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 30차례 108억 기부한 정석규 신양문화재단 이사장

  • 입력 2006년 9월 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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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최대 개인 기부자인 정석규 신양문화재단 이사장이 8일 자신이 기부한 돈으로 건립한 신양학술정보관을 찾아 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다. 강병기 기자
서울대 최대 개인 기부자인 정석규 신양문화재단 이사장이 8일 자신이 기부한 돈으로 건립한 신양학술정보관을 찾아 학생들을 격려하고 있다. 강병기 기자
8일 오후 3시 반, 서울대 인문대 304호.

“도서관을 지어 아름다운 이름을 후세에 남길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4년 전 후두암에 걸려 목젖을 잘라낸 정석규(77) 신양문화재단 이사장은 신양인문학술정보관 건립 기금 약정식에서 대독되는 소감을 들으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인문대 이태진 학장은 “30여 년 만에 문과대학이 새 건물을 가질 수 있게 됐다”며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감사패를 증정했다.

▽100억 원 기부한 서울대 최대 기부자=서울대 동문 가운데 정 이사장보다 재산을 더 많이 모은 사람은 많지만 학교 기부는 그가 최고다

후두암과 위암으로 투병하면서도 30여 차례에 걸쳐 재산을 털어 기부한 돈이 7월 말로 총 100억 원을 넘었다.

이번에 인문대에 제2신양학술정보관 건립비로 약정한 금액도 30억 원.

정 이사장은 2003년 펴낸 자서전에서 “사회봉사활동은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라며 “해야 할 일은 많은데 건강이 나빠지고 시간이 부족해 아쉽다”고 썼다.

1952년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정 이사장은 1967년 고무제품 전문업체 태성고무화학㈜을 세워 2001년 매각할 때까지 경영했으며 1998년 신양문화재단을 세웠다. 신양은 그의 호.

하지만 본격적인 기부에 나선 것은 1999년 미국 하버드대를 방문한 다음이었다.

정 이사장은 “동문의 기부로 건립된 수십 개의 도서관이 인상적이었다”며 “한국에서도 학생들이 학문적인 분위기에서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도서관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평소 그는 ‘기업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다’는 신념에 따라 2001년 초 망설임 없이 회사를 매각하고 전자도서관인 신양학술정보관을 세우는 데 기부했다.

▽도시락에 남은 음식 담고, 2500원짜리 점심 사 먹어=그의 검소한 생활은 학교 내외에서 정평이 나 있다.

공대 김도연 학장은 “3년 전 매년 500만 원을 장학금으로 받는 중국 대학원생과 함께 좋은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찾아갔더니 ‘그 대신 4000원짜리 칼국수를 사 달라’고 하셔서 같이 먹었다”며 웃었다.

조선해양공학과 성우제 교수는 “얼마 전 중국 음식점에서 열린 만찬에서 남은 음식이 아깝다며 보온도시락에 싸 가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요즘에도 매일 공대가 신양학술정보관 4층에 마련해 준 사무실에 출근했다가 점심때면 인근 기숙사 식당으로 걸어가 그가 “가장 맛있는 식사”라고 부르는 2500원짜리 밥을 사 먹는다.

매년 명절에는 집에 안 가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지방 학생들에게 빵과 우유를 사다 나눠 주며 격려한다.

정 이사장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옛 모습이 생각나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그는 수십 년 전부터 가족에게 최소한의 재산만 남기겠다고 공언해 왔다.

지난해에는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으로 선정된 후 자녀들 앞에서 “자식에게 거액을 상속하는 건 독약을 주는 것과 같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그의 장남은 소뇌위축증이라는 불치병을 가진 1급 장애인.

하지만 정 이사장은 거액을 상속하는 대신에 “우리 가족 치료보다 난치병으로 희망을 잃은 환자들의 치료 방법을 개발하는 데 돈이 쓰이는 게 훨씬 의미 있을 것”이라며 10억 원의 난치병연구기금을 5월 서울대병원에 기부했다.

서울대 이장무 총장은 약정식에서 “정 이사장의 기부는 서울대 동문뿐 아니라 전 국민에게 감동을 준다”며 그의 손을 잡았다.

정 이사장은 약정식 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광복 직후 폐허 속에서 학교를 다니면서도 공학도로서 한국을 일으키겠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며 “요즘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한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서울대를 포함해 총 180억 원을 사회에 환원한 ‘노(老)기부왕’은 떨리는 목소리로 “내 작은 노력이 앞으로 대학 기부 문화를 싹 틔우는 씨앗이 됐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정석규 이사장 기부 내용
기금금액(출연 연도)
학술기금1000만 원(1987)
신양학술정보관 건립비31억3313만2000원(1999∼2004)
신양공학학술기금13억 원(2004∼2005)
정보문화학기금12억 원(2005)
신양의학연구기금2억 원(2005)
신양인문학술정보관 건립비30억 원(2005∼2006)
공대 연구재단 연구비7000만 원(1988∼1997)
화학생물공학부 시상기금2억 원(2003∼2005)
엔지니어하우스 건립비3억 원(1994∼2000)
공대 연구재단 꿈나무 장학금2400만 원(2002∼2003)
신양학술정보관 시설비3000만 원(2004)
특지장학기금3억63만4000원(2000∼2005)
언론정보학과 수리비2500만 원(2005)
명예교수 지원비500만 원(2005)
신양의학연구기금10억 원(2006)
합계107억9776만6000원
자료: 신양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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