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재락]“어! 빨간 조끼 안 입었네”

  • 입력 2007년 4월 5일 20시 31분


코멘트
‘빨간 조끼=현대자동차 노조.’

강경 노동운동을 벌이는 노조의 간부들이 주로 입는 빨간 조끼. 투쟁의 상징이면서 때론 견제 받지 않는 노동귀족의 상징처럼 비치기도 한다. 특히 본보가 1월 초 현대자동차 노조의 문제점을 다룬 심층 시리즈(‘현대차 노사관계 역주행’)를 보도한 뒤 빨간 조끼는 현대차 노조 간부를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하지만 4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노조 사무실에서는 이례적인 장면이 있었다. 산별노조로 전환함에 따라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지부로 바뀐 현대자동차 노조 위원장 취임식 직전 열린 이상욱 지부장의 기자간담회장.

이 지부장은 빨간 조끼 대신 감청색 회사 작업복 차림으로 간담회를 시작했다. 여느 때라면 위원장은 물론 노조 간부들도 빨간 조끼 차림으로 대거 배석해 ‘세’를 과시했지만 이날은 빨간 조끼를 입은 간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 지부장은 “조합원의 고용이 문제가 될 때는 강력하게 투쟁하겠다”면서도 “금속노조 집행부가 근로조건 개선과 상관없는 ‘정치 파업’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대처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투쟁’보다는 ‘신중’에 방점을 찍은 것.

현대자동차의 한 조합원은 이날 노조 자유게시판에 “동창회나 동기회 향우회에 가서 현대자동차에 다닌다고 하면 욕만 얻어먹는다”며 “기업경영이나 노조의 대응방식 등 한 가지라도 현대중공업을 배웠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해까지 12년 연속 무분규로 협상을 타결하면서 정년을 만 57세에서 58세로 1년 연장하기로 합의한 현대중공업이 부러워 쓴 이 글은 5일 오후 현재 조회 2만여 건을 기록했으며 동조하는 댓글도 몇 건 올랐다.

현대자동차는 1987년 노조 설립 이후 한 해(1994년)를 제외하고 지난해까지 19년간 파업을 벌였다. 지난해에는 32일간(매출 손실액 1조5980억 원)의 파업 가운데 12일이 ‘정치 파업’이었다. 올해도 연말 성과급 추가 지급을 요구하며 벽두부터 12일간 파업을 벌여 2884억 원의 매출 손실을 입혔다.

이 지부장은 “대중이 없는 투쟁은 있을 수 없다”며 간담회를 마쳤다. 이 지부장의 말을 ‘국민의 공감을 받을 수 없는 투쟁은 이제 설 자리가 없다’는 말로 해석하고 싶은 것이 대다수 국민의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현대자동차 노조 간부들이 꼭 필요할 때만 빨간 조끼를 입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울산에서

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