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권 지난달 주택거래 10건중 1건이 증여

  • 입력 2007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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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 산 2500만 원짜리 반(半)지하 빌라가 인생의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습니다. 소형 아파트 청약도 못 하는 주택 보유자가 되다니 쓴웃음만 나옵니다.”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 해 놓고선 집을 팔 수도 없게 하고, 그냥 살자니 이자 부담 때문에 견딜 수도 없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당초 의도했던 투기 수요 억제와 공급 확대에는 실패한 반면 서민들의 주거 불안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부동산 관련 세제(稅制) 강화와 주택대출 억제 등은 정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엉뚱한 피해자만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본보가 17일 단독 입수한 대법원의 ‘등기원인별 소유권 이전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서울 강남권에서 거래된 부동산 10건 중 1건가량이 자식 등에게 주택을 물려준 증여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강남구에서 증여된 부동산은 303건으로 전달(121건)보다 150% 늘었다. 같은 기간 서초구의 증여 건수도 139%(110건→263건) 늘었고, 송파구는 58%(140건→221건) 증가했다. 이들 강남 3개구의 지난달 증여 건수는 1년 전과 비교해도 40∼65%씩 늘었다.

일반 매매거래 대비 증여의 비율도 서초구는 지난해 7월 4.2%에서 12월에는 9.7%로, 강남구는 5%에서 9.3%로 높아졌다.

정부는 올해부터 1가구 2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율을 50%로 높여 다주택자들이 미리 여유 주택을 팔 것을 기대했지만 정작 증여가 늘어나면서 주택공급 확대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지난해 말 강남권 다주택자들이 일반 증여가 아닌 ‘부담부 증여’(대출금이나 전세보증금을 끼고 증여하는 것)를 택해 양도세 중과(重課)를 피해 간 것으로 보고 있다.

부담부 증여를 하면 대출금과 전세보증금에 증여세율(10∼50%)이 아닌 양도세율(9∼36%)이 적용돼 총세액이 줄어든다.

1가구 2주택자가 지난해 말 시가 9억 원짜리 아파트(최초 매입가 5500만 원 가정)를 전세(보증금 2억2500만 원)를 낀 채 부담부 증여로 넘겼다면 올해 일반 매매할 때보다 세금을 60% 이상 줄일 수 있다.

김종필 세무사는 “양도세를 물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매매 대신 증여를 택해 세금도 아끼고 주택은 사실상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신규 주택 공급에서도 정부는 사실상 역(逆)주행을 해 왔다.

정부의 과도한 건축 규제로 민간주택 부문이 위축되면서 서울의 분양 건수는 2002년 15만9767가구에서 2005년에는 5만1797가구로 줄었다. 이는 지난해 집값과 전세금 급등을 불렀다.

가(假)수요 억제를 위한 금융정책도 실수요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7%까지 치솟으면서 투기와 무관한 실수요자들도 예상치 못한 이자를 물게 됐을 뿐 아니라 대출을 받는 것 자체도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또 과도한 금리 상승은 가계부문 부실, 금융회사 부실로 이어져 경제 전체의 불안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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