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과학카페]세상은 이웃사촌

  • 입력 2007년 4월 10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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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다섯 다리만 건너면 어느 누구와도 안면을 틀 수 있다는 속담이 있다.

다시 말해 서로 모르는 두 사람, 가령 서울 남자와 뉴욕 여자도 기껏해야 여섯 단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른바 ‘여섯 단계의 분리’ 개념이다.

우리는 수백 명의 사람을 알고 지낸다. 만일 우리가 각자 100명의 친구를 갖고 있다고 가정하면 1단계에서는 친구 100명, 2단계에서는 친구 100명의 친구들인 1만 명, 3단계에서는 100만 명과 연결된다. 자신으로부터 두 다리만 건너도 100만 명과 연줄이 닿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4단계에서는 1억 명, 5단계에서는 100억 명이 되므로 세계 인구 65억 명 가운데 어느 누구와도 아는 사이가 된다. 이런 여섯 단계의 분리 개념은 인류 모두가 연결될 정도로 지구가 비좁다는 의미에서 ‘작은 세계(small world)’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 모든 사람들 6단계로 연결된 ‘작은 세계’ 현상

작은 세계 현상은 경제학에서 유행병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작은 세계 효과가 현실세계의 여러 현상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뇌 안의 신경세포가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 여자들이 함께 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월경주기가 일치하는 현상, 헛소문이 삽시간에 퍼져나가는 일 등을 작은 세계 효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작은 세계 현상이 다양한 환경에서 나타나는 것은 내부에 공통적인 원리가 숨겨져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자연 세계와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여러 형태의 네트워크 속에 공통적으로 숨겨져 있는 법칙을 찾아내기 위해 탄생한 것이 ‘네트워크 과학(network science)’이다. 말하자면 네트워크 과학은 인체, 인터넷, 인간관계 등 세상의 모든 것을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로 보고 공통점을 발견하려는 학문이다. 따라서 물리학 생물학 경제학 사회학 인류학 컴퓨터 과학 등의 학제 간 연구가 불가피하다.

네트워크 과학은 다음과 같은 문제의 해답을 찾아 나서고 있다.

수백만 마리의 반딧불이는 거의 완벽하게 동시에 불빛을 깜빡인다. 지능이 거의 없는 곤충이 언제 불을 켜고 켜지 말아야 하는지 어떻게 미리 알 수 있을까? 귀뚜라미들은 어떻게 외부의 지휘를 받지 않고도 날개를 문질러 동시에 소리를 낼까? 심박 조율세포는 어떻게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걸까? 네트워크 과학은 반딧불이, 귀뚜라미, 심박 조율세포가 지휘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리듬을 맞춰 행동의 동기화(同期化)를 이뤄내는 원리를 연구한다.

○ 네트워크 과학, 인간과 자연 네트워크속 공통점 탐구

네트워크 과학의 연구 주제는 끝이 없다. 인터넷이나 송전망 같은 거대한 네트워크는 우연한 작동 착오에 어느 정도로 취약할까?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를 비롯한 전염병이 확산되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을 최선의 전략은 무엇일까?

새로운 아이디어가 유행하는 이유는 뭘까? 아무도 회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정보를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회사 전체가 혁신되고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합리적으로 보이는 개개인의 투자 전략에서 비이성적인 투기 거품이 일어나고, 거품이 꺼진 후에 사람들의 손실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트워크 과학은 이러한 의문들이 한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람 뇌의 신경세포 네트워크, 반딧불이 무리의 동기화된 행동 등 자연현상부터 경제 거품, 문화의 유행 등 사회현상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것에서 작은 세계 현상이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네트워크 과학은 우리 모두가 남남이 아니라 이웃사촌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일깨워 준다.

이 세상은 얼마나 좁고 연줄로 끈끈하게 얽혀 있는가!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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