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대학원 현주소]국제기구 진출, 졸업생의 2% 수준

  • 입력 2007년 2월 2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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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교육인적자원부가 국제전문 인력 양성을 목표로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서울 9개 대학에 설립 허가를 내준 국제대학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9개 국제대학원이 최근 개교 10주년을 맞아 공동으로 작성한 자체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대학원의 졸업생 중 유엔개발계획(UNDP),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기구 진출자가 전체 졸업생의 2%인 63명에 불과했다. 국제기구보다 모집 인원이 많은 외국 기업에도 졸업생 중 14.5%(459명)만 진출했다.

세계화 시대를 주도하는 국제 전문 인력을 어떻게 양성할 것인지 구체적인 프로그램도 없이 시작한 국제대학원은 760억 원의 국비만 낭비하고 목표 달성에 실패한 채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대학원으로 변질돼 운영되고 있다.

○전공 못살리는 경우 많아

9개 국제대학원에 따르면 국제대학원 졸업생들이 가장 많이 진출한 곳은 일반 학부 교육만으로도 취업이 가능한 국내 기업이었다. 전체 졸업생의 34.2%가 국내 기업에 진출했다.

이화여대를 제외하고는 모든 대학에서 국내 기업에 진출한 졸업생이 가장 많았다. 특히 중앙대와 한양대는 각각 78.4%, 57.4%의 졸업생이 국내 기업에 진출했을 정도로 국내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국내 기업에 진출한 뒤에도 전공을 못 살리는 경우가 많다.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이인표 교수는 “국내 기업에 입사한 뒤 국제 관련 분야가 아닌 일반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 배치되는 경우가 더 많다”며 “전공 특성을 살릴 수 없다는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거나 고민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 다음으로는 외국 기업(14.5%), 공무원 공기업 정부 산하기관 등 공공부문(13.8%), 진학(10.2%)의 순으로 진출자가 많았다. 진로 파악이 어려운 졸업생도 25.4%나 됐다.

대학별 국제기구 진출자는 고려대(18명), 이화여대(14명), 연세대(11명) 순이었다.

서울대는 5년간 99억 원을 지원 받아 네 번째로 많은 지원금을 받았지만 국제기구 진출자는 3명으로 전체 대학 중 6위에 그쳤다.

대학별 외국 기업 진출자는 이화여대(142명), 연세대(106명), 한국외국어대(59명) 순으로 많았다.

○처음부터 전략도 능력도 없었다

국제대학원이 이름에 걸맞지 않게 국제 전문 인력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대학별 특성화 전략이 없었다는 점을 꼽는다.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박인휘 교수는 “교육부와 대학 모두 어느 분야의 국제 전문 인력을 어떻게 양성하겠다는 구체적인 전략을 세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9개 국제대학원에 개설돼 있는 전공은 국제통상 국제금융 국제관계 지역학(중국학 미국학 중심) 등으로 학교 간 차이가 거의 없다.

국제기구 진출 희망자를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맞춤형 프로그램’이 없었다는 것도 실패의 원인으로 꼽힌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호 원장은 “석사 학위만으로도 진출이 가능한 ADB, UNDP,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 등 구체적인 국제기구를 선정해 이곳에 들어가기 위한 적절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각 대학은 국제기구나 외국기업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국제화된 인재를 교수로 초빙하기보다는 국제대학원 설립을 일반 교수자리를 늘리는 기회로만 이용한 측면이 강하다.

또 국제대학원은 주요 국제기구의 인사 담당자를 초청해 학생들을 소개하고 채용 설명회를 연 일도 없었다.

교과과정과 관련해선 100% 영어 강의로 진행되지만 강의 내용의 깊이가 학부 수준의 경제학 정치학 경영학 관련 강좌와 크게 다를 게 없다는 비판이 많다.

연세대 국제대학원을 졸업한 강모 씨는 “상당수 강의가 학부 때 들었던 강좌를 영어로 배우는 수준이었다”며 “특정 분야에서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요구하는 국제기구나 외국 기업의 높은 문턱을 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서강대 국제대학원을 졸업한 이모 씨는 “일부 한국인 교수는 영어 강의가 너무 서툴러 ‘차라리 한국어로 강의를 듣는 게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대 외국인학생 3년새 5배 증가

긍정적인 기능이 없지는 않다.

최근 국제대학원은 한국인을 위한 국제 전문 인력 양성기관이란 기존의 목표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수정하고 있다. 중국 베트남 인도 등 개도국 유학생들을 대거 받아들이고 있는 것.

서울대의 경우 2003년 외국인 학생이 12명이었지만 2006년에는 61명으로 5배 정도 증가했다.

중앙대는 2000년 외국인 학생이 3명이었지만 지금은 20여 명이다. 경희대와 서강대는 각각 전체 학생의 70%, 30% 정도가 외국인이다.

국제대학원 교수들은 국제대학원의 기능이 개도국의 ‘친한파’ ‘지한파’를 양성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강조한다.

연세대 국제대학원 장대련 원장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학비가 저렴하고, 영어 강의를 통해 한국의 경제 발전을 배울 수 있어 많은 개도국 학생이 국제대학원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고려대 국제대학원의 마양크 모한(23·인도) 씨는 “1997년 외환위기를 빠르게 극복한 비결이 궁금해 한국으로 유학을 왔다”며 “특히 영어로 수업을 들을 수 있고 다양한 장학금 혜택이 있는 게 좋다”고 말했다.

::국제대학원::

1996년 11월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정책의 일환으로 교육인적자원부가 경희대 고려대 서강대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중앙대 한국외국어대 한양대 등 9개 대학을 선정해 설립 허가를 내준 국제 전문 인력 양성 대학원으로 1997년 3월 개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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