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인문계 대입 실전 논술

  • 입력 2007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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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제

도표 <가>를 제시문 <나>와 <다>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의 밑줄 친 질문의 의미를 설명한 후, 모든 제시문을 활용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어떠해야 좋을지에 대해 인류문명과 연관해 논술하시오.(1600자 내외)

제시문은 이지논술 사이트에 있습니다.

■ 학생글 - 정지윤·서울 서라벌고등학교 3학년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란 말이 있다. 인간이 ①자연 어느 것보다 우위에 있는 존재란 의미인데 도표 <가>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②제시문 <나>나 제시문 <다>의 실옹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과 자연만물의 관계는 동등하다고 본다, 제시문 <나>에선 크고 작음과는 상관없이 느끼는 감정은 동등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제시문 <다>에서 허자는 도표 <가>와 같이 인간이 제일이라 하지만 실옹은 인간의 관점에서 봤을 때에나 인간이 제일 우수하다고 본다. 즉 관점에 따라서는 어떤 자연물도 귀해질 수 있으므로 자연물의 귀천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두 입장에선 ③도표 <가>처럼 우열을 가린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시문 <마>의 마지막 질문의 의미도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질문의 표면적인 의미만 본다면 지구의 존재이유가 인간을 위해서 인가이다. 자연이 인간을 위해서 발전해왔다는 논리는 ④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는 지금에는 이해가능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제시문 <다>에서 실옹의 말처럼 ⑤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서 존재가치는 달라진다. 즉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지구는 나무를 위해 존재한다. ⑥이렇게 보면 지구가 인류를 위해 발전해온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제시문 <나>에 나왔듯이 손가락을 깨물어보고 모두 똑같이 아픔을 느껴보아야 한다.그리고 인간중심의 사고방식을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한다.

인류문명은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급속도로 발달해나갔다. 그러나 ⑧과학의 발전과 더불어서 자연파괴 역시 진행되고 있다. 제시문 <라>에서 데카르트는 자연파괴를 당연시한다. ⑨자연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도구로 치부해버린다. 이런 입장은 제시문 <다>의 허자도 가지고 있다. 물론 자연을 ⑩훼손함으로써 인류는 편안한 생활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파괴를 해서 발생하는 손실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제시문 <나>와 <다>에서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라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남들이 자신을 욕하고 해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 감정은 동물과 식물뿐만이 아니라 자연만물이 다 가지고 있다. 우리가 자연을 다치게 하기 전에 자연을 무시해도 되는 대상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⑪제시문 <마>에 나온 인간 임의의 해석이 자연을 우리의 도구라고 생각하게 하는 큰 요인이다. 도표 <가>에서도 보면 대체로 크기가 작은 동식물들을 위계질서가 낮은 것으로 구분해놓았다. 그러나 위계질서 제일 마지막 부분에 있는 물, 공기 등이 없어지면 지구는 생존이 불가능한 별이 된다. 어쩌면 인간은 공기보다 중요도가 떨어질지도 모르는데 멋대로 이용해서 물 낭비나 매연을 만든다.

‘우주전쟁’이란 영화 마지막 부분에 외계인을 물리치는 건 도표 제일 위에 있는 인간이 아니라 제일 밑에 있는 미생물이다.인간의 멋대로 작다고 무시해버린다면 자연의 도움이 진정 필요한 때에는 도움을 못 받을지도 모른다. ⑭자연을 훼손시키는 걸 완전히 중단시켜서는 안 되지만 데카르트처럼 완전한 도구로 여기는 건 피해야 한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명심해야 한다.

■ 첨삭지도

대부분 논제의 함정을 피했다. 지구온난화, 오존층 파괴 등 지구환경문제의 원인을 규명하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게 이번 논제가 아니라, 바로 그러한 환경문제들이 인간과 자연만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였기에 근대 산업화 이후 파생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논해야 한다. 지윤 학생도 논제 파악을 잘 해 즉 논점이탈이 없다. ‘시작(논제 파악)은 반’이라는데 반은 승리한 셈이다.

제시문의 토씨, 단어, 문장을 ‘날것’그대로 도려내 자신의 글에 옮겨 붙이지 않는 게 논술표현력의 관건이다. 지윤 학생은 ⑥의 예처럼 제시문을 충분히 소화하고 난 뒤 자신의 논리로 다시 되새김질해 표현응용력이 남다르다는 걸 입증했다. 창의력도 좋다. 대한민국 대입논술의 특성상 논술 깨나 공부한 학생은 누구나 제시문 독해·요약·비교분석 차원에선 수준이 엇비슷하다. 문제는 창의력인데, 그것은 바로 자신의 논지를 ‘설득력 강하게’ 뒷받침하는 예시논거의 참신성이 담보한다. 영화의 예로 자신의 논리(만물평등)를 전개한 ⑫처럼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논지를 재강조 할 땐 ⑦처럼 ‘상투적’이고 ‘미지근하게’ 하면 안 된다. 창의적이면서도 최대한 강한 어조가 좋다. 가령 “지구를 인간중심적으로만 바라보는 사고방식은 인간과 자연의 공멸만 불러올 뿐이다”로 말이다.

글 전체적으로 접속사와 지시어를 남발한 것도 아쉽다. 글의 호흡이 뚝뚝 끊겨 가독성이 떨어진다. 문장이음새는 집에 비유컨대 못이다. 좋은 목수는 못 박느라 망치소리 요란치 않아도 ‘집(문장아귀)’만 잘 이어, 집(글)에 세련미가 있다.

①은 “자연만물 그 어느 것보다”로 써줘야 매끄럽다. 제시문 <나>속엔 입장이 둘이다. 나(이규보)와 ‘당신’의 입장이다. 고로 ②는 “제시문 <나>의 ‘당신’”으로 해야 명징하다. 논제의 첫 번째 요구조건은 제시문 <나>와 <다>로 도표 <가>를 분석하는 거다. 도표 <가>는 ‘어떻게’ 자연만물의 위계질서를 사다리꼴로 그리는가를 분석해야 논제분석도가 높다. ③을 “‘도표 <가>처럼 ‘생김새의 단순함과 복잡함’으로 자연만물의 우열을 가린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로 수정해야 (도표)분석논리력이 깊은 것이다.

④는 ‘과연 인간이 자연을 통제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왜 이상기후현상에 대한 예측을 못하는가’란 반론을 받을 수 있다. 글을 쓸 때 반론에 대한 재반론을 미리 준비할수록 논증이 치밀해진다. ④를 “인간의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도저한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룩한 근대산업혁명기에는 통했을지도 모른다”로 반론을 미리 차단하는 게 어떤가. ⑤는 제시문 오독(誤讀)이다. 실옹(제시문 <다>)은 인간, 금수, 초목, 하늘 등의 입장에 따라 자연만물의 존귀함 자체가 변한다고 했다. “인간, 금수, 초목, 하늘 등 각각의 입장에”로 ⑤를 고쳐야 앞 뒤 문장의 문맥도 자연스러워진다.

⑧은 “과학의 발전으로 자연개발이 용이하게 진행이 되었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자연파괴 역시 심각하다”로 수정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 그 자체가 자연 파괴의 원인이 아니라, 과학기술을 이용한 개발지상주의가 자연 파괴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⑨는 “자연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란 문장이어야 더 명료해진다.

‘동사+ㅁ/기’형태로 (동)명사를 만들어 문장을 잇는 문법은 영어다. 고로 ⑩은 ‘훼손해’로 써야 한다. 제시문 <마>(마크 트웨인)가 자연을 인간의 도구라고 주장하지 않으므로 ⑪은 “제시문 <마>가 던지는 질문처럼, ‘지구가 과연 인간만을 위해 만들어졌는가’란 성찰을 깊게 해야 한다”로 고치는 게 낫다. ⑬은 “인간이 다른 생명체를 ‘크기에 따라 제멋대로 위계질서를 정해 무시해버린다면”으로 고쳐야 명료하다. ⑭의 ‘자연 훼손’이란 용어는 문장 전체의 뜻에 어깃장을 건다. “인간도 자연개발을 해야만 문명을 유지할 수 있다 손치더라도”로 수정해야 문맥어조 상 어울린다.

■ 논제 분석

‘인간과 자연만물의 관계’를 묻는 논제다. . 아니면 . 이 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펼치는 ‘에코필로소피(혹은 생태윤리학)’다.

논제요구조건은 세 개다. ①도표 <가>를 제시문 <나>와 <다>로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②<마>의 밑줄 친 질문의 의미를 설명한 후, 모든 제시문을 활용해 ③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 지를 인류문명과 연관시켜 논해야 한다.

①은 어떤 자연관이 ‘자연만물의 위계질서’를 사다리꼴로 그려낼 수 있겠는가를 제시문 <나>와 <다>로 분석하는 ‘도표분석논리력과 제시문 독해력’이 공히 필요하다. 제시문 <나> ‘허옹의 자연관’이 갖는 의미를 제시문 <다> 데카르트의 자연관과 비교해 보는 것도 좋다.

②는 마크 트웨인의 질문(제시문 <마>)이 갖는 의도가 무엇인가를 제시문 <가> <나> <다>와 연관시켜 설명해야 한다. ③은 인간과 자연만물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현 단계 인류문명에 대한 진단과 대안모색이 달라지므로 자신의 입장을 명확하게 견지해야 한다.

■ 제시문 분석

<가> 다윈의 진화론(19세기)에 아이디어를 제공한 18세기 박물학자 사를 보네(1720∼1793)가 그린 도표 ‘자연만물의 위계질서’이다. 지구상의 모든 존재를 하나로 결합시키고 모든 생명체가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발전해 나간다는 구상이 담겨있다. 인간을 만물의 최고정점으로 위치지우고 ‘포유류-조류-어류-파충류-조개류-식물-무기물’ 순으로 자연만물을 사다리꼴 형태(수직적 위계)로 질서를 세운다. 만물은 모두 존귀한 게 아니라, 사다리 위에 있을수록 존귀하고 그중에서 인간이 가장 존귀하다는 것이다.

제시문 <가> 이규보나 제시문 <나> 실옹의 만물일류(萬物一流·만물은 근원적으로 평등)사상 즉 인간과 자연을 수평적 평등관계로 바라보는 것과는 딴판이다. 비록 보네가 철학자 라이프니치(1646∼1716)의 ‘자연연속성 원칙’을 옹호하며 인간과 자연만물을 사다리꼴로 연결시켰다 손치더라도, 만물의 서열구조인 도표 <가>는 ‘자연을 인간을 위한 도구’로 바라본 ‘데카르트적 기계론적 자연관(제시문 <다>)’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발상이다. 인간중심주의적인 자연관이다.

<나>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만물은 크기나 겉모습, 인간에 대한 ‘이로움과 해로움’과 상관없이 자연만물은 근원적으로 동일한 존재라며 '만물일류(萬物一流·만물평등)를 주장한다. 만물일류란 짐승과 곤충, 심지어 무생물까지도 존귀함의 정도에서 사람과 다르지 않다는 생태학적 사상이다. ‘슬견설·슬犬說’은 ‘물아상구(物我相救·만물과 사람이 서로 돕는다)’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인간은 자연과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전혀 별개의 존재이자, 정신적(의식적) 존재인 인간이 물질적 존재인 자연을 소유·지배해야 한다는 제시문 <다> 데카르트의 이분법(이원론)적 자연관과는 상반된 견해다.

<다>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과 자연은 균등”하다는 조선후기 ‘북학파’ 담헌 홍대용의 ‘인물균(人物均)’사상이 ‘실옹’의 입을 통해 드러난다. 인간과 자연만물은 단절된 관계가 아니라 ‘뫼비우스 띠’처럼 서로 관계를 맺고 있고 인간만 존귀한 게 아니라 모든 만물이 ‘상대적으로’ 다 가치가 있다는 게 실옹 즉 홍대용의 입장이다. 허자는 실옹과 반대 입장이다. ‘인간과 자연’을 서로 별개의 존재로 보는 제시문 <다> 데카르트의 인간중심주의다.

<라>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자연관을 설명하고 있는 글이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자연은 인간의 소유물이라고 주장했다. 인간은 의식적·정신적 존재이고, 자연은 의식이 없는 ‘죽은’ 물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은 ‘서양의 근대적 자연관’(인간중심주의 혹은 개발지상주의)을 형성하는 사상적 토대로써 인간과 자연을 분리된 것으로 보고, 인간이 자연을 철저하게 통제·계량·지배·개발하고자 한다.

■ 다음주 논제

글 <가>부터 <다>는 하나의 공통된 주제와 관련된 글이다. 그 주제를 말하고, 글 <라>와의 연관 관계를 설명하면서 그 주제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그림 <마>를 하나의 사례로 포함시켜 논술하시오.(1600±100자)

<가>

무릇 총명한 선비라고 해서 어찌 일일이 물건을 제 눈으로 봐야만 아는 것이랴? 한 가지를 들으면 눈에는 열 가지가 형상화되고 열 가지를 보면 마음에는 백 가지가 설정되어 천 가지 괴이한 것과 만 가지 신기로운 것에 대해, 그 물건의 본질에 충실하여 객관적으로 보려 하되 주관을 섞지 않는다. 본 것이 적은 사람은 해오라기를 가지고 까마귀를 비웃고 물오리를 들어 학의 자태를 위태롭게 여긴다. 그 사물 자체는 전혀 괴이하다 생각하지 않는데 자기 혼자 성을 내어 꾸짖으며 한 가지라도 제 소견과 다르면 천하 만물을 다 부정하려고 덤벼든다.

아아! 저 까마귀를 바라보자. 그 날개보다 더 검은 색깔도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햇빛이 언뜻 흐릿하게 비치면 얕은 황금빛이 돌고, 다시 햇빛이 빛나면 연한 녹색으로도 되며, 햇빛에 비추어보면 자줏빛으로 솟구치기도 하고, 눈이 아물아물해지면서 비취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푸른 까마귀라고 불러도 옳으며 붉은 까마귀라고 불러도 역시 옳을 것이다.

그 사물에는 애초부터 정해진 색깔이 없건만 그것을 보는 내가 눈으로 색깔을 먼저 결정하고 있다. 어찌 눈으로만 색을 결정하는 것뿐이랴? 심지어 보지도 않고 미리 마음속으로 결정해버리기도 한다.

[연암 박지원, ‘능양시집서(菱洋詩集序)’]

<나>

그럼 어디 네게 물어보자. 사람은 습한 데서 자면 허리 병이 생겨 반신불수로 죽지만 미꾸라지도 그렇던가? 나무 위에 있으면 사람은 떨고 무서워하지만 원숭이는 그렇던가? 이 셋 중 어느 쪽이 올바른 거치를 알고 있는 걸까? 또 사람은 소, 돼지 따위의 가축고기를 먹고 순록은 풀을 먹으며, 지네는 뱀을 먹기 좋아하고, 올빼미는 쥐를 먹기 좋아한다. 이 넷 중 어느 쪽이 진짜 맛을 알고 있다고 하겠는가. 암 원숭이는 긴 팔 원숭이가 짝으로 삼고, 순록은 사슴과 교배하며, 미꾸라지는 물고기와 논다. 모장이나 여희는 사람마다 미인이라고 하지만, 물고기는 그를 보면 물 속 깊이 숨고, 새는 그를 보면 하늘 높이 날아오르며, 순록은 그를 보면 기운껏 달아난다. 이 넷 중 어느 쪽이 이 세상의 진짜 아름다움을 알고 있을까.

[장자 ‘제물론’, 고등 ‘윤리와 사상’(교육인적자원부)]

<다>

가로로 보면 산줄기 옆으로 보면 봉우리/멀리서 가까이서 높은 데서 낮은 데서/보는 곳에 따라서 각기 다른 그 모습/여산의 진면목을 알 수 없는 건/이 몸이 이 산 속에 있는 탓이리.

[소동파 ‘여산진면목(廬山眞面目)’, 고등 국어(하) 연계]

<라>

베이컨은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편견을 네 가지 우상으로 설명하였다. 첫째는 종족의 우상이다. 이것은 세계의 모든 현상을 인간의 관점에서만 보려는 것을 말한다. “저 새는 나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이 구슬프게 운다”와 같은 것이다. 둘째는 동굴의 우상이다. 이것은 동굴에 갇혀 있는 사람처럼, 개인적 경험이나 성격적인 편견으로 인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우물 안 개구리’가 여기에 해당된다. 셋째는 시장의 우상이다. 이것은 말 때문에 생기는 편견을 말하는 것으로, 베이컨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에서 잘못된 말과 소문이 많다고 생각하였다. ‘용’ ‘봉황’ ‘모순(矛盾)’과 같은 것들이다. 넷째는 극장의 우상이다. 베이컨은 무대를 보고 환호하는 관객들처럼, 전통이나 권위에 의지하여 나타나는 지식이나 학문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가리켜 극장의 우상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그는 과거에 나온 이론들을 권위가 있다고 해서 무조건 추종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고등 ‘윤리와 사상’(교육인적자원부)]

<마>세잔(1839-1906) ‘정물’.

세잔은 동일한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관찰한 후 그림을 그린 최초의 화가다. 여러 시점으로 대상을 바라본 ‘정물’은 소실점이 네 개다. 꽃병은 화면 왼쪽 위에서, 설탕단지는 수평선 높이, 과일바구니는 화면 아래쪽, 바구니 속 과일은 화면 오른 쪽이 각각 소실점이다. 실제 대상은 시점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걸 가르쳐 준 세잔으로 인해 피카소와 같은 현대미술이 탄생했다.

[‘원근법’, 고등 ‘미술’(교학사) 연계]

노만수 학림논술 콘텐츠연구실장·서울디지털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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