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진곤]‘희망이 싹트는 교실’로 가자

  • 입력 2006년 9월 1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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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붕괴’란 말은 일본에서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일본보다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을 더 잘 나타내 주는 용어가 됐다. 학생은 수업시간에 엎드려 잠을 자고, 교사는 깨울 생각을 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 아이들이 서로 치고받고 싸워도, 심지어는 복도에서 담배를 피워도 못 본 체하는 교사도 있다고 한다.

동아일보에 연재된 ‘희망이 싹트는 교실’ 시리즈를 보면 모든 학교가 그렇지는 않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영도초등학교는 김동섭 교장이 부임한 이래 학생의 ‘학력신장’을 위해 교사와 학부모가 힘을 합해 열심히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신동초등학교는 학급별로 담임교사가 시험문제를 출제해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의 학업수준을 과목별로 정확히 진단하고 평가하면서 학생 하나하나에게 잘 이해하지 못하는 단원이나 문제를 철저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도곡중학교는 담임교사가 학생과 함께 자원봉사를 하고,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고, 등산하면서 학생을 아껴주고 사랑해 준다. 용마중학교 교사들은 아침밥을 못 먹고 등교하는 가난한 학생에게 빵과 우유를 사주고, 열심히 독서지도를 한다.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살펴보면 서울에 있는 이 학교들뿐만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와 비슷한 학교를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00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에 의하면 한국의 학교교육비 가운데 학부모 등의 민간이 부담하는 민간부담률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고 한다. 주된 이유는 사립대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많아서 학부모가 부담하는 대학등록금 등의 민간부담률이 높기 때문이라지만, 정작 학부모의 허리를 휘게 만드는 것은 대학등록금보다는 학원 등의 사교육비다. 사교육비를 근원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는 신동초등학교나 영도초등학교와 같이 교사가 학생 하나하나의 학력과 지적수준을 파악하고 이에 알맞은 내용을 적절한 방법을 통해 열심히 가르치고 지도해 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교육인적자원부 등의 행정당국이 단위 학교에 최대한의 자율성을 부여하고, 제도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학교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허용해야만 한다. 최근 교육부의 정책은 이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국제중학교 설립을 인가하겠다고 발표하자, 시행령을 고쳐서라도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입시위주의 교육이 초등학교까지 번지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 때문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에 사로잡혀 교육청과 학교를 계속 규제하고 통제한다면 학교는 더욱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교육부는 기존의 교육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해 교육청과 단위 학교에 최대한의 자율성을 줘야 한다. 풍랑을 두려워하여 배를 항구에만 묶어둘 수는 없듯이 문제가 있더라도 과감하게 규제와 통제를 풀어주어야 한다.

또한 행정당국은 ‘희망이 싹트는 교실’에서 보여주듯이 어려운 여건 속에서 열심히 학생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학교를 전국적으로 널리 찾아내어, 다른 학교도 이 학교 못지않게 더 ‘좋은 학교’로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도록 지원해 주고 격려해야 한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은 오래전부터 이런 정책을 시행해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일에 교육자뿐만 아니라 언론인, 정치인, 기업인, 시민단체도 동참해야 한다. 학교가 무너지면 경제도, 기업도, 그리고 국가도 무너지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학교현장에서 움트고 있는 희망의 싹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 커다란 나무로 키워나가야 할 때다.

정진곤 한양대 사회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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