냐”며 “이젠 과거 타성을 버리고 떠나간 손님들을 다시 데려오는 전략을 연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또한 ‘수수료 부담’에 대해서도 “카드 결제가 3만 원이면 수수료는 720원이다. 많은 게 아니다. 대신 현금이 없는 손님을 택시로 유인할 수 있기 때문에 멀리 보면 이익이 된다. 또한 기존에 카드 단말기를 달았던 사람들은 수수료 지불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택시 기사들은 오픈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카드결제 단말기를 운영하는 한국스마트카드 관계자는 단말기 오작동과 관련해 “이번 단말기는 기존 제품보다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선불카드·후불카드 영수증 발급은 물론 현금영수증 발급도 가능케 했다. 기사들이 단말기 사용법을 제대로 몰라 고장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며 극히 미약한 불량률이 확대재생산 되는 것을 우려했다.

그는 “기사 1인당 40분씩 일대일로 강의를 하는 등 교육을 강화하고 있는 만큼 점차 그러한 민원은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영수증 처리로 인한 시간 지연 지적에 대해서는 “도착과 동시에 영수증이 바로 발급되도록 해놨기 때문에 현금 거래와 똑같다”고 해명했다.

※‘택시 3적’ 부분 중 민주당 조순형 의원을 조세형 전 의원으로 바로잡습니다.

김승훈 동아닷컴 기자 h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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