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승진 어림없다… 지자체는 지금 인사 개혁중

  • 입력 2007년 1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최근 지방자치단체마다 ‘인사 개혁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중앙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풍지대’였던 지방에서는 한 지역에 오래 근무하는 지방공무원들의 특성상 연공서열에 따른 인사가 여전히 계속돼 왔다. 하지만 최근 지자체들은 일하기 싫어하고 무능한 공무원들을 아예 퇴출시키는 인사 개혁을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더욱이 행정자치부는 지난해부터 중앙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지방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방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연구 중인 지방행정연구원의 금창호 지방행정혁신센터 소장은 “이 제도가 실시되면 지방의 고위직 공무원들의 직급 구분이 없어져 지금까지의 기득권을 잃게 되고 공모제나 개방형 직위제가 확대돼 한 자리를 놓고 다른 지자체나 중앙정부의 공무원들과도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고 말했다. 》

#1 정견 발표회로 사무관 승진

15일 오전 전남 강진군청 대회의실에선 이색적인 ‘정견 발표회’가 열렸다. 5급(사무관) 승진 후보 16명이 동료 앞에서 ‘내가 사무관이 된다면’을 주제로 마이크를 잡은 것. 이들은 5분 동안 자기소개와 함께 군정 추진 계획과 소신 등을 밝혔다.

심사위원은 직원 가운데 30명을 무작위로 뽑았다. 이들은 정견 발표를 들은 뒤 비전 제시 능력과 애향심, 공직자 정신, 추진력 등 10가지 항목을 평가했다.

군청은 심사위원의 평가와 기존 업무고과를 합산해 4명을 승진시켰다.

#2“국장 적임자는…” 직원 투표

서울 서초구의 박성중 구청장은 지난해 7월 의회사무국장과 총무과장 등 일부 간부를 직원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실험적인’ 인사시스템을 도입했다.

6급 이상 직원들이 투표한 결과 40∼50%의 최다 득표를 한 후보자들이 해당 자리에 앉았다. 주민 대표들이 동장이나 통장 등을 선출한 사례는 있으나 직원 투표로 간부를 뽑은 건 최초의 시도였다.

이에 대해 서초구 관계자는 “동료의 검증을 거친 사람을 앉히는 게 최선이라는 구청장의 철학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3 국실장, 유능한 직원 확보전

충남도 기획관리실의 한 사무관은 일을 잘한다는 내부 평가 덕분에 경제통상국과 문화관광국 등에서 서로 끌어가려 해 한동안 ‘행복한 고민’을 해야 했다.

결국 실국장들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끝에 투자유치 업무가 더 적격이라는 결론이 나면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이완구 충남지사가 지난해 말 ‘실국장 책임경영제’를 도입하자 성과를 높이려는 실국장들이 유능한 직원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벌어진 풍경이다.

○ 민간인과도 경쟁

경남도 경제통상국 오춘식 투자유치과장은 23일 오후 서울로 출장 와 외국인투자자문회사를 방문하고 기업도시 유치와 관련된 업무를 처리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오 과장은 공무원 출신이 아니라 삼성테크윈 부장 출신이다. 2003년 9월 공모에 응시해 지방전임 계약공무원 4급으로 임용됐다. 계약 기간은 5년이다.

오 과장이 국내외 투자 유치의 ‘첨병’ 역할을 한 덕분에 경남도는 지난해에만 국내 자본 8835억 원, 외국 자본 9800만 달러를 유치했다.

이처럼 지자체에도 민간인 출신의 공무원이 늘어나고 있다. 부산시는 3년 전부터 보건환경연구원장 등 6개 자리를 개방해 대학교수나 전문가를 뽑고 있다. 기존 공무원들은 내부 경쟁뿐 아니라 민간 전문가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 살벌해진 승진 인사

울산시청 모 부서의 A 씨는 19일 인사에서 ‘시정지원단’으로 발령 났다. 이곳은 능력 없고 다른 직원들이 기피하는 직원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신설됐다. 이곳으로 발령받은 4명의 공무원은 환경과 교통 분야의 현장 업무를 지원하는 업무를 받았다. 하지만 올해 말 개인 역량 평가 결과가 나쁠 경우 퇴직을 각오해야 한다.

울산 남구청도 22일 사무관급 공무원 3명에게 보직을 주지 않고 총무과로 대기발령을 내는 인사를 했다.

서울 강남구 맹정주 구청장은 지난해 말 인사에서 ‘파격 인사’를 단행했다. 통상적으로 고참 몫이었던 총무과장 등 본청의 주요 과장직을 승진한 지 반년도 안 된 신참 사무관으로 채웠기 때문이다. 한두 자리도 아니고 6개 주요 과장직을 신참으로 교체한 건 처음이어서 일각에서는 ‘인사 혁신이 아니라 인사 혁명’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경기 파주시는 2일 실시한 인사에서 6급 4명을 5급 사무관으로 승진시키고도 곧바로 과장 자리에 임명하지 않고 6개월에서 1년 동안 업무 성과를 보아 가며 과장으로 발령을 내기로 했다. 시간이 자리를 만들어 준다는 ‘철밥통 의식’을 바꾸기 위해서다.

○ 신인사시스템 도입

서울 성동구는 5급 사무관 승진시험 공부를 위해 6급 주사들이 수개월씩 자리를 비우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지난해 9월 5급 승진 예정자를 대상으로 ‘자격이수제’를 도입했다. 6급에 임용된 지 4년이 지난 공무원들이 일정 과목에 응시해 합격하면 승진 자격을 주는 제도. 역량평가에서 세 번 떨어지면 승진 자격이 박탈되는 ‘삼진아웃제’도 함께 도입됐다.

인천시는 지난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PM(Performance Measure) 인사제도를 도입했다. 매년 자신이 목표를 정하고, 달성 여부에 따라 인사 때 인센티브를 차등 지급하는 것.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이 취임한 이후 ‘신인사제도’라는 새로운 인사시스템을 도입해 적용하고 있다. 창의적으로 일하는 공무원에게는 항공 마일리지와 비슷한 성과 포인트를 부여해 우대하는 것이 특징이다. 성과 포인트를 많이 받으면 승진 소요 기간이 단축된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창원=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 부작용은 없나

지방정부의 인사 혁신이 긍정적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공직사회의 동요와 반발이 있고 무리한 개혁으로 인한 부작용도 나타난다.

최근 직원 투표로 행정과장을 뽑은 경남 창녕군에서는 ‘선거전’이 과열돼 직원끼리 갈등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조직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개방형 공모제에도 문제가 있다. 충북도는 ‘개방형 공모제’로 임명한 김양희 복지여성국장이 한나라당 당직자 출신이어서 같은 당 소속 정우택 지사의 정실인사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충북대 행정학과 최영출 교수는 “개방형 공모제는 심사의 공정성 확보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팀제 도입도 마찬가지. 팀제는 개인별 업무를 명확히 구분해 급한 일이 생기면 서로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지방은 주민서비스 업무가 많아 담당 직원이 출장이나 외근을 할 경우 행정서비스 공백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 또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의 인사 순환이 빠른 현실에서 기안자와 집행자가 달라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 소재를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고위공무원단도 전국 규모로 공모할 경우 서울 인천 경기 등 수도권으로 우수한 공무원이 몰리고 일부 지역이 불리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우려가 있다.

부처가 많은 중앙정부에서는 인적 교류가 가능하지만 지역 특색이 저마다 다른 지자체에서는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반응도 많다. 육동일(자치행정) 충남대 교수는 “성과에 따른 인사가 공무원을 계량적 점수 확보에만 매달리게 만드는 등 인사 혁신이 본질을 놓치고 수단으로만 흐르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청주=장기우 기자 straw825@donga.com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