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입력 2007년 3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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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애초 혼자서 사는 게 인간의 섭리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은 혼자서는 절대로 살 수 없을 겁니다. 사람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하고 그래야지만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이 사람과 만나 살아가는 데 있어 그저 즐거운 일만 생기지는 않네요. 각자의 생각이 맞지 않으면 갈등을 일으키게 되고 그 갈등으로 서로 상처를 받게 되니까요. 상처 받은 후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충격에 사로잡히게 되고 서로에게 더 큰 상처만 주는 일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처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게 바로 ‘전쟁’이 아닐까요?

우리에게 전쟁은 남의 나라 이야기 같습니다. 직접 겪어 보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6·25전쟁을 겪은 세대 중에 마지막 남은 이들이 사라지면 전쟁은 더더욱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전쟁은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현재 이야기이고, 미래 이야기입니다. 전쟁의 파편은 곳곳에 남아 있고 아직도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날카롭고 흉측해서 깊은 상처를 남기고야 맙니다. 죽음, 이별, 불구, 가난 등 견디기 힘든 일들이지요.

소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바로 우리의 아버지, 우리의 할아버지가 겪은 고통과 똑같은 고통을 맛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전쟁의 피해로 신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지요.

이 작품은 197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하인리히 뵐의 첫 장편소설입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험이 있고, 그때 보았던 전쟁의 참상, 전쟁 이후의 혼란을 소설 속에서 그려냈지요. 폐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간 군상. 하인리히 뵐은 ‘프레드’와 ‘케테 보그너’ 부부를 통해 전후에 찾아온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자, 이제 한번 그들을 만나볼까요?

나는 아이들을 잊을 수가 없었다. 눈을 감아도 그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내 아이들, 벌써 열세 살이 된 아들, 열한 살의 딸, 판에 박은 일들을 해야 할 창백한 모습의 두 아이. 그들은 노래하는 걸 좋아했지만 내가 집에 있을 때는 노래하는 것을 금했다. 그들의 쾌활함과 소음이 나를 자극하여 아이들을 때리게 했다. 사람 때리는 것을 결코 참지 못하던 내가 아이들의 얼굴을, 엉덩이를 때린 것이다. 조용히 있고 싶었기 때문에, 근무에 지쳐서 돌아온 저녁에 조용히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프레드는 처음부터 자신의 아이를 때리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자상하고 따뜻한 아버지였지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사랑스러운 자신의 자식을 때리게 된 것일까요? 잠재되어 있었던 폭력성이 갑자기 고개를 든 것일까요? 아니면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자여서 그런 걸까요? 프레드는 자상한 아버지였습니다. 그러나 길고 긴 전쟁 끝에 그는 자신의 사랑스러운 자식에게 손찌검을 하는 ‘나쁜 아버지’가 되어 버렸지요. 전쟁은 ‘자상한 아버지’를 잡아먹은 강도이며, 괴물인 것입니다.

프레드는 자신이 처한 혹독한 상황에 몸서리를 칩니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아내 케테에게 단호하고도 서글픔이 밴 목소리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가난은 나를 병들게 했어.”

사랑하는 남편의 몸서리에 케테는 자신의 처지 또한 그에 못지않음을 털어냅니다.

“네, 그래요. 그러니까 당신과 떨어져 있는 게 더 좋아요. 사정이 달라지지 않는 한 말이에요. 내가 울도록 내버려 두세요. 일 년 안에 나도 애들을 때리게 될지 몰라요. 내가 젊은 시절에 쳐다보기만 해도 무서웠던 그 가련한 부인들처럼.”

화목했던 예전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떨어져 살아야만 하는 프레드와 케테는 아주 잠깐 축복 같은 만남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의 만남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네요. 함께 살 수 없는 현재와 가난 때문에 벌어질 일들이 케테를 두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어두운 말만 쏟아 놓게 되는 거지요. 일 분 일 초가 소중할 이들이 서로에게 가시를 박게 만든 건 누구의 책임일까요?

나는 식탁에서 비누갑을 집어 오기 위해 일어났다. 그리고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이건 누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고, 누구와 함께 그것에 대해 말하지 못할 끔찍한 일이며, 나는 돈이 필요하고 내 아내와 함께하기 위한 방이 필요하다. 우리는 같은 도시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부터 단지 여관 방에서만 결혼 생활을 영위해 왔다. 날씨가 따스할 때면 가끔 야외의 공원이나 허물어진 집의 복도나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그 밖의 장소를 찾았다. 우리 집의 방은 너무 작고 하나뿐이다.

프레드는 아내와 함께 보낼 공간이 없음을 한탄합니다. 지척에 두고 있으면서도 함께할 공간이 없어 떨어져 살아야만 하는 이들. 여러분은 이 부부가 어떻다고 생각하나요? 단지 전쟁을 겪고 난 후 찾아온 가난에 지쳐 헤매는 그들이기에 불쌍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나요? 우리도 언젠가 그들과 똑같은 고통과 절망을 맛보게 될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단지 불쌍하기만 할까요? 아니면 그저 지켜보기만 할 건가요?

전쟁은 우리를 슬프게 만들고 좌절을 선사하며 ‘나’를 빼앗아갑니다. 더 중요한 것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세상에서 방황해야만 하는 프레드와 케테 부부 이야기가 비단 과거의 일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가난, 그 속에서 점점 인간성을 잃어버리고 피폐해져 버릴 수밖에 없는 삶. 그것은 전쟁이 남긴 지울 수 없는 상처임에는 틀림없는 일입니다. 새봄이 문턱까지 온 지금, 마른 가지를 뚫고 피어오르는 꽃잎 같은 마음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과연 전쟁은 우리의 삶을 어디로 이끄는지 말입니다.

이승은 학림필로소피 논술전문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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