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영화, 생각의 보물창고]로봇 눈에 비친 인간…A.I.

  • 입력 2007년 4월 24일 03시 04분


코멘트
2001년, 영화 ‘A.I.(Artificial Intelligence)’가 나왔을 때 세상은 놀랐습니다. ‘ET’나 ‘쥬라기 공원’ 같은 흥미만점 영화들을 연출하면서 ‘흥행의 귀재’란 소리를 듣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그가 이런 어둡고 슬픈 SF 영화를 내놓다니요. 알고 보면 ‘A.I.’는 참 영리한 영화입니다. 사이보그를 다룬 수많은 SF 영화의 단골 주제이던 ‘인간 정체성 문제’를 담으면서도, ‘A.I.’는 무척 새로운 시각의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으니까요.

[1] 스토리라인

먼 미래. 인간의 감정을 가진 꼬마 로봇 ‘데이빗’(할리 조엘 오스먼드)이 탄생합니다. 데이빗은 누군가를 한번 사랑하게 되면 평생 그 기억을 지울 수 없도록 프로그래밍 돼 있죠. 데이빗은 인간 부부인 헨리와 모니카에게 입양됩니다. 부부는 친아들 마틴이 불치병에 걸려 냉동인간 상태로 보관돼 있는 절망적 상황에서 데이빗을 데려온 것이죠.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친아들 마틴이 기적처럼 회복돼 집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엄마 모니카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데이빗, 그는 하루아침에 낯선 장소에 버려집니다. 자신도 피노키오처럼 진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데이빗은 섹스로봇 ‘조’(주드 로)와 함께 자신을 인간으로 만들어 줄 동화 속 푸른 요정을 찾아 위험천만한 여정을 시작합니다.

[2] 핵심 콕콕 찌르기

‘A.I.’가 인간의 정체성 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데이빗)의 모습을 통해 영화는 ‘진정 인간이란 뭐지?’라는 존재론적 문제를 생각하게 하니까요.

하지만 ‘A.I.’가 빛나는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A.I.’는 그간 사이보그가 등장한 SF 영화들에선 찾아보기 어려웠던 신선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죠. 그 질문은 데이빗을 개발한 하비 박사에게 한 여성이 던지는 영화 속 질문에 함축돼 있습니다.

“로봇이 인간을 정말로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다면, 그 보답으로 사람들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아닌가요?”

기발하고도 본질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네요. 인간이 제 아무리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가진 로봇’을 만들어 낼지라도, 여전히 무거운 숙제가 인간에겐 남아 있다는 사실을 얘기하고 있으니까요. 로봇들이 느끼게 될 마음의 상처를 인간은 어떻게 책임져야 할까요?

‘A.I.’의 묘미는 여기에 있습니다. 영화가 전개되는 시점(視點)을 잘 살펴보세요. 인간이 아니라 로봇인 데이빗의 시점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로봇의 처지가 되어서 타자(他者·자기 밖의 다른 존재)인 인간을 바라보게 만들고 있지요.

여기서 우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처지를 바꾸어 생각함)의 미학을 실감하게 됩니다. 필요할 땐 로봇을 금지옥엽처럼 여겼다가도 싫증나면 하루아침에 용도 폐기해 버리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이 영화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실감나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로봇의 눈에 비친 인간의 모습을 통해, 관객은 인간 존재의 의미를 거울처럼 반사해 보게 되는 것이죠.(아, 정말 영리한 영화네요!)

[3] 종횡무진 생각하기

하지만 여러분이 딱 여기까지만 생각했다면, ‘A.I.’가 제기한 문제의 절반밖엔 접근하지 못한 셈입니다. 이 영화는 인간의 윤리적·존재적 문제를 지나 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으니까요.

“엄마도 죽나요?”(데이빗) “인간은 모두 죽는단다.”(엄마) “그럼 나만 혼자 남겨지겠네요. 엄마는 얼마나 더 살아요?”(데이빗) “한 50년 쯤?”(엄마) “사랑해요. 죽지 말아요. 엄마….”(데이빗)

그렇습니다. 인간이 로봇을 제 아무리 사랑해줄지라도 그걸로 인간의 책임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인간은 언젠간 죽지만 로봇은 죽지 않기 때문이죠.

“인간은 우리를 너무 똑똑하게 만들었어. 인간의 실수로 우리가 괴로운 거야. 세상이 끝나도 남는 건 우리니까….”(로봇 ‘조’)

‘A.I.’가 던지는 핵심적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사랑했던 인간이 죽은 뒤 로봇의 마음속에 영원한 생채기로 남아 있을 아름다운 기억, 이걸 어찌 모두 인간이 책임질 것입니까.

하지만 이 영화는 스스로 위대한 대답을 남깁니다. 진정 사랑한다면 순간은 영원과 같다고 말입니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외계인에 의해 되살아난 엄마. 그녀는 하루밖엔 살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모른 채 “오늘 며칠이지(What's the date)?” 하고 데이빗에게 묻습니다. 데이빗은 이렇게 답하죠.

“오늘은, 오늘이에요(Today is today).”

아, 얼마나 아름다운 대답인가요. 마음껏 엄마를 사랑할 수 있는 오늘은 다른 그 어떤 날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하루’라고 데이빗은 말하고 있었던 겁니다. 사랑의 기억만으로도 영원히 살 수 있다고 말입니다.

[4] 알쏭달쏭 퀴즈

영화 속에서 데이빗과 동행했던 섹스로봇 조는 결국 인간에게 붙잡힙니다. 헬기가 뿜어내는 강력한 자력에 끌려 올라가던 조는 데이빗을 향해 마지막으로 이런 짧은 두 마디를 남깁니다.

“I am.” “I was.”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나는 산다, 나는 살았다? 한번은 현재형으로 다음은 과거형으로 이뤄진 조의 짧은 말 속에 숨어 있는 깊은 뜻을 생각해 보는 것이 오늘의 문제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꼬마 로봇 데이빗은 고전소설의 주인공 ‘홍길동’과 참으로 비슷한 존재 같습니다.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은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하지 못했고, 이를 평생 한으로 품고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영화 속 데이빗도 로봇이라는 태생 때문에 사랑하는 엄마를 마음껏 “엄마”라고 부를 수 없어 절망했습니다.

여러분, 오늘이라도 꼭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엄마!”라고 말입니다. 엄마는 영원히 살지 않습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정답은 다음 온라인 강의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