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인문계 대입 실전 논술

  • 입력 2007년 4월 10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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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제

다음 글들은 국가범죄나 전쟁에 대한 사후처리를 ‘용서와 화해 그리고 정의’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의 예인 <나>와 <다>의 차이점을 설명한 뒤, 자신의 대답을 <라>와 <바>와 같은 현실의 구체적 사례를 적용해서 논술하시오. (1600자 ±100) ※제시문은 이지논술 사이트에 있습니다.

■ 학생글

김소연·고창여자고등학교 3학년

①세계 대 1차대전이 끝난 직후 매우 혼란한 상황을 맞이한 독일에서 나치당이 집권한 후 백인우월주의의 영향을 받아 잔인한 유대인 학살까지 행해졌다. 제시문 [가]에서는 이와 같은 처참한 상황에서 나치의 집단수용소에 갇혀 있던 시몬 비젠탈은 나치스 친위대 대원으로 부터 참회의 말을 듣지만, 그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②후에 그 일에 대해서 계속 마음의 질문을 받게 된다.

이에 대하여 상반된 두 가지 입장이 있다. ③첫 번째로는 제시문 [다]에서는 참회를 바라는 젊은 대원의 태도를 유치하다고 했다. ④애초에 나치가 한 행동은 유대인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했고, 그러므로써 유대인이 받아야 할 고통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행동에 대한 정당한 죄값을 받을 생각은 안하고 그저 용서만 바라는 자세를 보며 이기주의라고 비판을 했다.

반면에 제시문[나]에서 티베트 스님이 중국의 감옥에 18년 동안 갇혀 있다가 겨우 인도로 탈출하였는데, 감옥에서 가장 큰 걱정이 뭐였냐는 질문 받았을 때 자신의 안위가 아닌 중국인에 대한 동정심을 잃지 않게 되지 않을까가 가장 염려스러웠다고 했다. ⑤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하는 관용의 정신을 보여준다. 사람들에게 따라 정도는 다르지만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심은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지문에서는 자신의 이기심을 넘어서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가 나타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점이 있다. 관용을 어느 선까지 베풀어야 할 것인가? 사람을 죽인 사람도 관용으로 죄를 다 용서하여 주어야 하는 것인가?

제시문[바]에서는 ⑥일제시대 자치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사람 이광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대해 항거를 하였으나 큰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었고, 계속된 통치로 인해 독립의 희망을 저버리는 사람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이 앞서서 일본에 협력해서 조금씩 자치를 실현해 ⑦가자는 주장하였다. 이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어 나라를 파는 짓을 한 행위는 용서해 주어야 하나? 이광수뿐만 아니라 ⑥일제시대에 일본에 협력해서 떵떵거리고 살았던 사람들이 현재도 여전히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관용을 베풀어주어야 할까?

⑤지은 죄를 인식하고 또 기억함으로써, 앞으로는 또다시 그런 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제시문[나]에 관용의 궁극적 목표가 나와 있다. 이것은 자신의 도덕적 판단에 달린 문제다. 여기에는 많은 문제가 있다. 자신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반성하지 않으면 용서는 아무 소용없는 짓이 되 버린다. 그러므로 ⑧도덕적 판단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제재를 가해야 한다.

제시문 [라]에서는 모리스 파퐁이란 사람은 나치정권 때 치안 부책임자였다. 그는 유태인을 체포하여 죽음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는 역할을 하였다. 그가 직접적으로 유대인들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제시문 [마]의 판결문⑨에 내용을 보면 파퐁의 행동이 사람들을 직접 가스실로 던진 자들의 책임과 비교하여 결코 적다고 보지 않았다.

이렇게 독일은 그 사건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잘잘못을 정확히 가려 사후 처리를 매우 잘하였다. 그에 반해 현재 우리나라에서 친일파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옹호하는 입장을 ⑩취하므로써 국민들의 반감을 조성하였었다. 권력층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도 여기에 크게 기인한다. 공정한 처벌을 통해 모두가 이에 공감하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 첨삭지도

논점(의제·Agenda)을 제시해주는 글인 <가>는 상부명령에 복종해 반인류적 범죄를 저지른 개인에게 어떤 심판을 내려야 하는가에 대해 묻고 있다. 논술의 3대 요소를 흔히 ‘논점, 논지, 논거’라고 한다. 글 <가>를 통해 ‘논점’ 즉 ‘무엇을 논해야 하는가’를 잘 파악하는 게 우선 관건이다. 정리하자면 2차 대전 당시 독일, 일본, 이탈리아 등의 파시즘 이데올로기에 의해 각자의 판단력을 잃고 범행을 저지른 일반인의 수동적 행위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물어야 하나, 각자의 행동을 후회하거나 혹은 반대로 인정하지 않는 개인에 대해서는 각각 어떤 판단을 내려야하는가. 과연 용서와 화해는 어떻게 가능한가. 또 참회만으로 용서가 가능한가. 이런 물음들을 ‘정의’ 차원에 묻고 있는 것이다. 또한 <나> <다> <라> <마>는 일제강점기 친일인사들의 반민족적 행위나 종군위안부 등 일본의 전쟁범죄 등이 아직 미완의 역사문제로 남아있는 동북아시아에 큰 시사점을 주고 있다. 나치의 반인륜적 범죄 처벌에는 공서시효와 예외가 없다는 게 유럽 국가들의 변치 않는 입장이다.

쓸거리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의 예인 <나>와 <다>의 차이점을 설명해야 한다. <다>는 정의의 심판을, <나>는 관용의 용서인데, 이는 서로 상반된 입장이다. 물론 <나>의 지적처럼 범죄에 대한 기억이 소거된 무조건적 용서는 희생자에 대한 폭력이나 가해자에 대한 값싼 은혜에 불과할 것이다. 용서를 하더라도 일단 잘잘못을 가린 뒤에나 가능하니까 말이다. 정의를 실천하지 못하면서 사랑을 들먹이는 게 이율배반일 수도 있다. 그런데 ⑤에서 카를의 반인륜적 범죄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만 읽어냈지, 그를 용서해야 하는가, 그러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 없다. 제시문 <나>를 부정확하게 독해한 탓이다. 논술에선 논제가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 제시문 <나>의 입장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용서하자’다.

두 번째 쓸거리는 <가>의 질문에 대한 자신의 대답을 <라> <마> <바>처럼 현실의 구체적 사례를 적용해서 논술해야한다. 소연 학생은 논점파악도 잘했고 논지(⑧)도 명확해 좋다. 논거도 결말부(제시문 [라]에서는∼)에서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한국의 과거사청산을 비교해 설득력을 높였다. 하지만 논제가 요구하는 것은 제시문들 안에 있는 사례를 참고해 다른 예를 들어보라는 것이다. 가령 일본이 저지른 종군위안부, 731부대의 만행, 난징대학살이나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유고내전 때 세르비아계의 인종말살정책, 1980년 광주학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헤이트(흑인차별정책) 등 여러 예가 있을 것이다.

①에선 두 가지 오해가 가능하다. 첫째 2차 대전 발발 전에 나치학살이 자행되었는지, 둘째 나치의 아리안인종 우월주의는 곧바로 백인우월주의였는지가 그것이다. 고로 “∼나치당이 집권한 후 아리안인종우월주의 영향을 받아 2차 대전 당시엔 잔인하게 유대인 인종말살을 자행했다”로 써야 한다.

②에선 질문을 구체적으로 써주지 않아 문제다. “후에 그 일에 대해서 ‘잘했나, 못 했나’라는 마음의 질문을 계속 받는다”로 명징하게 써야 한다. 비문인 ③은 “첫 번째 제시문 [다]에서는”으로 고쳐야 한다. ④는 너무 길고 복잡한 문장이자 비문덩어리이어서 선뜻 이해가 안 된다. “애초에 나치가 한 행동은 유대인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유대인이 받아야 할 고통은 인간의 고통이 아니라 사물의 마멸이거나 벌레의 사라짐이기 때문에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때문에 무자비한 유대인 인종말살정책이 가능했다. <다>는 카를의 행동 또한 자신만이 편하게 죽으려고 다시 한 번 유대인을 도구화하는 이기주의라고 비판한다.”

문장 ④안의 ‘그러므로써’는 ‘그럼으로써’로, ⑥은 ‘일제강점기’로, ⑦은 ‘가자고 주장하였다’로, ⑨는 ‘의’로, ⑩은 ‘취함으로써’로 각각 수정해야 한다. 맞춤법, 띄어쓰기, 철자도 논술표현력 채점대상이란 걸 명심하기 바란다.

논제 분석

언어논술 일반유형이다. 제시문들은 국가범죄나 전쟁 그리고 반인륜적 범죄에 대한 사후처리를 용서와 화해 그리고 정의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 논점을 이것에 맞추는 게 첫 번째 관건이다. 쓸거리는 두 가지다. (1) <가>의 질문에 대한 대답의 예인 <나>와 <다>의 차이점을 설명해야 한다. (2) <가>의 질문에 대한 자신의 대답을 <라> <마> <바>처럼 현실의 구체적 사례를 적용해서 논술해야한다.

‘다문항 다논제’형이 아니라, 1600자 내외로 ‘통글’ 한 편을 완성해야 하므로 기승전결이나 ‘세 단계 얼개(서론-본론-결론)’ 등등으로 자신의 논지를 최대한 논리적으로 구성해내는 얼개 짜기가 창조적 문제해결의 열쇠다.

제시문 분석

<가> 나치치하에서 유대인절멸수용소에 수감된 뒤 살아남은 유대인 시몬 비젠탈이 1976년 미국에서 출판한 자전적 실화소설 ‘해바라기’는 미국 고등학교, 대학교 토론교재로 유명하다. 2차 대전 당시 비젠탈은 이동병원에서 목숨이 경각에 달린 SS(나치스 친위대)대원 카를의 고백성사를 듣는다. 난생처음 보는 비젠탈에게 자신의 유대인학살 범죄를 낱낱이 털어놓는 카를의 참회를 용서해줘야 하는가. 비젠탈은 순간 당혹감에 휩싸여 ‘그를 동정할 것인가, 심판할 것인가’를 놓고 번뇌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뒤에도 마음이 편치 못했던 비젠탈은 ‘해바라기’를 쓴다. 그리고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 시몬 비젠탈의 질문은 이후 세계 각계로부터 격렬한 논쟁을 불러왔다. 책 ‘해바라기’ 후반부는 그의 질문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답변이 실려 있다. 달라이 라마는 18년 동안 중국의 감옥에 수감된 바 있던 티베트 승려가 가진 ‘중국인들에 대한 동정심’을 예로 나치대원을 용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화해위원회 회장직을 맡았던 투투도 같은 입장이다.

<다> 나치수용소에서 가까스로 생존한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는 카를의 뻔뻔스러움과 이기주의를 질타한다. 징징거리는 어린아이와 같이 다시 한 번 유대인을 도구로 사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기주의로 가득 차 자신의 고뇌를 누군가에게 전가하고 싶은 욕망에 찌들어있다고 보는 것이다. 독일철학자 허버트 마르쿠제도 용서는 ‘정의에 대한 모욕’이란 입장이다.

<라> 미셸 캥의 우화 ‘처절한 정원’은 1999년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한 모리스 파퐁 재판을 소재로 하고 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파퐁은 코르시카와 알제리 행정장관, 파리 경찰국장, 예산장관까지 역임했다. 그러나 40년간이나 지하에 묻혀 있던 그의 범죄는 마이클 슬리틴이라는 역사학자에 의해 폭로된다. 마이클 슬리틴은 파퐁에 의해 아우슈비츠로 보내졌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1981년 파퐁의 반인륜적 범죄를 낱낱이 증언했다. 1995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유대인 강제수용소에 대한 프랑스의 국가적 책임을 시인한 후에야 비로소 파퐁에 대한 재판이 열려, 10년 형을 선고받는다. 파퐁은 2002년 건강문제로 풀려났다.

<마> 1941년 유대인 최종해결책(인종말살)을 구체적으로 짠 아우슈비츠수용소 배후자 아이히만은 전쟁 후 아르헨티나에 숨어 살다 1959년 이스라엘 정보기관에 연행돼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고 사형을 당한다. 죽는 날까지 그는 자신의 죄를 인식하지 못하고 오직 ‘상부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을 일삼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정치철학자 해나 아렌트는 ‘반성적 무사유’로 인한 ‘악의 평범성’이라고 정의했다. 누구 말마따나 아이히만은 파시즘기계 속의 하나의 작은 톱니바퀴로 주체의지를 지닌 자유인이 아닌 상부명령에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는 자동인형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바> 최인훈의 소설 ‘회색인’에서 주인공 독고준이 친구에게 친일파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 대목이다. 그는 “절망의 조건은 비록 바깥에서 올는지 모르지만, 절망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이라는 걸 알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당시 친일파들은 일본을 이기기에는 너무나 강한 상대로 인식했다. 그래서 저항은 부질없는 희생을 가져오므로 차라리 일본에 협력해 일본의 자치주로 사는 게 실리라는 명분으로 친일을 정당화했다. 최인훈은 이러한 변명은 ‘없는니만 못한’ 자기합리화라고 질타한다.

釉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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